[만보정담]문원재 총장 '한체대 새벽 걷기'로 모교 백년대계 구상

박병희 2023. 7. 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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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6시 학교 도착해 운동장 걸으며 하루 시작
"걷고 뛰며 땀 흘리면 스트레스 풀리고 생각 정리돼"

한국체육대학교(한체대)의 하루는 새벽 훈련을 하는 학생들의 힘찬 기합 소리로 시작된다. 문원재 한체대 총장은 새벽 걷기로 학생들과 호흡을 함께 한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에 학교에 도착, 운동장을 걷는다. 평생 태권도로 심신을 단련한 그에게 걷고 뛰는 행위는 곧 정신을 가다듬는 일이다.

"지금은 허리 때문에 걷기를 많이 한다. 예전에는 일이 해결되지 않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뛰었다. 뛰면 땀이 떨어지는데, 시원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 많이 걷고 뛰면 생각이 정리되고 일을 구상할 수 있다."

문 총장은 뼛속까지 한체대인이다. 신입생으로 한체대에 입학했던 때가 1981년이었으니 한체대와의 인연이 40년을 넘었다. 하지만 총장으로서는 새내기. 문 총장은 지난 4월18일 총장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한체대 구성원이 다양하다"며 "한번 해보자고 뜻을 한데 모으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했다. 총장 임기 4년이 끝나는 2027년이면 문 총장은 정년을, 한체대는 개교 50주년을 맞는다. 문 총장은 임기 동안 개교 100주년이라는 원대한 미래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그를 지난달 15일 한체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문원재 한국체육대학교 총장이 한체대 교정을 걷고 있다. 지난 4월 제8대 한체대 총장에 취임한 그는 매일 새벽 6시 학교에 도착해 학교 교정을 걸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총장 먼저 솔선수범…'열심히 해보자' 무언의 메시지"

문 총장은 취임 후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에 모교 운동장을 걸었다. 교수와 학생들의 노력을 독려하기 위해 총장인 자신이 먼저 말보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말로 ‘좀 나오십시오, 해 주십시오’ 하기보다는 총장이 일찍 나와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자고 생각했다. ‘한 번 열심히 해보자’ 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새벽에 운동장을 걷다 보면 학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운동장을 걷다 보면 어떤 부가 나와서 훈련을 하는지, 교수님 중에서는 누가 나와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지 보인다"며 "시간 많이 투자하고 열심히 해야 되는데 요즘은 점점 새벽 운동이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며 아쉬워했다. 한체대 학생들은 타 대학 학생들은 물론 경험 많은 실업팀 선배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문 총장은 아직 어린 한체대 학생들이 경험 부족을 메우려면 노력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지금보다 세 배는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가대표) 선수촌에는 경력이 많은 실업팀 선수들이 새벽, 오전, 오후, 야간까지 하루 네 번 훈련한다. 우리 학생들은 새벽에 1시간 하고 오후 수업 시간에 2시간 훈련한다. 두 번 짧게 해서 네 번 하는 실업팀 선배들을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게다가 우리 학생들은 고등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신예 선수들로 선수촌에 있는 선수들보다 경험이 적다. 방법은 노력뿐이다. 새벽 운동을 싫어하면서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고 하는데 국가대표 되고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말만 하면 되는 일인지 되묻고 싶다."

한체대 산증인 "한체대는 올림픽 유산"

문 총장은 학생, 조교, 교수, 스포츠과학대학장, 훈련처장, 대학평의회 의장 등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총장에까지 올랐다. 그의 삶은 한체대 역사와 함께했다.

문 총장이 체육학과 신입생으로 입학한 1981년은 한체대가 설립된 지 겨우 4년 된 해였다. "입학할 때만 해도 건물은 한 동뿐이고 운동장은 공사 중이고 기숙사도 짓고 있었다."

한체대는 1977년 당시 관악 캠퍼스로 이전 중이던 서울대 공과대의 노원구 공릉동 건물을 빌려 개교했다. 오늘날 한체대 위상을 생각하면 초라한 시작이었다.

"레슬링 양정모 선수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따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운동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는 대학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국립 한국체육대학교가 설립됐다."

대한민국 첫 올림픽 금메달이 나온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인구 2000만명도 안 되는 동독이 종합 2위에 올랐고 이에 박 대통령은 엘리트 체육을 키우겠다는 의지로 한체대를 세웠다. 과거 엘리트 체육이라는 용어는 최근 전문 체육이라는 용어로 대체됐다. 전문 체육인 양성이 목적인 한체대의 성과는 눈부셨다. 한체대가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딴 메달은 모두 126개. 문 총장은 "전 세계에서 이런 대학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문 총장도 지도자로 오랫동안 여러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냈다.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이 자신의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한 시기였다고 했다. 당시 문 총장은 대표팀 코치로 선임돼 한체대 재학생이던 황경선과 차동민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네 체급에 출전해 모두 금메달을 땄는데 그중 2명이 한체대 재학생, 황경선과 차동민이었다. 당시 실업팀이 워낙 강세였다. 우리 학교 재학생이 2명이나 출전한다는 자체가 상당히 파격적이었고 지도자인 나에게도 대단한 영광이었다."

문 총장은 한체대가 지금까지 달성한 성과를 감안해 한체대를 올림픽 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체대는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1985년 8월 현재의 강동구 오륜동으로 이전했다. 올림픽 공원도 막 조성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문 총장은 올림픽 공원은 올림픽 유산으로 지정된 반면 한체대는 그렇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체대도 올림픽 공원과 마찬가지로 올림픽 유산으로 지정돼야 한다"며 "임기 동안 이를 위한 여건을 만들겠다"고 했다.

문원재 한국체육대학 총장은 한체대가 올림픽에서 딴 메달 126개는 대단한 성과라며 한체대를 올림픽 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체육·생활체육 두 토끼 잡겠다…지방 이전 단호히 반대"

올림픽 유산으로서 한체대의 가치를 위해 문 총장은 경기력 향상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한체대가 거둔 성과는 대단하지만 올림픽 성적만을 따졌을 때 한체대의 경기력은 떨어지고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한체대 재학생이 따낸 메달은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였다. 하지만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장준이 태권도에서 딴 동메달 하나에 그쳤다.

경기력 향상은 전문 체육인 양성을 목적으로 한 한체대의 정체성과 직접 관련돼 있다. 문 총장은 "전문 체육이 살아야 우리 대학이 산다"고 강조했다.

문 총장은 스포츠만큼 전 국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것이 없다며 과거와 비교해 올림픽과 같은 국제 스포츠 경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줄어든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포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경기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며 스포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다시 커져야 스포츠에 대한 투자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포츠는 얼마나 투자하고, 관심을 갖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얼마나 투자를 했느냐에 따라 성적이 따라오고 그만큼 관심도 받을 수 있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문 총장은 과감한 개혁을 추진할 계획이다. 일례로 좋은 성적을 내는 학과에 더 많은 예산을 배분할 계획이다. 성적과 관계없이 모든 학과에 예산을 균등하게 나누는 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시대 흐름에 맞춰 사회가 한체대에 요구하는 변화에도 적극 호응할 계획이다. 이를테면 안으로 경기력 향상을 통해 전문체육 부문 역량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생활체육 보급 및 확산을 위해서도 힘을 보탤 계획이다.

한체대는 지난달 20일 교육부와 늘봄학교 업무협약을 맺었다. 문 총장은 "늘봄학교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에게 학교 내 인프라를 개방해 청소년들에게 방과 후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체대의 정체성은 전문 스포츠를 기반으로 하면서 생활체육을 잘 발전시켜서 국민 건강을 증진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전문체육과 생활체육 두 토끼를 잡겠다고 말했다.

"타성에 젖어서는 안 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을 배출하기 위해 학교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원하는 학과도 받아들여야 하고 필요하면 학과를 통폐합하고 없애는 등 과감한 개혁을 해야 한다. 또 지금까지 학교가 교수 중심이었다면 학생들 중심으로 바꿔나갈 것이다. 그래야 사회가 요구하는 분야에 맞는 인력을 배출할 수 있다."

한편 문 총장은 한체대가 올림픽 공원과 함께 올림픽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한체대를 유치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충북 진천과 경북 문경이 한체대 유치에 나선 상황이다. 진천과 문경시는 각각 국가대표 선수촌과 국군체육부대가 있어 한체대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 총장은 현재 대부분 지방 대학들이 지원율 미달로 통폐합 위기에 놓여 있다며 한체대도 지방 이전 시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는 30년 축적된 한체대의 체육 관련 시스템과 인프라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문 총장은 "한체대는 최고의 훈련 여건을 갖춘 대학이고 이에 학생들이 한체대를 지원하는 것"이라며 "한체대를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인프라 부족으로 지원율이 떨어지면서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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