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특별 인터뷰 |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말하는 미·중 경쟁시대 한국 외교의 활로

2023. 7. 2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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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국 시대 대비하되 미국에 할 말은 하라”

■ 미국, 자본주의 칼만 빌린 중국의 변화 더 이상 기대치 않아… 그 결과가 대중국 포위망 구축

■ 韓, 신냉전 격화하면 전략적 모호성 유지 어려워… 한·미·일 협력 대가 미국에 당당히 요구해야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은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한국 외교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산업의 길을 열어주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미국은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을 추구하지 않는다. 세계 최대의 두 경제 대국을 디커플링하는 것은 두 나라에 재앙일 것이며, 세계를 불안정하게 할뿐더러 실질적으로 실행될 수도 없는 일임을 안다.”

중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7월 9일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de-risking)을 말했다. 옐런이 “미국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국가 안보 이익을 수호하는 데 필요한, 표적화한 조치들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 말 속에는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란 함의가 깔려 있다.

한편에서 옐런은 리창 국무원 총리를 비롯해 허리펑 부총리, 류허 전 부총리, 류쿤 재정부장, 판궁성 중국인민은행 당 서기 등 중국 경제 브레인들과 잇따라 회동했다. 미국의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한 차원에서 옐런은 중국의 미 국채 매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일본 다음으로 미국 국채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긴장 관계이지만, 현실에서 양국의 무역 규모는 역대 최대(2022년 6906억 달러, 미 상무부 발표)인 것이 미·중 관계의 현실이다.

이렇듯 중층적인 미·중 관계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 협상과 세계무역기구(WTO) 통신 협상의 한국 대표를 맡았으며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한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은 “예전부터 말해왔지만,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한국도 새로운 외교 전략으로 글로벌 새 판짜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美의 대중국 압박은 中 변화 오판한 반성에서 출발


미·중 패권경쟁에 임하는 미국 바이든 정부의 진의가 궁금하다. 정말 중국이 다시는 못 일어서게 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2024년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둔 제스처일까?

“미국의 중국 포용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키신저가 역할을 해서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하는 전환기적 사건이 있었다. 냉전 체제에서 미국은 소련에 압도적 우위를 갖지 못하자 이이제이(以夷制夷) 차원에서 중국을 끌어들였다. 이후 마오쩌둥이라는 절대 권력자가 사라지자 중국의 실용주의자 덩샤오핑은 ‘인민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면 공산당 권력은 없다’며 개혁·개방 노선을 걷는다. 이때 ‘중국식 자본주의’, ‘흑묘백묘론’ 등이 나왔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 덩샤오핑은 ‘나를 주자파(走資派, 중국 공산당 내에서 자본주의 노선을 주장하는 파)라고 하는 비판이 있는데, 나는 공산주의자다. 동지들을 위해 당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러니까 공산당의 존립 기반인 민생 자체가 흔들리니까 자본주의라는 칼을 빌렸을 뿐이라는 의미다.”

중국은 애초부터 변할 생각이 없었는데 미국 등 서구가 착각했다는 것인가?

“그들은 중국이 자본주의를 빌리는 순간, 밑으로부터의 압박 때문에 공산당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온건하게 봐도 싱가포르 스타일의 온건한 전제주의로 변할 것이라고 봤다. 이런 ‘확신’이 21세기 초반까지 약 25년을 관통했다.”

뒤집어 보자면 중국 정부는 어떻게 변화의 물결을 통제했을까?

“중국이 경제성장을 할수록 불평등 해결, 자유를 향한 요구가 커졌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탱크를 동원했다. 이것이 (1989년 6월 4일의) ‘톈안먼 모멘트’다. 이후 다수의 서구 지식인들은 ‘세컨드 모멘트’가 오면 중국 공산당은 못 버틸 것이라며 변화 임박을 관측했다. 사실 ‘G2’라는 프레임도 미국에서 만든 것이다. 중국이 글로벌 시스템에서 과실만 취하지 말고, 책임 있는 역할을 하라는 의도였다. 하지만 중국은 ‘너희들과 체제가 다른 우리가 잘살게 되는 것은 위협이 아니라 윈윈’이라는 레토릭으로 응수했다. 인민민주주의 독재를 바꿀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불문하고 ‘미국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중국이라면 용납할 수 없다’고 태세를 전환한 분기점이 트럼프와 힐러리가 대결한 2016년 대선이었던 듯하다.

“당시 힐러리가 대통령이 됐더라도 중국을 거세게 몰아붙였을 것이다. 미국은 서독·일본 등 역사상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가 나타나면, 미국이 저항할 수 없는 지점까지 그 나라들이 도달하지 못하도록 ‘관리’해왔다. ‘Japan as number one’으로 불렸던 일본 경제를 무너뜨린 것도 플라자 합의(1985년)였다. 이후 일본은 20년 이상의 장기불황에 빠졌다.”

이 와중에 중국에서 시진핑이 장기 집권하니 갈등의 파고가 더 높아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 브레인들이 ‘우리는 오만했으며 중국 공산당의 본질에 무지했다’고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중국의 궁극적 목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빼내려는 것’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이 시기에 등장한 시진핑은 ‘굴욕의 100년을 돌려주겠다’는 내러티브로 굴기(屈起)를 꺼냈다. 시진핑은 5년 임기를 두 번밖에 할 수 없다는 중국 공산당의 집단 지도체제를 사실상 없앴다. 동시에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발언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 대표적 사례가 2013년 LA에서 오바마와 회담할 때, 시진핑이 꺼낸 ‘태평양은 너무 넓으니 우리 두 슈퍼 파워가 나누어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갈등해도 교류는 지속하는 신냉전 시대


윤석열(왼쪽) 대통령 시대를 맞아 한·중 관계는 ‘리셋’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중 마찰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한국 외교의 숙제이기도 하다. / 사진:연합뉴스
그전부터 미·중 균열의 조짐은 있지 않았나?

“중국이 우격다짐으로 남중국해 영유권을 관철하자 오바마 정부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시진핑은 ‘인공섬을 군사기지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거짓이었다. 미국이 제대로 된 대응을 못 하자 중국 주변국들은 불안해하고, 유럽은 중국과의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팔짱만 끼고 있었다.”

정치적 좌표는 판이하고 방법은 다를 수 있겠지만, 트럼프와 바이든은 ‘미국이 중국을 제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미국의 진의는) 단순한 선거용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용어는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바뀌었다. 중국과의 모든 경제 관계를 단절할 수도 없다. 이것이 (미·소 간) 냉전과 (미·중 간) 신냉전의 결정적 차이다. 신냉전은 이미 시작됐다. 그 서막은 트럼프의 무역전쟁이었다. 갈수록 미국은 훨씬 더 정교하며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아무래도 미국의 대중국 압박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산업 분야에 집중할 듯하다.

“말이 좋아서 디리스킹이지, 핵심산업 분야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두겠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원가 계산해서 비교우위 논리에 따라 비용이 싼 국가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비용이 들어도 내부에 두겠다는 방침이다.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훨씬 안정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본심은 중국이 더 이상 굴기를 못 하도록 차단하는 것이며 초크(choke, 질식) 포인트를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다만 미·중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겠다는 쪽은 아니다.”

미국은 달러 패권에 사활을 걸면서 달러를 마구 찍어내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중국이 달러 패권주의에 반기를 든다면, 미국에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로선 대안이 없다. 중국은 디지털 실크로드, 즉 중국판 디지털 코인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빠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미국은 용납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비트코인을 대체가능한 통화가 아니라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한다. 미국이 여전히 달러 패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 제재를 만들 수 있고, (제재의) 어디에 구멍이 뚫렸는지 파악할 수 있다. 중국이 도전하겠지만, 미국은 양보가 불가하다.”

최근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한 빈 살만의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를 달러 외 통화로 결제할 수도 있지 않나?

“만약 위안화로 결제하겠다고 한다면 엄청난 파문이 생긴다. 워낙 민감하기 때문에 당장은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질식시키려 한다면, 그 의도를 간파한 중국도 나름의 방책이 있을 텐데?

“중국의 반도체 수입은 석유보다 그 양이 많다. 반도체는 단순히 산업용뿐 아니라 군사용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고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만들려 한다면, 중국은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만들려 할 것이다. 그러면 이게 얼마나 걸릴 것이냐, 그렇게 만들어낸 반도체가 효과가 있을 것이냐, 그리고 다른 나라의 반도체 생태계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숙제가 남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중국의 상황 전개를 봐가면서 게임을 계속 바꿔갈 것이다.”


중국의 활로, 미국의 약한 고리를 찾아라


윤석열(왼쪽) 대통령 시대를 맞아 한·중 관계는 ‘리셋’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중 마찰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한국 외교의 숙제이기도 하다. /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흘러간다면 확률적으로 중국 경제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중국이 여기까지 올라온 이유는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빌렸고, 세계 경제에 편입되면서 거대한 공장을 자임한 덕분이었다. 여기서 공장을 돌리려면 원료와 소재의 공급처와 만든 물건을 내다 팔 수 있는 시장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전자는 한국·일본·대만 등 주변국가로, 후자는 미국과 유럽으로 갔다. 중국은 ‘우리가 시장이 될 수 있고, 소재도 수급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그러는 순간 축소지향적 경제로 가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 사이즈가 커졌고, 중국 국민의 욕망은 높아졌지만 정작 장기 저성장구조로 들어가고 갈수록 바닥을 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국내 자산 과잉투자에 대한 버블이 터졌을 때, 세계 경제와 차단돼 있으면 위기를 막아낼 수 있는 수단이 더 줄어들어 단기적 경제 혼란은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본다.”

중국 지도부가 이를 좌시하진 않을 텐데…

“중국 지도부가 내세우는 단어가 ‘쌍순환’이다. 여기에는 미국이나 서구에 의존하지 않고 반도체, 전기차, 클라우드, AI 등에서 자체 기술을 만들자는 것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우선 반도체부터 중국은 굉장히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도 반도체 하나라도 효과적으로 틀어막지 못하면 중국에 더 많은 여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필사적이다. 미국도 처음부터 완벽한 작전을 세운 것이 아니다. 그들도 포위하면서 배우고 있다. 신냉전의 제1장이다.”

중국은 미국에 굴복할 수도 없고, 내수로 버티자니 저성장 늪에 빠지는 진퇴양난에 처한 듯하다.

“중국은 미국의 약한 고리인 중부·동부 유럽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독일, 프랑스만 해도 중국 시장을 중시한다. 숄츠 독일 총리는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대만 문제는 우리와 관계없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못마땅하겠지만, G7의 불협화음은 중국이 노리는 바다. 미국은 이들 유럽 국가의 중국 의존도를 서서히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이들 국가도 (중국에서의) 기술 유출의 위험성 같은 것을 알고 있기에 (중국 밀착은) 쉽지 않다.”

중국이 설정한 약한 고리 중 하나에 한국도 포함될 것 같다.

“우리 정치권은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안미경중의 시대는 확연히 끝났다. 이제 우리의 (미·중 사이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이미 선택은 (미국으로) 돼 있는 것이다. 그 관점에서 중국과 우리가 가치는 달라도 비즈니스 파트너로 윈윈 게임을 해왔다’는 시각이다. 반면 다른 편에서는 ‘안미경중의 시대가 약해졌어도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면 안 된다. 중국이 있어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보는 세력이 있다. 문제는 두 정치 세력 중 어디가 집권하더라도 ‘최소한 이 정도는 지키자’라는 선을 합의해야 한다. 신냉전이 격화할수록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전략적 모호성은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한국 외교, 체면 차리지 말고 더 치열하게 다퉈야


미·중 사이에서 윤석열 정부의 포지셔닝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신냉전에선 안보의 논리가 경제의 논리를 뒤엎는다. 우리 입장에선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에 역할을 기대했지만 헛물을 켠 셈이다. 그리고 미국은 미·일 동맹, 한·미 동맹을 적극 활용하려 한다. 이런 면에서 윤 정부가 갖고 있는 기본적 외교 구상은 한반도, 동북아라는 좁은 지역을 넘어서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한국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을 포기할 순 없다. 한·중 관계를 ‘리셋’하는 과정에서 옛날처럼 갈 순 없겠지만, 그 과정이 보다 전략적일 필요는 있다.”

우리 안의 반중, 친중 논란은 한국 정치의 진영논리와 연결되는 측면이 짙다.

“조선시대 말기도 아니고, 중국이 우리한테 마음먹고 태업하면 전 세계 경제를 스톱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힘에 대해 인식을 하면, 상대가 거칠게 우리의 주권을 침해했을 때에는 분명히 선을 긋는 것이 제대로 된 정치가 아닌가 싶다.”

미·중이 겉으론 으르렁거리지만, 실제 교역량은 역대 최대다. 한국이 볼 때, 미국은 중국과 저렇게 장사를 잘하면서 왜 정작 우리한테는 반도체 중국 수출을 규제하려 드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미국의 ‘내로남불’에 대해 한·미·일 사이의 경제와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그 대가를 우리도 요구해야 한다. 우리 외교에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들이대는 것은 없어 보인다’는 정서가 있다. 하지만 국제 문제는 중이 제 머리 깎아야 하는 곳이다. 공무원이 치열하게 다툼을 해야 나중에 다른 것을 얻을 수 있는 여지가 확보된다. 여기서 ‘알아서 해주겠지’, ‘우리 최대의 무역 상대국인데 자극하면 안 돼’ 이런 식으로 넘어가지 않았나. 그 결과 전기차 배터리는 10년 전 우리 기술이 세계를 압도했지만 이제는 중국이 대체재가 됐다. (미국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배터리 생산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면 원료 확보가 어렵게 된다. 원료 대부분이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호주, 캐나다는 환경 문제 때문에 안 한다. 상황이 이런데 우리가 미국에 뭘 믿고 투자를 하나? 무조건 우리 기업이 투자만 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미국을 움직이도록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필요하면 비슷한 처지인 일본과 연합 전선을 펴야 한다. 오히려 미국에 할 말을 할수록 우리의 레버리지가 올라간다.”

중국 의존적인 한국의 경제 구조는 ‘회색 코뿔소’
이미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셈법이 복잡할 것 같다. 특히 중국 비중이 큰 편인 SK하이닉스는 고민이 깊을 텐데.

“미국은 중국에 핵심 반도체 장비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네덜란드 ASML 같은 외부의 장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투입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게 안 되면 손실이 계속 날 것이다. 설령 네덜란드 장비가 제한적으로 도입되며 제한적 업그레이드가 될 순 있다. 하지만 이것도 미국이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통제 시스템에서 될 것이고, 이마저도 미국이 확신이 없으면 서서히 소멸되는 쪽으로 갈 것 같다. 다만 이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임박한 상황은 아니다.”

한국이 글로벌 G10에 들어갈 만한 미들파워 잠재력을 갖췄다면 미·중 사이에서 어떻게 관계를 정립해 나가야 할까?

“노무현 대통령 때 ‘동북아 균형자’라는 말이 나왔지만, 균형자가 되려면 양쪽 못지않은 힘이 있어야 된다. 기본적으로 미·중 신냉전 시대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선택한 한국이 어느 쪽인지는 이미 정해진 것이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뒤 체제 경쟁이 아니라 잘사는 경쟁이 펼쳐졌고, 이를 위해 한국은 중국이라는 공장을 적극 활용했다. 그러다 이제는 중국에 핵심 부품이 들어가는 것을 잘라내겠다는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제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중국 의존적인 경제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제를 무기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블랙 스완(검은 백조)’이 아니라 ‘회색 코뿔소’ 같은 것이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 녹취 정리 권혁중 월간중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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