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사령탑 없이 보낸 167일...'거야 정치탄핵' 헌재가 기각했다 [VIEW]

권호, 황수빈 2023. 7. 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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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청구인이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국민을 보호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

헌법재판관 9인은 25일 오후 만장일치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이 장관의 업무 정지도 이날로 끝났다. 국회, 정확히는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2월 8일 재석 293명 중 179명의 찬성으로 이 장관을 탄핵 소추한 지 167일만이다.

이 장관은 집중 호우 피해 현장인 충남 청양군 지천 일대를 돌아보는 것으로 업무에 복귀했다. 대통령실은 “탄핵 소추 제도는 자유 민주주의 헌법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는 거야(巨野)의 탄핵소추권 남용이다. 이런 반헌법적 행태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는 입장을 내놨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167일간 많은 일이 있었다. 격화한 대치 국면에서 윤 대통령은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4월)과 간호법 제정안(5월)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무엇보다 이달 중순, 집중 호우로 46명이 사망하고 4명이 실종됐으며 1명이 순직하는 등의 피해가 속출했다. 특히 임시 제방이 무너지며 순식간에 지하차도에 갇혀 14명이 숨진 충북 청주 오송읍 궁평 제2 지하차도 사고의 경우 인재(人災) 성격이 짙어 ‘참사’라 할 만한 비극이었다.

이 장관의 탄핵소추 이유는 지난해 10월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의 총괄ㆍ조정’이라는 행안부 장관의 직무수행이 요청되는 위기 상황에서 그 의무를 방기했다”(국회 탄핵소추안)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민주당이 이 장관을 탄핵소추하면서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의 핵심 책임자가 부재했고, 그 와중에 또 다른 재난이 터지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이 장관이 현업에 있었더라도 재난 자체를 막지 못했겠지만, 재난에 대응하는 의사결정 속도가 더뎌진 것은 분명했다.

물론 국회 탄핵소추에는 이 장관 본인의 책임도 있었다. 이날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라고 지적했듯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에 대한 일체의 지휘 권한이 없다"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등 이 장관의 발언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다만 이같은 '정무적 책임론'을 빌미로 '법적 책임'을 묻고자 한 건 민주당의 오판이자 입법권력의 남용이었다. 결과적으로 5개월간 행정 공백의 피해는 예상보다 컸다.

정부 관계자는 “이 장관 부재 동안 장관 직무대행을 맡았던 한창섭 행안부 차관은 문자 그대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판이었다”고 전했다. 장관 대행으로 국무회의에 대참하고 난 뒤, 국무조정실장이 주관하는 차관(급) 회의에 참석해 실무 현안을 조율하는 식이었다. 대행이라고는 하나 행안부 장관 고유 업무를 대신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당장 부처 내 조직 개편과 관련 인사가 올스톱되다시피 한 점은 현실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행안부 장관은 각 광역단체의 행정부지사나 행정부시장, 기획조정실장 인사에 깊이 관여하는데, 관련 인사가 지연되면서 중앙부처와 지자체 간의 유기적 협업에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5일 오후 수해를 입은 충남 청양군 인양리를 찾아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장관의 업무 공백은 이날부터 채워졌지만, 앞으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즉, 윤 대통령 중심의 행정부와 거야 입법부 간의 극한 갈등이 되풀이되고, 경우에 따라 사법부가 개입해 미봉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다. 정치권에선 곧 임명될 것으로 관측되는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 야당이 탄핵을 추진할 것이란 얘기가 벌써 나온다.

그럼에도 해법이 난망하다는 게 문제다. 특히 내년 4월 총선까지 10개월도 안 남은 정치 환경이 양보 없는 제로섬 싸움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해법을 묻자 정치학회장을 지낸 한 정치학자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는 “거야가 할 수 있는 최강수를 던졌는데 실익은 없이 정치의 진공상태, 정치의 사법화 현상만 두드러졌다”며 “윤 대통령이 헌재의 이번 결정에 만족하기보다는 정치 복원, 긴 호흡에서 민주주의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호 기자 kw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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