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피해 고발' 나흘간 1800건…교사들 "실태 전수조사하라"

최민지 2023. 7.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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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조원들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재발방지 대책 교사 의견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악성민원 근절과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교사들의 교권 침해 폭로가 온·오프라인에서 이어지고 있다. 교사들은 집중 신고나 전수 조사 등 교육부의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기교사노조 관계자는 25일 “21일부터 나흘간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무고 사례를 제보하는 패들릿(여러 사람들이 메시지를 공유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더니 1800건이 넘는 학부모 민원 피해 사례가 올라왔다”며 “내용별로 유형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혼 말려줘” “임신하지 마”…황당 민원


노조가 공개한 학부모들의 민원은 협박성 발언과 교사 업무를 벗어나는 요구 등 다양한 내용이었다. 한 학부모는 오후 10시에 교사에게 전화해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에 항의하며 “당신 똑바로 대답해! 이거 폭력 맞아, 아니야? 녹음할 거니깐 똑바로 대답해” 등의 폭언을 쏟아 부었다. 동급생의 목을 조른 학생 때문에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열리자 가해 학생 학부모가 조직폭력배를 대동해 학교에 나타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25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시민들이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 밤늦게 전화해 “내가 이혼했지만, 아직 아내를 사랑하니 선생님이 아이 엄마에게 잘 말해달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한 교사는 “산후우울증에 걸린 학부모가 매일 새벽 3시에 전화해 폭언을 일삼고 전화를 받지 않으니 학교에 찾아왔다”는 사례를 제보했다. 임신 중인 교사에게 “왜 우리 애는 맨날 이런 선생님만 담임 되는지 모르겠다”거나 결혼 여부를 물으며 “올해는 임신하지 말라”고 한 발언도 공개됐다.

포털사이트에는 교권 침해 피해를 주장하는 교사들을 위한 모임도 생겼다. 지난해 자신이 담임을 맡았던 학생의 부모로부터 아동학대죄로 신고 당한 경기도 함모 초등교사는 지난달 말 ‘아동학대 신고 피해 교사를 위한 모임’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카페를 개설했다. 카페에는 교사 인증을 한 30여명의 회원이 가입했다. 함 교사는 “부당한 아동학대 신고 피해를 받은 선생님들의 올바른 초기 대응을 돕기 위해 카페를 개설했다”며 “이전엔 교사들이 학교와 학생을 위한다며 교권침해 문제를 쉬쉬해왔지만, 이제는 공론의 장에 끌어내고 스스로를 지킬 방법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조희연 교육감의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시교육청에는 “내 아이도 서이초 교사처럼 교권 침해로 죽었다”고 주장하는 유족이 찾아왔다. 이 학부모는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한 학부모가 지속해서 ‘옷을 벗기겠다’ ‘다시는 교단에 못 서게 하겠다’ ‘콩밥을 먹이겠다’ 등의 폭언을 쏟아부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시교육청 관계자는 “유족이 교육청 감사실에 공익제보를 해주면 감사 여부를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실태 조사”, “교보위 소집 쉬워져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일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 부총리는 "최근 (교권침해) 사안들은 학생 인권, 학습권 보장에 비해 교사의 권리 보호와 학생 지도 권한을 균형 있게 확립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판단한다"며 "교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교육활동을 보호하는 것이 공교육을 확립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뉴스1
경기교사노조 관계자는 “노조나 교원단체 수준의 조사뿐 아니라 교육부 차원의 전수조사도 이뤄져서 제대로 된 교권침해 방지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고영종 교육부 책임교육지원관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 집중신고 기간 운영 및 실태 점검 계획을 묻는 말에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한꺼번에 쏟아지는 의혹 사항의 진위 파악을 교육 당국이 모두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부모의 갑질 등을 파악하게 되더라도 우리로선 수사 의뢰 정도의 조치가 최선”이라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피해 교원이 도움 받을 가장 빠른 방법은 교권보호위원회(이하 교보위)의 심의를 받거나 교육청의 교원지원센터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교사노조 관계자도 “정기적인 전수 조사는 과거 사건에 즉각적인 도움이 어려울 수 있다. 교보위 문턱이 낮아져서 피해 교원이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교보위는 학교장, 재적 위원 4분의 1 이상,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만 소집할 수 있게 돼 있다. 학교장 등이 학부모나 여론을 의식해 공론화를 꺼리면 피해 교사가 교권 침해를 신고해도 교보위 소집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교원지위법에는 피해 교원이 원하면 반드시 교보위를 열어야 한다는 조항이 없는데, 관련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교보위를 소극적으로 운영하는 학교장을 징계하거나 교권 침해를 저지른 학부모에 대한 처벌 조항을 신설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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