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음색과 피아노의 열정적인 백조의 노래

박순영 2023. 7. 2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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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한혜열-윤호근 DUO CONCERT 슈베르트 연가곡 시리즈 III - 백조의 노래

[박순영 기자]

 한혜열 윤호근 듀오가 앵콜곡을 연주중이다.
ⓒ 박순영
드디어 슈베르트 연가곡 시리즈 대장정의 마지막 공연이라니 관람하는 마음도 남달라졌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저녁 7시반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린 '한혜열-윤호근 DUO CONCERT 슈베르트 연가곡 시리즈 III  - 백조의 노래'는 장맛비의 여름주말, 차분한 인생사를 음악으로 전해 듣는 공연이었다.

슈베르트는 세 개의 연가곡을 남겼다. 한혜열-윤호근 듀오가 코로나 기간이었던 2021년 시작해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21.3.)에서는 연가곡의 신선함으로, '겨울나그네'(22.3.)에서는 충실해진 접근으로, 이번 '백조의 노래'에서는 슈베르트 말년의 고독과 고통을 이들 듀오의 더욱 깊고 묵직해진 음악세계로 펼쳐보였다. 

공연은 크게 두 대목으로 구성되었다. 첫 순서 <하프 타는 노인의 노래(3 Gesange des Harfners, D.478)>의 1곡 '고독을 몸에 맡긴 자'가 시작되자 그 F단조의 울적한 분위기와 한혜열의 작년 연주회보다 더욱 호소력있는 노래, 윤호근의 깊어진 피아노 음색으로 곡에 빠져들게 되었다. 차분한 셋잇단음표가 정말 동등하고 고른 터치이고, 베이스의 표정은 노인의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2곡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적 없는 자'에서는 "그대 천상의 힘들이여"라는 가사에서 F 단3화음에서 장3화음이 되는데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중간에 음악학자 강지영의 해설은 더욱 심도있는 음악감상의 좋은 안내자가 되었다. 이은 두번째 순서 <백조의 노래> 1-7곡은 렐슈타프(Ludwig Rellstab)의 시를 노래하고, 8-13곡은 하이네(Heinrich Heine), 14곡은 자이들(Johann Gabriel Seidl)의 시에 노래를 붙였다고 설명해주었다. 1곡 '사랑의 전령'이 연주되자 Eb장조의 밝음과 물결치는 반주, 더없이 부드러운 독일어 발음에 듣는 마음까지 풍요로워졌다. 2곡 '병사의 예감'은 Bb 단조의 어두움과 함께 마치 한 편의 오페라 장면 같았다.

3곡 '봄의 동경'은 2곡과 대조되는 밝은 분위기에서 가사는 'Wohin?(어디로?)', 'Warum?(어째서?)'라 묻고 피아노는 봄처럼 일렁이는 마음을 표현하며 열정적인 진행을 펼쳤다. 4곡 '세레나데'는 유명한 노래라 더욱 친숙했다. D조의 테너로 불리는 게 보통인데 남성성악 중 가장 낮은 베이스로 불리우니 엄숙함과 진실함이 더욱 느껴졌다. 이것은 베이스 한혜열의 슈베르트 연가곡 시리즈 전체에서 가진 장점으로도 작용한다. 낮은 음역과 파워풀한 음량이 함께 거대하게 요동치는데 여기에 희한하게 그의 목소리와 똑같은 톤을 내는 윤호근의 피아노가 함께한다는 것이다.

5곡 '거처'는 슈베르트 가곡만의 셋잇단음표 반복반주가 낮은 D조에서 세차게 울리며 그 위에서 베이스가 'Rauschender Storm, brasender Wald(몰아치는 강, 요동치는 숲)'라고 외쳐부르니 그 한복판에 우리가 와 있는 것 같았다. 6곡 '먼 곳에서'는 이 세상 소리가 다 없어진 듯 눈물같은 고요함이 표현되더니 점차로 밝은 격정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7곡 '작별'인데 오히려 대장간 리듬처럼 분위기가 밝다. 슈베르트 곡에서 느껴지는 이 대조, '열정, 희망과 차분한 내면, 슬픔'이 번갈아 보이며 인생사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국내에 몇 안되는 성악 베이스 연주자로서 슈베르트 연가곡을 다 마친 베이스 한혜열과 이를 함께 이끌어간 지휘자 윤호근의 또한 마지막 백조 같은 포스터다.
ⓒ 한혜열 윤호근 듀오 콘서트
하이네의 시에 붙여진 8곡부터는 무척 격렬하다. 8곡 '아틀라스'는 낮은 Eb 단조의 무게감과 강렬함이 가사의 '고통의 세상을 짊어져야 한다'는 감당하기 힘든 숙명과 절망을 느끼게 해준다. 9곡 '그녀의 형상'은 피아노와 베이스 모두 거의 들릴 듯 말듯한 소리가 또한 일품인데, 그 작은 읊조림이 교회 한구석에서 수사들이 드리는 기도처럼 와 닿았다. 10곡 '낚시꾼 아가씨'는 8분의 6박자 리듬이 백조가 떠 있는 잔잔한 호수처럼 아름답고 우정스럽다.

11곡 '도시'는 윤호근 피아노의 음산한 증화음 아르페지오와 트레몰로가 가사속 도시의 지평선과 찬란히 빛나는 태양을 몽환적으로 표현하며, 베이스 한혜열은 사랑잃은 남자의 방황하는 마음을 중심있게 느끼게 해주었다. 12곡 '바닷가'쯤 되니 많이 슬프다. 사랑이 좀 이루어지면 안 되려나? 슈베르트 연가곡은 과연 '예술'가곡이다. 맨 정신으로 다 듣고 느끼기에는 참 많이 아프고 무겁다.

12곡 '바닷가'는 잔잔하다가 화려하게 다시 읊조림으로 "행복을 모르는 그녀가 나를 그녀의 눈물로 독살한 것이다"라고 노래를 펼칠만큼 사랑과 가사가 쓰디쓰다. 13곡 '그림자'는 또 어떠할까. 몇 개 안되는 음의 반주가 공포스럽고도 임팩트 있게 화성과 분위기를 전달한다. 독일어 발음은 더욱 두드러진다. 

"달빛이 보여준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었기에"

점점 얼굴이 하얘지던 베이스 한혜열은 이 장면에서 정말 도플갱어를 마주한 모습채로 공포와 후회의 모습을 설득력있게 표현해냈다. 마음 아프다. 자신을 마주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14곡 '비둘기 우편'은 사실 따로이 만들어진 노래를 연가곡으로 함께 엮은 것인데, 도플갱어 뒤에 붙으니 Eb장조의 밝고 아름답고 단아한 선율로 우리 현실사람들이 다시금 그녀를 그리워할 희망을 이끌어내게 하였다. 

3년에 걸친, 시리즈 3회가, 대장정이 끝났다. 감격에 어린 관객들이 브라보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이에 첫번째 앵콜로는 슈베르트 '물위의 노래'로 장마철 심금을 울렸으며, 두 번째 앵콜은 말러의 '나는 이 세상에서 잊혀지고'를 선사하며 공연장 분위기를 정돈했다. 말러는 산 자로서 죽은 이를 그리워한 것이고, 이날 공연을 생각해보니 슈베르트는 자신의 죽음을 느꼈기에, 오히려 노래를 통해 삶을 얘기했던 같아 가슴이 묵직해졌다. 

이런 값진 공연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피아노 한 대로 오케스트라 같고, 베이스 한 명으로 오페라 같았다. 그 생애 마지막 즈음 쓰여진 진짜배기 작품 연가곡 <백조의 노래>. 서구의 낭만주의 시대를 세차게 살며, 12세 때 궁정합창단에서 노래하고, 19세가 되기 전 이미 자신의 생애 쓴 600개의 가곡 중 절반 이상을 쓴 작곡가 슈베르트다. 현장에서의 소리는 공연 한 시간 반으로 사라졌지만, 슈베르트의 삶과 음악이 한혜열-윤호근 듀오와 관객을 휘감은 메시지는 분명 또다시 우리가 삶을 펼쳐갈 자양분이 되었다. 슈만 연가곡 시리즈로 다시 돌아오는 한혜열-윤호근 듀오의 앞으로의 모습이 그래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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