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학부모 탓" 17년 전 '서이초' 겪은 日, 교사가 사라졌다

이영희 2023. 7. 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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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6월, 일본 도쿄(東京) 신주쿠(新宿) 구립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당시 23세의 여성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부임한 학교에서 2학년 담임을 맡은 교사는 한 달 잔업 시간이 100시간이 넘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야 했다.

일본 도쿄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하교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이 교사를 한층 힘들게 한 것은 학부모들의 '갑질'이었다. 일부 학부모는 한밤중 전화를 걸어 교사의 태도에 불만을 토로했고, 담임과 보호자가 교환하는 연락장에 "결혼이나 육아 경험이 없어 아이들을 다루지 못하는 게 아니냐" 등의 글을 남겼다. 학교 측에 보고했지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교사는 "무책임한 저를 용서해 달라. 모든 것은 내 무능함 탓"이라고 유서에 적었다.

한국에서 발생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과 유사한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에서 '교권 붕괴'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말 도쿄에서 또 다른 여교사가 비슷한 이유로 목숨을 끊으면서 교사에게 비상식적인 요구와 행동을 하는 학부모들을 일컫는 '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괴물 학부모)'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일본에서 오랜 기간 선망 받는 직업이었던 교사가 '기피 직종'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선생님 없어 보충수업도 못하는 학교


요즘 일본 교육계의 가장 큰 고민은 '교사 부족'이다. 과도한 업무와 낮은 연봉, 학생과 학부모들로 인한 스트레스 등 교사가 직면한 현실이 알려지면서 교직을 희망하는 이들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일본의 공립 초등학교 교사 임용 경쟁률은 2000년 12.5대 1이었으나 지난해에는 2.5대 1까지 떨어져 1979년 조사 시작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일본 드라마 '몬스터 페어런츠'의 한 장면. 사진 일본 KTV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선 학교에선 출산이나 질병 등으로 자리를 비운 선생님을 대체할 인력을 충원하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새 학기에 담임을 맡을 이가 없어 한 학급의 정원을 늘리거나 교장·교감이 임시 담임을 맡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보충수업 담당 선생님이 부족해 자율 학습으로 대체하는가 하면 중학교 교사를 초등학교에 배치하는 사례도 있다.

교원 부족 사태가 심화하자 도쿄도와 사이타마(埼玉)현 등에서는 교원 면허가 없는 사회인들도 교원 채용 시험을 봐 교사가 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민간 기업 등에서 통산 5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 교직에 도전할 수 있다. 교원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나이 제한을 60대로 높이거나 대학 3학년 학생들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지자체도 나왔다.


교사, 노동 환경 최악의 직업


교사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도 시작됐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공립 초·중학교 교원의 평균 급여는 월 약 41만엔(약 371만원)이며 시간 외 근무를 해도 추가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한 달 8시간 잔업'을 기준으로 기본급의 4%를 일괄적으로 지급하고 추가 수당은 주지 않기로 규정한 현행 '교원급여 특별조치법' 때문이다.

2016년 문부과학성의 조사 결과 교사들의 시간 외 근무는 초등학교가 한 달 평균 59시간, 중학교는 81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지난 6월 발표한 국정 기본 방침에 교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실태 조사를 거쳐 교원 급여와 관련한 법안 개정 등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무엇보다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교권 추락이다. 지난해 10월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일본 초·중·고교에서 발생한 학생 폭력 행위 중 약 12%인 9426건이 '학생의 교사 폭행'이었다. 2021년 일본 효고(兵庫)현 중학교에서 60대 남성 교사를 폭행한 학생을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등 교사 폭행에 엄벌주의를 도입하고 있지만 비슷한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현장 교사들은 학생보다 학부모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호소했다. 일본 언론에 소개된 사례에 따르면 일부 학부모는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급식으로 내 달라' '학교 건물 색깔을 아이가 좋아하는 색으로 바꿔 달라' '운동회 단체 무용에서 우리 아이를 가운데 세워달라' 등 무리한 요구를 하며 지속적으로 교사들을 괴롭힌다.

2021년 일본에서 정신 질환으로 휴직한 교사는 5897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학부모 대응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정신 질환으로 한 달 이상 병가를 낸 교사는 1만994명으로 처음 1만명을 넘어섰다.


고압적인 학부모에겐 "녹음하겠다" 통보


일부 지자체에선 '몬스터 페어런츠 대응 매뉴얼' 등을 만들어 발표했다. 기후(岐阜)현 매뉴얼에 따르면 교사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화를 내는 학부모에게는 "녹음을 하겠다"고 통보할 수 있다. 여러 차례 주의를 줬음에도 학부모가 같은 행동을 반복하거나 구체적인 협박 표현을 할 경우 위력업무방해죄를 적용해 경찰에 신고하도록 했다.

오가와 마사히토(小川正人) 도쿄대 명예교수(교육행정학)는 아사히신문에 "지금 일본 교사들은 각종 회의나 보호자에 대응 등에 시간을 과도하게 빼앗기고 있으며 이는 결국 수업 질의 저하로 이어진다"면서 "인재 확보 차원에서 교원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 개혁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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