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글지글 끓어도 좋다? 바르셀로나 해변서 브래지어 벗어보니

손민호 2023. 7.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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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신혼여행④ 스페인 바르셀로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최대 랜드마크이자 100년 넘게 지어지고 있는 걸로 유명한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스페인 현지 친구가 물었다. “여름이 되면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동네 사람 끼니를 챙겨야 하는 사람, 바로 빵집 주인이란다. 여름에 바다 한 번 못 가고 바쁘게 지내는 걸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그곳,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왔다.

아내의 여행


바다를 빼놓고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여름을 설명할 길은 없다.
2017년 여름이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더운 여름을 피하기에 바르셀로나는 적절치 않을지도 모른다. 작열하는 태양이 정수리를 지글지글 태운다. 그렇다고 실내 어디서나 에어컨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그렇다. 여름 바르셀로나는 여러모로 여행자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그런데도 나는 여름만 되면 바르셀로나를 꿈꾼다. 여름도 다 같은 여름이 아니어서다. 바르셀로나에는 ‘여름 바이브(Vibe·분위기)’가 있다. 도시 전체에 흐르는 여름의 공기. 짧은 여행 혹은 관광으로는 이 바이브가 느껴지지 않는다.

바르셀로나는 지중해를 빼고선 설명할 길이 없다. 여행 책자마저도 바르셀로나 하면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추천한다. 아쉽게도 그곳은 여행자를 위한 바다다. 시내와 가깝다 보니 ‘나 바르셀로나에 왔다!’ 하고 사진 찍고 가는 사람이 태반이다. 나는 다 함께 물에 뛰어들어 여름을 즐길 해변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이름도 예쁜 바달로나 해변이다.

지중해를 따라 달리는 카탈루냐 지역 통근열차 로달리스 데 카탈루냐.

바달로나 해변은 시내에서 북쪽으로 가는 기차로 30분쯤 걸린다. 주말 바달로나행 열차 안은 여름 냄새로 가득하다. 바다로 향하는 이들의 상기된 표정과 재잘거림 그리고 가벼운 옷차림. 우리도 현지인들 틈에 슬며시 끼어들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라는 어느 소설의 첫 문장처럼 이 열차도 어둠을 뚫고 나오면 푸른빛으로 가득한 지중해가 펼쳐진다.

한무리의 어린이들이 튜브를 팔에 끼고 나타난 상황. 남녀노소, 나이 불문 현지인의 사랑을 받는 바달로나 해변의 모습이다.

한 달 내내 매일 해변에 갔다. 어느 날은 눈을 뜨자마자 목욕탕을 찾듯 갔고, 또 다른 날은 퇴근 후 호프에 가듯 들렸다. 당시 수영을 못 했던 나는 어린이가 양팔에 끼는 튜브를 가지고 놀았다. 한 무리의 유치원생이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을 땐 잠시 부끄러웠지만, 여기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귀여운 뱃살도, 발가락에 자라난 털도, 물미역처럼 이마에 들러붙는 내 머리카락에서도 나는 자유였다.

평일 오후 방과 후 친구들과 함께 해변으로 몰려든 바르셀로나 10대들.

물놀이가 지겨워질 즈음, 친구들끼리 오일 발라주고 태닝을 하는 10대들처럼 해변에 드러누웠다. 따라 하는 김에 그들처럼 비키니 상의도 벗어 봤다. 뭐랄까? 지중해에서 내 가슴이 느끼는 기분은 상쾌함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거대한 해방감 같은 것이었다. 바르셀로나 여름 바다에선 그래도 될 것 같은 충동이 나를 토플리스의 세계로 인도했다. 내친김에 상의를 탈의한 채 바다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종민이 타월로 가려가며 안절부절못하는 탓에 포기했다. 상의 탈의 덕분에 브래지어 라인 없이 예쁘게 태우긴 했으니 내게 그걸로 여름 바르셀로나는 충분했다. 나는 그렇게 해방감을 선물한 바르셀로나의 여름과 사랑에 빠졌다.
김은덕 think-things@naver.com


남편의 여행


시원한 에어컨 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 꼭대기까지 올라간 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르셀로나 벙커.
스페인의 여름 태양은 너무나 강렬해서 눈치 없이 그 아래 서 있으면 타 죽을 수 있다. 이미 해변에서 여러 번 경험했다. 그렇게 이베리아 반도의 여름에 된통 당하고 난 뒤 다시 갈 자신이 없었다. 더위에 취약한 나라는 인간은 스페인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러나 은덕이 ‘여름 바르셀로나’ 노래를 부르는 통에 어쩔 수 없이 2017년 여름도 그곳에서 보내야 했다. 역시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상의 탈의에 맛 들인 은덕이 바다로 뛰어들려고 해 더 힘들었다.
스페인 사람에게 바르는 일종의 생활이다. 목을 축이기 위해서 혹은 끼니를 채우기 위해서 그리고 친구와 수다를 떨기 위해서 바르에 간다.
그렇다고 바르셀로나에서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더위를 식혀주는 나만의 음식 피서법이 있어서였다. 무엇보다 해변에서 먹은 ‘보카디요 데 하몽’의 맛은 잊을 수 없다. 보카디요는 스페인 사람의 샌드위치다. 반으로 가른 바게트에 토마토·마늘을 문지르고 올리브유를 바른 뒤 그 위에 하몽을 올려 먹는다. 김밥처럼 맛도 좋고 어디서나 살 수 있어 바다에 갈 때마다 보카디요를 챙겼다.

물놀이도 지치고 피가 끓어오르는 것처럼 더워지면 바르로 갔다(스페인어는 Bar를 ‘바르’라고 발음한다). 공기가 습하지 않은 스페인은 그늘에만 들어가도 살 만하다. 거기에다 바르에 가면 창자의 융털까지 시릴 법한 맥주가 기다리고 있다. 한입에 털어 넣기 좋은 맥주 한 잔의 가격은 고작 1.5유로(약 2150원). 바르셀로나의 여름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뿐 아니다. 맥주의 짝꿍 타파스도 있다. 한 손가락으로 집기 딱 좋은 빵 위에 멋들어지게 음식을 올린 타파스는 맥주와 환상의 조합을 이룬다. 한낮의 태양을 피해 가게에 들어가 시원한 맥주와 타파스를 먹으면 더위는 싹 사라졌다.

바르셀로나의 여름 맛을 말할 때 맛 레몬 맛 탄산음료와 맥주를 일대 일로 섞어 마시는 클라라를 빼놓을 수 없다.

평범한 맥주가 싫다면 스페인식 레몬 맥주 끌라라도 좋다. 달콤한 레몬 탄산음료에 맥주를 섞었는데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취하는 줄 모르고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른다. 스페인에서 마실 수 있는 특별한 여름 음료를 맛보고 싶다면 와인과 콜라를 절반씩 섞어 마시는 ‘틴도 데 베라노’를 주문해도 좋다. 이름부터 ‘여름 와인’이란 뜻으로 이베리아의 태양에 지친 몸을 녹여준다. 긴 비가 내린 올여름, 나는 틴토 데 베라노를 한 잔 따라 놓고 뜨거웠던 바르셀로나의 여름을 추억한다.
백종민 alejandrobaek@gmail.com

■ 스페인바르셀로나 한 달 살기 정보

2017년 김은덕ㆍ백종민씨 부부가 바르셀로나에서 한 달 살기 여행을 할 때 매일 들렀던 가게. 한 달 살기의 매력은 현지에서 단골 상점이 생기는 데 있다고 한다.

비행시간 : 12시간 가량(국적기는 비싼 편. 시간이 걸리더라도 경유편 추천)
날씨 : 6∼9월 여름 바르셀로나를 즐길 수 있음(다만 7, 8월은 여름 성수기라 모든 비용이 높아짐)
언어 : 스페인어(관광지를 벗어난 동네에서 간혹 까딸루냐어 메뉴판을 볼 수도 있음)
물가 : 스페인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조금 더 비싼 편
숙소 : 600유로(중심부에서 30분 내외 거리, 방 한 칸을 빌려 쓸 때 기준). 집 전체는 800유로 이상

■ 여행작가 부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작가 부부이자 유튜버 부부.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고, 그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지은 책으로 『사랑한다면 왜』 『없어도 괜찮아』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 등이 있다. 현재 미니멀 라이프 유튜브 ‘띵끄띵스’를 운영하며 ‘사지 않고 비우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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