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퍽거리는 누런 잔디에 발 박혀"...한국 야구에 닥친 역대급 불운

안희수 2023. 7. 26.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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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 속에 프로 데뷔 뒤 가장 킨 재활기를 보내는 이정후. 사진=키움 히어로즈

예상보다 심각한 부상 정도.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의 수술 소식을 접한 야구팬이 공통적으로 가진 생각이 아닐까. 

상황을 돌아보자. 이정후는 지난 22일 부산 사진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 8회 말 수비에서 상대 선두 타자 김민석의 중전 안타를 잡아 공을 넘긴 뒤 갑자기 벤치를 향해 ‘교체’ 시그널을 보냈다. 이후 절뚝거리며 트레이너의 부축을 받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좀처럼 아픈 티를 내지 않는 선수가 이례적으로 직접 교체를 요구했으니,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장기 이탈까지 예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팀 동료 김혜성이 “가벼운 (부상이) 아닌 것 같아서 걱정된다”라고 귀띔할 때도 그랬다.

정밀 검진 결과는 왼쪽 발목 신전지대(발목 힘줄을 감싸는 막) 손상. 봉합 수술 뒤 재활 치료에 3개월이 소요된다고 한다. 

피로 누적에 따른 부상일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지만, 신전지대라는 생소한 부위에 문제가 생긴 건 운이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셀 수 없이 반복한 수비 동작을 하다가 다쳤다. 

문제점도 있었다. 홍원기 감독은 25일 고척 한화 이글스전을 앞두고 상황 설명을 추가했다. 홍 감독은 “그 사이 비가 많이 와서 그날 사직구장 질퍽거렸다. 누런 잔디 부분이 푸른 잔디보다 더 질퍽거렸다고 한다. 거기(누런 잔디)에 스파이크가 약간 박힌 상태에서 (수비를 위해) 스타트를 하다가 발이 밀렸다고 한다”라고 이정후의 말을 빌려 설명했다. 

구장 관리에 아쉬움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홍원기 감독은 “모든 선수가 같은 조건 속에서 (경기를) 했기 때문에 그건 아닌 거 같다. 이정후가 불운했다. 올해 우리 팀과 비는 악연인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정후는 오는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핵심 선수였다. 소속팀 키움에선 대체 불가 선수다. 올 시즌을 마친 뒤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MLB) 진출을 타진했다. 거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대표로 있는 보라스 코퍼레이션과도 계약했다.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드라마틱한 반등을 보여주며 타격왕 3연패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이 모든 상황이 이정후의 불운을 더 안타깝게 만들었다. 

홍원기 감독은 “오늘(25일) 잠깐 봤는데, 격려밖에 할 수 없더라. 팀도 팀이지만, 프로 선수로서 아프지 않은 게 가장 중요하다. 수술과 재활 치료가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당부도 전했다. 누구보다 허탈감이 큰 게 이정후 자신일 것이다. 

키움은 이정후 없이 치른 23일 롯데전에선 승리했지만, 홈에서 열린 25일 한화전에선 6-16으로 완패를 당했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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