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영웅]③비핵화에 묻힌 희생, 尹정부 '마지막 기회'
'보훈 강조' 尹정부, 진상 규명 마지막 기회
"진상규명위 설치…예우는 보훈부가 맡아야"
편집자주 -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며 한반도에서 포성이 멈췄다. 그러나 수만 명의 국군포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북한의 탄광으로 내몰렸고, 전장으로 뛰어든 젊은 용사들은 조국의 외면 속 '잊혀진 영웅'이 됐다. 70년이 흘러 북한에 억류된 생존자는 90세를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마지막 기회'로 평가되는 이유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국군포로의 희생을 외면한 제도를 살펴보고, 개선책을 모색한다.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생존자의 연령이 90세를 웃돌 것으로 추정되면서 윤석열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송환을 촉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비롯해 유관 부처가 유기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26일 통일부에 따르면 남북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1964년까지 군사정전위원회에서 11차례에 걸쳐 포로 송환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진전은 없었다. 2018년 6월 제12차 적십자 회담에서 마지막 언급을 끝으로 정부의 공식 기록에서 사라졌다.
역대 정부의 '침묵'…외국인이 북한인권결의안 설득
역대 정부는 보수·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국군포로 송환에 침묵했다. 한국 정부는 왜 이렇게까지 무심했을까. 표면적 이유는 '비핵화 논의'가 꼽힌다. 전직 통일부 관료는 "2000년대 초부터 귀환 국군포로가 늘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며 "북한을 달래야 하는 입장에서 포로 송환 문제를 꺼내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라고 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국군포로를 주요 의제에서 배제했다. 이 또한 대화를 위한 '의도적 외면'이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무엇보다 지난 정부가 추진한 '종전선언'은 문제를 '해결 불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웠다. 억류된 국군포로에 대해 아무런 의제도 담기지 않은 종전선언이 정전협정을 대체할 경우 송환을 요구할 법적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제무대에서도 책임을 방기하는 모습으로 비판을 자초했다. 2021년 3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에 최초로 '미송환 전쟁포로와 그 후손의 인권 탄압 우려'에 관한 내용이 명시됐는데, 정작 한국 정부가 공동제안국에서 빠진 것이다. 막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각국의 지지를 호소한 것은 우리 외교부가 아닌 '폴란드인'이었다.
이를 주도했던 요안나 호사냑 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은 "당사자인 한국 정부는 침묵을 지켰고, '우리도 반대하진 않겠다'며 이해할 수 없는 입장을 냈다"고 회고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가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한다면, 국군포로를 강제노역으로 몰아넣는 북한의 반인도 범죄 행위가 핵 개발과 무관하지 않다는 본질을 국제사회에 적극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훈' 강조하는 尹…고령의 생존자들, 마지막 기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군포로 문제는 전환점을 맞고 있다. '보훈'을 강조하는 정책 기조에서 나온 기대감이다. 특히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납북자, 억류자,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양국 정상의 공동성명에 국군포로 문제가 최초 명시된 것이다.
생존자 고령화에 따른 시급성과 현 정부의 적극적인 기조에 맞춰 국군포로를 전담하는 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의 경우 1993년 국방부 산하에 포로·실종자 사무국(DPMO)을 설치하고 2차 세계대전, 6·25전쟁 등 전장에서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병사, 사망자 유해를 송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관련 대책을 수립하겠다며 1999년 발족한 '범정부 국군포로대책위원회'가 전부다. 통일부 등 7개 부처가 참여하지만, 사안을 주관하는 국방부 소속은 2명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기회의까지 서면으로 대체되면서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정수한 물망초 국군포로송환위원장(예비역 육군준장)은 정부 차원의 '국군포로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국군포로 상당수가 10~20대에 전장으로 뛰어든 만큼 이들에 대한 목소리를 낼 가족이 생존해 있지 않은 까닭이다. 정 위원장은 "전시 납북자의 경우 남한에 있는 가족들이 진상규명위원회도 만들고, 관련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국제법 위반 여부까지 따져보고 있다"며 "국군포로 문제는 진상규명을 요구할 주체도 마땅치 않고, 아직 정부 차원의 조사도 이뤄진 바 없다. 호적과 정부 문서 등에 대한 조사권을 가진 위원회를 만들어서 더 늦기 전에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구한 적도 없으면서"…죽어서도 예우 안하는 軍
'국군포로'에 대한 기준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사망한 뒤 송환될 경우 국군포로로 인정되지 않고, 참전과 희생에 부합하는 예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억류된 생존자 연령이 90세를 웃도는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2015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국군포로 손동식 이등중사는 북한에서 모진 고초를 겪다 1984년 숨을 거뒀다. 탈북한 딸 손명화씨는 '고향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천신만고 끝에 아버지의 유해를 송환했고, 손 이등중사는 6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 정부의 조력은 없었다. 오히려 국방부는 DNA 감식을 거쳐 '국군포로 손동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보상이나 명예 회복을 거부했다. '죽어서 돌아온 포로'라는 이유 때문이다.
국군포로는 신분상 '현역'이라는 이유로 국방부가 주관하지만, 지원·예우 업무는 '보훈'에 해당하는 만큼 보훈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국방부는 관련법에 따라 국방부가 주무 부처라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2017년 귀환 국군포로 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30명(86%)이 국방부의 지원을 원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손명화 국군포로가족회 대표는 "해마다 관련 예산을 수억씩 챙기면서 단 1명이라도 송환했는지 묻고 싶다"며 "아버지를 1951년도 전사자로 대충 처리해놓고, 아직도 수정하지 않고 있다. 아버지가 당시 전사했다면 1962년생인 내가 어떻게 태어났겠나"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어 "국방부는 돌아가신 귀환 국군포로의 장례식도 민간단체에 예산을 주고 알아서 처리하게 하고 있다"며 "마땅한 예우도 갖추지 않는 군에서 보훈부로 주무 부처를 옮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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