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곳은 우주뿐, ‘더 문’ [쿡리뷰]
칠흑같이 어둡던 스크린에 별들이 수놓아지자 극장은 곧 우주가 된다. 영화 ‘더 문’(감독 김용화)이 구현한 환상적인 우주 세계 덕이다. 국내 그래픽 기술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다만 줄거리가 빈약하다. 보는 맛과 즐길 맛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더 문’이다.
다음 달 2일 개봉을 앞둔 ‘더 문’은 달에 고립된 우주인을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아버지의 죽음에 부채감을 느끼고 있던 UDT 특수부대 출신 황선우(도경수)가 유인선 탐사 프로젝트에 자원하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우주 미아가 된 그를 구하기 위해 나로 우주센터는 총력을 다한다.
고립된 누군가를 구출한다는 줄거리에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를 떠올릴 수 있겠다. ‘더 문’은 그와 비슷한 듯 다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일병을 구하기 위한 다른 이들의 처절한 과정을 담는다면, ‘더 문’은 홀로 남은 황선우가 느낄 감정과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 그의 개인적인 서사까지 아우른다.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에 호소하는 분량이 길어진다. 호불호 역시 이 지점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
영상미는 뛰어나다. 김용화 감독이 “할리우드와 비교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예산(280억원)으로 이런 영화를 만드는 건 불가능”(언론시사회 간담회)이라고 자부한 만큼 멋진 화면을 보여준다. 두려움을 느낄 만큼 막막하고 광활한 우주를 실감 나게 구현했다. 시각특수효과(VFX)로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쏟아붓겠다는 야심이 느껴진다. 달 표면을 비추는 장면은 선명한 사진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전 홍보 과정에서 시종일관 그래픽을 강조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그래비티’(감독 알폰소 쿠아론)나 ‘인터스텔라’(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등에서 느꼈던 압도적인 분위기를 재현한다. 아이맥스(IMAX)로 관람하면 우주 속에 간 듯한 기분마저 느껴진다.
이야기는 엉성하다.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전개와 개연성이 부족한 일부 설정, 결정적일 때 도드라지는 신파가 발목을 잡는다. 시각 효과에 영화가 잡아먹힌 듯한 느낌도 난다. 높은 수준의 영상미를 다른 요소가 뒷받침하지 못해서다.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 부분도 여럿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항공우주공학 용어가 쉬이 와닿지 않으니 극과 겉도는 느낌이 든다. 웅장한 화면에 몰입되다가도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를 반복한다. 장단점이 극명하게 부딪히며 129분을 가득 채운다.
인상적인 건 도경수다. 극을 거의 이끌다시피 한다. 고립된 역을 맡은 만큼 그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홀로 연기한다. 감정을 주고받을 대상이 없음에도 희망과 절망이라는 양극단을 막힘없이 오간다. 1인극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줄 때도 있다. 시선을 끄는 건 화려한 특별출연 라인업이다. 이성민, 김래원, 이이경 등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적재적소에서 활약한다. 이외에도 그를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김재국(설경구) 나래 우주센터 전임센터장과 윤문영(김희애) NASA 유인 달 궤도선 메인 디렉터가 각자 위치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낸다.
작품이 기댈 곳은 우주뿐이다. ‘더 문’은 체험형 영화다. 국내 최초로 돌비 시네마에 맞춰 제작한 4K 음향과 첨단 시각효과 등이 어우러져 우주 조난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끔 한다. 이야기의 개연성과 전개에 집중하는 관객은 아쉬움을 표할 수도 있다. 다만 감독 전작인 ‘신과 함께’ 시리즈가 품고 있던 용서, 구원, 위로라는 정서에 공감했다면 ‘더 문’에도 감명을 받을 수 있겠다. 우주 경관을 이 정도로 구현한 기술력엔 관객 모두 이견 없이 찬사를 보낼 듯하다. 다음 달 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 시간 129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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