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 늘리면… “쏠림 현상 심화” vs “낙수 효과 기대”
◇“쏠림 현상 심화” vs “낙수 효과 기대”
필수 의료 인력 부족 문제는 의대 정원 확대의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이들은 현재 상태에선 의대 입학 인원만 늘려봐야 지금처럼 피부과·성형외과 등 흔히 말하는 ‘돈 되는 과(비급여 진료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과)’ 쏠림 현상만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의사 수를 늘리기 전에 필수과의 낮은 수가를 개선하고, 최선을 다하고도 의료 소송에 휘말리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소아청소년과는 구조 개편 없는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필수의료과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갈수록 아이가 적게 태어나는 상황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미래가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나라들이 존재한다"며 "유독 우리나라만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전문의가 부족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는 건 근본적인 문제가 소아청소년 감소나 전체 의사 수에 있는 게 아님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부 설문조사를 해보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서 활동하고 싶지만 저수가, 소송 부담 등 외부 여건때문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일하지 못한다는 사람이 20% 이상이었다"며 "기존 전문의도 활동할 수 없는 구조에선 아무리 전체 의사 수를 늘려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추가로 배출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아청소년과는 수익난으로 인한 폐업, 악성 민원과 소송에 의한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5년간 소아청소년과 662개가 경영난으로 폐업했고, 의료서비스 불만족 등을 이유로 소송을 당한 소아청소년과는 최근 일주일에만 10여 곳에 달한다. 이 중 일부 기관은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포기하고 일반내과로 전환했다.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이들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다만 지금은 절대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한 만큼,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의사 수를 늘리면서 동시에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조승연 회장(인천의료원장)은 “어느 누구도 의대 정원만 늘리면 인력 부족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지 않는다”며 “기본적으로 의사 수를 늘리고, 필요한 정책 개선·추진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찬성 측에서는 특정 과 쏠림 현상이 우려된다면 오히려 더 많은 증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원 확대를 통해 의사 총량이 늘어나면, 적은 비중이라고 해도 필수과 의사 또한 증가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일종의 ‘낙수효과’인 셈이다. 현재도 피부과·성형외과 시장이 과열됐기 때문에, 의대 정원이 늘면서 해당 시장의 규모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편중 현상 역시 완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된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졸업하고 피부과, 성형외과를 선택하는 걸 막을 순 없다. 그 숫자를 고려해 정원을 늘리면 된다”며 “피부과, 성형외과 또한 제한된 수요 안에서 경쟁하기 때문에, 규모가 무한정 늘어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필수의료과목 현장에 있는 의료진들은 낙수효과는 발생할 수 없을 거라고 전망한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유 회장(안성모아산부인과)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산부인과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의사가 없어 바로 수술을 하지 못하거나 '응급실 뺑뺑이'로 곤란을 겪는 일은 없었다"며 "지난 10년간 의사는 꾸준히 배출돼 전체 수가 늘었음에도 응급상황조차 대응이 어려울정도로 필수의료과목 의사는 부족하단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재유 회장은 “의사 수가 아무리 늘어도 늘 소송 부담에 시달리고, 근무 환경마저 좋지 않은 필수의료과목을 선택하는 의사가 늘진 않는다"며 "필수의료인력 확보와 의대 증원은 다른 영역의 문제로 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의사제·의무복무제 도입해야” vs “기존 인력 활용·지방 의료 환경 개선부터”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같은 맥락에서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면 지방 의료 인력 부족 문제 역시 일정 부분 해소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의사 총량을 늘려 필수과 인력을 확보하듯, 전체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일정 비율을 지방 의료 인력으로 충원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다만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론 인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의대에서 해당 지역 출신 인원을 선발하고, 졸업 후엔 일정 기간을 의무적으로 지역 병원에서 복무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조승연 회장은 “의대 정원을 늘리되, 지역의사제, 의무복무제 등을 통해 지방 의료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며 “지역에서 9~10년씩 복무 기간을 채웠다면 보람을 느끼고 대우 받을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지방 의료 인력 확대엔 한계가 있다고 반박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지금도 졸업 후 해당 지역에서 근무를 유도하기 위해 비수도권 의대는 지역고교 졸업생 40% 이상을 의무적으로 선발하도록 하고 있지만, 졸업 후 수도권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도 의사 부족 지역에 배치하려고 지역의사제도를 통해 지역 의사를 육성했는데, 의사 부족 지역에서 일하는 지역의사제 출신 의사는 24.1%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의료정책연구소 자료) 우봉식 소장은 "지방 의료 인력 문제는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리고, 지역의사제도를 도입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며 “지역 의료의 특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배우며, 지방에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우선이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의 응급의료 부족 문제도 의사 수 확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최선을 다한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사건이 늘어 응급의학과 기피 기류가 심화됐다”며 “아무리 수를 늘려도 늘 소송 위험이 있는 분야, 그것도 환경이 더욱 열악한 지방 응급의료나 공공의료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진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응급의료전문의만 잘 활용해도 직면한 응급의료와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형민 회장은 “개업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라도 큰 병원 응급실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큰 병원 응급실 의사는 작은 의원에서 진료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기존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효과적으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
전공의 단체 또한 지역 출신 의료 인력 육성과 지역 의료 환경 개선 노력이 없다면 전체 의사 수가 늘어도 지방의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데 공감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회장은 “지금 같은 구조라면 의대 정원을 늘려도 지방 의대를 졸업해 수도권으로 오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것”이라며 “졸업 후 병원에 남아 지역 의료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보상 체계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환경 또한 필요하다”며 “병원에서 전문의 채용을 늘리고, 국가에서는 지방 병원에 수가를 늘리는 등 보다 획기적인 지원이 요구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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