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 단독 인터뷰] ② "평생 잊을 수 없는 킴킴킴킴, 설마 바이에른에서도 듣겠어요?" 나폴리 1년 결산
[풋볼리스트=뮌헨(독일)] 김정용 기자= 김민재가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단 한 시즌만 뛰면서 우승, 최우수 수비수상, 베스트일레븐 선정을 모두 달성할 거라고는 자신도 몰랐다. 정확히 물어보자 처음엔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시즌을 치르면서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 목표를 하나씩 추가하다보니 결국엔 모든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22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의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김민재와 나폴리 시절을 결산했다. 단 1시즌 만에 '수비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수로 인정받은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놓은 건 처음이다. 나폴리를 떠나 바이에른으로 이적하는 과정은 그만큼 빠르고 급했다.
나폴리 시절을 결산하는 발언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이 기회에 이야기해보죠. 며칠 전 포르투갈인 에이전트와 이야기할 때 보니까 상대방을 놀릴 때 '맘마미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이탈리아인의 말투가 약간은 몸에 배어 있다는 느낌?
- 살면서 자연스럽게 배운 것 같아요. 맘마미아라는 게 내가 힘든지, 좋은지, 어려운지 등등을 표현하는 단어잖아요. 만능 용어니까 종종 썼죠.
이탈리아어는 얼마나 배웠어요?
- 생활에서는 '영수증 주세요'를 배웠죠. 어느 나라 가든지 초반에 배우는 말이고요. 축구장에서는 '올려라, 내려라, 왼쪽, 오른쪽, 멈춰라, 뒤에 사람 온다' 정도를 배웠죠. 예를 들어 라인을 내리라고 할 때는 '스카파(scappa, 달아나다)'라고 하거든요. 다들 그런 간단한 건 이탈리아어로 말해요. 그래서 빨리 배우려 했죠. 그리고 제가 한마디씩 더 배울 때마다 애들이 좋아했어요. 한국 사람 입장에서도 외국인이 한국말 해주면 재밌잖아요.
전술 미팅은 이탈리아어로 하나요?
- 팀 미팅 때는 영어 통역이 있어요. 그런데 운동장에서는 무조건 이탈리아어를 써요. 여기도 독일어로 하기 때문에 빨리 배워야 돼요. 단어 몇 개로 최대한 알아듣고, 선수들 하는 거 보고 눈치껏 따라해야 하죠.
많이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가 경기 도중 스팔레티 감독이 김민재 선수를 붙잡고 잔뜩 얘기하는 장면인데요. 말이 얼마나 통했나요?
- 그럴 때는 영어로 해 주세요. 축구에 쓰이는 영어는 잘 하시니까. 저도 대꾸할 정도는 되고.
나폴리 시절 특히 인상적이었던 동료를 칭찬한다면?
- 일단 다들 좋은 선수고, 전 모두 리스펙트 해요. 저도 리스펙트 받았고. 다 좋았던 선수 중에서도 한 명 꼽으라면 디로렌초 선수. 제가 두 번째인가 많이 뛰었는데(실제로는 필드플레이어 중 조반니 디로렌초, 스타니슬라프 로보트카에 이어 3위) 저보다 많이 뛴 선수가 디로렌초에요. 저는 힘들다는 말도 하고 어필도 했는데, 디로렌초는 매번 열심히 하고 늘 태도가 똑같아요. 저는 가끔 사람들 있는 곳에서 힘들다는 티를 내는데 디로렌초는 절대 안 내요. 따로 다가가서 물어봐야 힘들다고 하지. 아예 못 쉰 선수가 매 경기 성실하게 뛰고, 경기와 똑같은 강도로 훈련하는 걸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저도 훈련 열심히 하는 편인데도요. 불평불만 할 수 없다는 걸 배웠죠.
훈련장 분위기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디로렌초는 풀백뿐 아니라 중앙수비나 윙어도 소화한 적 있는데 군말 없이 감독 지시대로 뛰면서 늘 한 명 몫을 해주는 선수죠.
- 그것 역시 선수로서 좋은 태도를 갖고 있다는 뜻이죠. 정말 많이 배웠어요.
훈련에서 상대해 보면 제일 잘했던 선수는? 득점왕 빅터 오시멘과 부딪쳤을 때도 궁금하고요.
- 오시멘이죠. 훈련하면 부딪치는 포지션이니까. 경기에서 상대로 만나면 힘들 것 같아요. 실력도 좋은데, 수비수를 괴롭히는 면이 있어요. 멀리 있는데도 끝까지 추격해서 괴롭히거든요. 보통은 수비수가 공격수를 괴롭혀야 하는데 오시멘은 반대로 자기가 괴롭히는 법을 알아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데, 적으로서 붙게 된다면 대회를 더 통틀어도 가장 껄끄러운 편일까요?
- 네. 무조건.
며칠 전 나눴던 탕기 은돔벨레 선수 이야기가 기억나는데요. 이 선수 이미지가 좋진 않지만 동료로 지내보면 장점이 느껴진다고요.
- 성격도 좋아요. 저는 가깝게 지냈다고 생각해요. 그 선수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되게 좋은 선수고 좋은 친구였다고 생각해요. 테크닉이 되게 좋아요. 공을 안 빼앗기죠. 훈련에서 2명 정도가 붙으면 가볍게 제쳐버려요. 이미지 안 좋은 건 아는데 훈련장에서 느낀 장점은 확실히 있었어요.
국가대표팀의 벤투, 페네르바체의 페레이라에 이어 스팔레티까지 김민재에게 엄청난 부담이 지워진 전술을 썼어요. 일명 김민재 원백인데요. 세리에A 최강수준 팀에서도 이런 역할을 맡겼을 때 당혹스럽지 않았나요?
- 팀이 공격을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이 수비 부담이 커져요.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감독이 다른 선수들에게 '나가지 마라'고 하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죠. 저는 감독들이 많이 믿어준 것 같아요. 되게 고맙죠.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더 뛰었던 것 같아요. 그게 동기부여로 많이 다가왔고요. 수비 부하가 큰 상황에서 내가 한두 개 막아주면 팀 전체가 뛰는 거리는 엄청 줄어들거든요. 예를 들어서 제가 수비부담을 이겨냄으로써 필드 플레이어 전원이 50m씩 덜 움직이게 해줬다고 쳐요. 그럼 수비 한 번에 팀 활동량 500m를 줄여 준 거고, 두 번 막아주면 1,000m 잖아요. 그게 얼마나 큰 역할이겠어요? 이게 세리에A에서는 잘 된 것 같아요.
저는 부하와 부담이라고 물어봤지만 달리 보면 감독이 신뢰해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동기부여로 삼았군요?
- 그렇죠. 페네르바체에서는 사실 그 부하를 이겨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10점 중에서 5, 6점 정도밖에 못한 것 같아요. 역습 상황에서 골도 많이 먹었잖아요.
아니, 페네르바체 시절 그 경기력이 5점이라뇨. 수비를 혼자 하는데 먹을 수도 있지….
- 제 말 좀 들어봐요(웃음). 그 시절에 많이 배웠다는 거예요. 막무가내로 전진해서 잘 막는 경우도 있었지만 비슷한 상황을 워낙 많이 겪었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운 것 같아요. 어떤 판단이 베스트인지, 100% 확률로 판단한다면 세계최고 선수겠죠. 하지만 최대한 높은 확률로 판단하는 법을 배운 거예요. 세리에A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서 점점 더 발전한 거죠.
부하를 많이 지우는 전술을 많이 겪다보니 경험이 쌓이고, 전술적인 판단력이 성장했다는 거군요.
- 네. 저를 비롯한 중앙수비들에게 부담이 큰 전술을 소화한 게 도움이 됐죠.
시즌 초 연속 헤딩골을 넣었는데요. 헤딩 관련 스탯(수치)도 아주 좋았고요. 제공권이 발전한 건가요?
- 스탯으로만 봐도 발전했다고는 할 수 있겠죠. 이런 이유가 있어요. 나폴리에서는 수비 한 번 하면 '킴킴킴킴'이라는 네임콜을 해주잖아요. 거기 취해서 뛰었죠. 그게 엄청난 동기부여에요. 저한테만 해주는 콜이잖아요. 그래서 좀 더 잘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스탯이 잘 나온 것 같아요.
응원이 확실히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한 사례군요.
- 확실히 영향이 있죠. 그런 콜을 누가 받아보겠어요? 공격수나 받는 건데. 그 덕분에 더 집중하게 됐다고 할까요. 항상 다가오는 상황에 대비하려 했죠.
가장 아쉬웠던 시기는 언제인가요?
- 11월. 월드컵 직전. 그때 몸이 좀 '갔다'고 할까요.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죠. 그정도로 높은 강도로 매 경기 뛴 적이 없다보니까 빨리 퍼졌어요. 제 실수로 골을 먹기도 했던 시기죠.
그 누적된 피로가 월드컵에서 부상의 형태로 터졌고요?
- 결국에는.
'킴킴킴킴' 네임콜도, 빅리그 우승도, 거의 모든 한국 선수가 겪어보지 못한 일이죠. 그리고 나폴리 팬들은 유독 미쳐있는 사람들인데요. 거기서 우승한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 이거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한참 고심하며) 굉장하다, 좋았다, 놀랍다 다 아닌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해야겠네요.
팬들이 마구 난입해서 잡아당기고 뽀뽀하려 들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그때 얼떨떨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는데요.
- 사실 우승 확정한 날에는 실감을 별로 못 했어요. 나중에 홈에서 파티 할 때야 실감이 나서 사진 찍고, 소리 지르고, 은돔벨레에게 가서도 이야기하고 즐겼죠. 사실 관중들이 난입한 날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팔에 힘주면 옆에 있는 사람이 다칠 것 같아서 온몸에 힘을 빼고 '마음대로 하세요' 상태였죠.
나폴리 시절을 생각할 때 앞으로 그리울 만한 요소가 있을까요?
- 팀 동료죠. 우승했을 때 함께했던 선수들이고 그들 덕분에 베스트일레븐과 수비상도 받았죠. 그게 혼자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일단 한 팀에서 3개를 몰아 받았다는 것도 전례가 없고 대단하긴 한데, 할 수만 있다면 저와 흐비차와 오시멘이 받은 상을 쪼개서 11명에게 나눠주고 싶었죠. 수비수 중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저만 받았으니까 고마움 반, 미안함 반. 그리고 팬들은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네임콜을 만들어 준 것 자체가…. 그걸 어디서 들어보겠어요? 여기서 설마 생기겠어요?
바이에른에 온 뒤에도 '굳이 민재라고 부르지 말고 킴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는데
- 선수들도 킴이라고 부르거든요. 팬들도 선수들도 해설자도 자연스럽게 부르는 말이라서. 하던 대로 하셔도 된다는 말이었죠.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제일 흔한 성씨인데도 유럽파 중 김씨는 비교적 드물었네요? 손, 차, 박, 이, 구, 조, 홍, 정….
- 정말 그렇네요.
어느 팀을 가든 장기적 목표를 정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세리에A에서는 최우수 수비상이었던 건가요?
- 시즌 도중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베스트일레븐에 드는 거였는데, 전반기를 치르다보니까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우승으로 바꿨고. 하다보니까 모든 걸 이룰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수비상을 추가한 거죠.
동기부여를 위해서 시즌 도중 더 높은 목표를 계속 추가했다는 거군요?
- 선수는 축구장 안의 동기부여 요소가 있어야 돼요. 심지어 경기하다가 사소한 실수 하나 하면 자신에게 '야, 이래서 수비상 받겠냐? 정신 차려라'라는 말을 속으로 했어요. 그냥 '집중하자'보다 모티베이션이 잘 되거든요.
사진=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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