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글지글 끓어도 좋다? 바르셀로나 해변서 브래지어 벗어보니
10년째 신혼여행④ 스페인 바르셀로나
아내의 여행
바르셀로나는 지중해를 빼고선 설명할 길이 없다. 여행 책자마저도 바르셀로나 하면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추천한다. 아쉽게도 그곳은 여행자를 위한 바다다. 시내와 가깝다 보니 ‘나 바르셀로나에 왔다!’ 하고 사진 찍고 가는 사람이 태반이다. 나는 다 함께 물에 뛰어들어 여름을 즐길 해변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이름도 예쁜 바달로나 해변이다.
바달로나 해변은 시내에서 북쪽으로 가는 기차로 30분쯤 걸린다. 주말 바달로나행 열차 안은 여름 냄새로 가득하다. 바다로 향하는 이들의 상기된 표정과 재잘거림 그리고 가벼운 옷차림. 우리도 현지인들 틈에 슬며시 끼어들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라는 어느 소설의 첫 문장처럼 이 열차도 어둠을 뚫고 나오면 푸른빛으로 가득한 지중해가 펼쳐진다.
한 달 내내 매일 해변에 갔다. 어느 날은 눈을 뜨자마자 목욕탕을 찾듯 갔고, 또 다른 날은 퇴근 후 호프에 가듯 들렸다. 당시 수영을 못 했던 나는 어린이가 양팔에 끼는 튜브를 가지고 놀았다. 한 무리의 유치원생이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을 땐 잠시 부끄러웠지만, 여기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귀여운 뱃살도, 발가락에 자라난 털도, 물미역처럼 이마에 들러붙는 내 머리카락에서도 나는 자유였다.
물놀이가 지겨워질 즈음, 친구들끼리 오일 발라주고 태닝을 하는 10대들처럼 해변에 드러누웠다. 따라 하는 김에 그들처럼 비키니 상의도 벗어 봤다. 뭐랄까? 지중해에서 내 가슴이 느끼는 기분은 상쾌함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거대한 해방감 같은 것이었다. 바르셀로나 여름 바다에선 그래도 될 것 같은 충동이 나를 토플리스의 세계로 인도했다. 내친김에 상의를 탈의한 채 바다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종민이 타월로 가려가며 안절부절못하는 탓에 포기했다. 상의 탈의 덕분에 브래지어 라인 없이 예쁘게 태우긴 했으니 내게 그걸로 여름 바르셀로나는 충분했다. 나는 그렇게 해방감을 선물한 바르셀로나의 여름과 사랑에 빠졌다.
김은덕 think-things@naver.com
남편의 여행
물놀이도 지치고 피가 끓어오르는 것처럼 더워지면 바르로 갔다(스페인어는 Bar를 ‘바르’라고 발음한다). 공기가 습하지 않은 스페인은 그늘에만 들어가도 살 만하다. 거기에다 바르에 가면 창자의 융털까지 시릴 법한 맥주가 기다리고 있다. 한입에 털어 넣기 좋은 맥주 한 잔의 가격은 고작 1.5유로(약 2150원). 바르셀로나의 여름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뿐 아니다. 맥주의 짝꿍 타파스도 있다. 한 손가락으로 집기 딱 좋은 빵 위에 멋들어지게 음식을 올린 타파스는 맥주와 환상의 조합을 이룬다. 한낮의 태양을 피해 가게에 들어가 시원한 맥주와 타파스를 먹으면 더위는 싹 사라졌다.
평범한 맥주가 싫다면 스페인식 레몬 맥주 끌라라도 좋다. 달콤한 레몬 탄산음료에 맥주를 섞었는데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취하는 줄 모르고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른다. 스페인에서 마실 수 있는 특별한 여름 음료를 맛보고 싶다면 와인과 콜라를 절반씩 섞어 마시는 ‘틴도 데 베라노’를 주문해도 좋다. 이름부터 ‘여름 와인’이란 뜻으로 이베리아의 태양에 지친 몸을 녹여준다. 긴 비가 내린 올여름, 나는 틴토 데 베라노를 한 잔 따라 놓고 뜨거웠던 바르셀로나의 여름을 추억한다.
백종민 alejandrobaek@gmail.com
■ 스페인바르셀로나 한 달 살기 정보
「
비행시간 : 12시간 가량(국적기는 비싼 편. 시간이 걸리더라도 경유편 추천)
날씨 : 6∼9월 여름 바르셀로나를 즐길 수 있음(다만 7, 8월은 여름 성수기라 모든 비용이 높아짐)
언어 : 스페인어(관광지를 벗어난 동네에서 간혹 까딸루냐어 메뉴판을 볼 수도 있음)
물가 : 스페인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조금 더 비싼 편
숙소 : 600유로(중심부에서 30분 내외 거리, 방 한 칸을 빌려 쓸 때 기준). 집 전체는 800유로 이상
」
■ 여행작가 부부 김은덕, 백종민
「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작가 부부이자 유튜버 부부.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고, 그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지은 책으로 『사랑한다면 왜』 『없어도 괜찮아』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 등이 있다. 현재 미니멀 라이프 유튜브 ‘띵끄띵스’를 운영하며 ‘사지 않고 비우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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