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줄어든 수입, 이렇게 넘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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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주 기자]
지난 6월 말로 나의 은퇴 생활이 어느덧 2년을 넘어섰다. 규칙적으로 출근하는 일터가 없어져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그동안 가족 구성원과의 소소한 부딪힘도 많았다. 나이 60에 또 다른 의미의 성장통을 겪은 것이다.
이제는 대화 기술과 공감 능력을 장착한 남자로 탈바꿈해 은퇴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자평한다. 은퇴가 나를 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이끈 셈이다. 좋은 것이 다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것이 다 나쁜 게 아님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내가 집에서 무위도식하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전문직에 종사했던 사람이 은퇴했다고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포기하고 지내는 나를 지인들은 어색해 하는 걸 넘어 이상해 한다. 경제적으로도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한다.
그러면 나는 '자발적 청빈'이 생활 좌우명이라 그렇게 살고 있다고 자존감 있는 어투로 대꾸하곤 한다. 빈곤은 삶을 어찌할 수 없는 괴로운 것으로 만들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부족하지만 맑은(淸貧)' 삶으로 이끌 수도 있다고 믿기에 나 스스로 선택하여 부족하게 산다는 의미로 말이다.
은퇴하고 일이 없으면 수입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 가족의 수입은 국민연금과 사적으로 가입한 연금에서 나오는 것이 전부다. 현역 때와 비교해보면 1/3 토막 수준이다. 몇 년 지나면 사적 연금도 끝난다.
아들이 둘인데, 큰 녀석은 다행히 그 어렵다는 취업에 성공해서 독립했다. 대학생인 작은 녀석은 마흔 넘어 생긴 늦둥이라 아직 지원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호기 있게 '자발적 청빈'이라고 우기지만 실상은 강요된 청빈인 셈이다.
그렇다고 강요된 청빈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점이 제법 많다. 아들에게 어쩌다 외식을 제안하거나 필요한 돈을 지원해주면 그렇게 고마워할 수 없다. 우리 부부에게 있어 전에는 당연시 하던 근사한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도 그 한계효용이 무한대다. 가끔 하는 소박한 여행도 더 알차고 기쁨이 크다.
요즈음 자주 하는 서울 나들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걸어 다니다 보니 몰랐던 풍경을 매번 새롭게 경험하게 한다. 건강증진은 덤이다. 이전에는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읽었다면 이제는 도서관에서 빌려보니 책에 대한 소중함과 집중도가 높아져 독서 효능감도 좋다.
▲ 책은 나에게 부족하게 살더라도 괜찮다고 용기와 확신을 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래선지 책은 자꾸만 소유하고 싶다. |
ⓒ 정승주 |
일찍이 법정 스님은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하면 그 무언가에 얽매이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스님은 하루 한 가지씩을 버리는 '무소유'의 삶을 다짐하고 실천했다. 그때 스님 나이가 40이 채 되지 않았다니 그 혜안이 놀랍기만 하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 법정 지음, <무소유>, 범우사, 1976, 22쪽
철학자 유대칠은 무언가를 소유하면 법정 스님의 말처럼 소유물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유의 결과로 얻게 되는 기쁨에 취해 타자에 대한 공감과 공존하려는 의식마저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사람에게 존재의 근거이기도 한 '관계'의 왜곡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유의 기쁨은 '나'의 주체성을 망각하게 한다. 무엇인가를 얻음으로 누리는 기쁨은 소유되는 대상이 기쁨을 주는 주체가 되어 나를 지배한다. 나는 그 소유물에 종속된 노예가 되어버린다. (중략) 소유의 기쁨은 공감을 무디게 한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남'의 것은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중략) 소유의 기쁨이 가득한 곳에 '더불어 있음'은 성가신 일이다." - 유대칠 지음, <대한민국철학사>, 이상북스, 2020, 200~201쪽
선각자의 가르침대로 무소유로 살아가면 좋겠지만 나처럼 겁 많고 귀 얇은 소시민이,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그에 따른 유혹과 욕망을 무시하며 살기는 어렵다. 마침 정호승 시인은 돈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자족하며 사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말한다.
"돈은 인간을 주인처럼 섬기기도 하지만 노예처럼 종속시키는 본질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돈에 종속되거나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돈의 주인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돈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돈이 많든 적든 자족하면 됩니다." - 정호승 지음,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비채, 2006, 249쪽
결국 나는 조금 덜 가지고 그 처지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른바 제3의 길을 선택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적게 가지더라도 그 부족한 만큼 다른 빛깔로 채울 수 있다는 이 오묘한 상황을 맛보고 즐기는 것이 은퇴 이후의 삶으로 괜찮을 성싶었기 때문이다.
몇 년 지나면 이제 수입이라곤 국민연금만 남게 될 것이다. 지금 나와 아내의 지상 최대의 목표는 둘째의 독립이다. 아들도 그동안 세뇌(?)를 많이 당해선지 대학 졸업 때까지만 지원해주면 경제적으로 반드시 독립하겠다 한다.
그때까지 잘 버티기만 하면 된다. 부족하면 좀 더 좁은 집으로 가서 살고, 그것도 어렵다면 언론인 김선주의 말대로 십 년에 백 킬로미터씩만 서울로부터 멀어져서 살면 된다.
은퇴 3년 차에 접어든 나는 지금의 부족한 삶에 만족한다. 현역 시절의 풍족하던 때보다 낫다는 느낌도 자주 든다. 그래서 감사하다. 그놈의 마음이 아주 가끔 흔들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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