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형사재판 갑자기 당겨 선고하면 위법"… "방어권 침해"

최석진 2023. 7. 26.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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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재판에서 재판부가 사전 고지 없이 애초 지정한 선고기일보다 앞당겨 판결을 선고하는 것은 피고인이 출석한 상태에서 선고가 이뤄졌더라도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 및 징역 6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재판부는 "원심법원이 변론종결시 고지됐던 선고기일을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사전에 통지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급박하게 변경해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피고인의 방어권과 이에 관한 변호인의 변호권을 침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2019년 1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다수의 피해자들로부터 약 4억5000만원 상당의 금원과 자동차 2대(시가 1900만원 상당의 봉고 탑차와 시가 700만원 상당의 화물차)를 편취하고, 차량 판매대금 145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는 차를 팔아주겠다며 보증금을 요구하거나 대출 금리를 낮춰주겠다며 비용을 요구하는 등 다양한 수법을 사용해 피해자들을 속였다.

지난해 10월 1심 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2년과 징역 6월을 선고했다. 김씨는 국민체육진흥법위반(도박등)죄로 2020년 5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확정받았고, 사기죄로 2022년 9월 징역 2월 및 10월을 확정받았는데, 재판부가 형이 확정된 죄 이전에 저지른 범죄와 이후에 저지른 범죄를 나눠 형을 선고한 것이었다.

2심 재판부의 판단도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2심 재판부가 김씨나 김씨의 변호인에게 사전 고지도 없이 선고기일을 앞당겨 선고한 점이었다. 2심 재판부는 첫 공판기일인 3월 8일 변론을 종결하면서 선고기일을 4월 7일로 지정했는데, 갑자기 선고기일을 당겨 3월 24일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김씨는 선고 당일 교도관으로부터 법정에 출석하라는 지시를 받고 선고공판에 출석했다.

김씨는 이 같은 항소심 재판부의 선고 절차가 위법하다며 상고했다. 대법원은 김씨가 지적한 대로 2심 재판부가 선고기일을 갑자기 당겨서 선고한 것은 김씨의 방어권을 침해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은 판결의 선고는 변론을 마친 기일에 하되,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따로 선고기일을 지정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또 공판기일에는 피고인을 소환해야 하고, 검사와 변호인에게 공판기일을 통지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이 같은 절차가 준수되지 않은 채로 공판기일이 진행됐더라도 그로 인해 피고인의 방어권과 변호인의 변호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되지 않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판결에 영향을 미친 법령 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재판부는 "원심은 제1회 공판기일인 3월 8일 변론을 종결하면서 제2회 공판기일인 선고기일을 4월 7일로 지정해 고지했다"라며 "원심은 변론 종결 후 피해자와의 합의서 등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자료 제출을 위한 기간을 고려해 선고기일을 이같이 지정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지정·고지된 바와 달리 3월 24일 피고인에 대한 선고기일이 진행돼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피고인은 교도관의 지시에 따라 법정에 출석했다"라며 "이 같은 원심의 조치에는 선고기일로 지정되지 않았던 일자에 판결선고 절차를 진행함으로써 공판기일의 지정에 관한 법령을 위반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설령 3월 24일 재판장이 피고인이 법정에 있는 상태에서 선고를 하겠다고 고지함으로써 선고기일이 3월 24일로 변경된 것으로 보더라도, 양형자료 제출 기회는 방어권 행사의 일환으로 보호될 필요가 있다"라며 "형사소송법상 10년 미만의 형이 선고된 사건에서는 양형이 부당하다는 주장은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는 원심판결의 선고기일이 양형에 관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1심에서 징역 10년보다 가벼운 형을 선고받은 김씨의 경우 '형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상고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실상 2심 재판이 양형 부당을 주장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이를 박탈하고 갑자기 선고기일을 당겨 선고한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다. 한편 대법원은 김씨가 재판을 받고 있는 죄들과 그에 앞서 형이 확정되 죄들 사이의 죄수에 관한 2심 재판부의 판단에도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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