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선생님, 우리는 당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한승주 2023. 7. 26.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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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2년차 초등교사 죽음에
참고 참았던 교사 분노 폭발

"모든 게 다 버겁고 놓고 싶다
숨 막혔다"라는 일기 공개돼

요즘 교사는 학생에게 맞고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려

교권 추락 넘어 교사 인권 유린
무너진 공교육 바로 세워야

지난 토요일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몸담았던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를 찾았습니다.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더군요. 하얀 국화꽃으로 장식된 근조 화환들이 정문부터 모퉁이를 돌고 돌아 후문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으니까요. 전국의 선배·동료 교사, 예비 교사까지 많은 이들이 선생님을 추모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보낸 거라고, 추모객 한 분이 울먹이며 얘기했습니다. “사랑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했어요. 작년 담임선생님이라 행복했어요. 지난해 1학년 8반 학생 일동”이라고 된 화환을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진심으로 슬퍼서 내 일처럼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저는 그날 많이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학교에서 돌아가신 것 자체가 유언으로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교문부터 담장·창문까지 빼곡하게 붙은 포스트잇의 글을 찬찬히 읽어봤어요. ‘빈 교실에서 눈물 안 흘려본 교사가 있을까요? 모두의 일입니다.’ ‘악성 민원으로 힘들었던 과거 경험과 정신적 피해로 동료들의 병가가 줄을 잇는 현 세태가 생각나 하염없이 눈물만 흐릅니다.’ ‘선생님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닙니다.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교권 추락의 민낯과 교사 개인의 사명감에 기대 운영돼 온 현 교육 시스템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입니다.’

학교가 슬픔과 추모의 공간이라면 그날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열린 집회는 분노의 장이었습니다. 검정 옷에 검정 마스크를 쓴 동료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길에 앉았습니다. 누군가 SNS에 올린 제안에 5000명 가까운 교사들이 폭염 속에 거리로 나온 겁니다. 단상에 올라온 교사들은 자신이 겪은 악성 민원과 교권 침해 사례를 쏟아냈습니다. 선생님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도 촉구했습니다. 참고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 느낌이었습니다.

임용고시, 특히 서울지역 시험에 합격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습니다. 교사를 꿈꾸다 임용고시에 합격했을 때 선생님은 물론 가족들도 무척 기뻐했겠죠? 지난해 3월 첫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사랑스러운 1학년 아이들을 만나 정성을 기울인 마음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손편지에서 묻어났습니다. “2022년은 선물 같은 해… 귀한 아이들을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하고 행복하다”라고 쓰셨죠. 하지만 올해는 달랐습니다. 이달 초 일기장에 “(업무 폭탄과 학생 문제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막혔다. 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고 적으셨죠. 마음이 아팠습니다.

악성 민원을 넣는 학부모들의 얘기는 이미 잘 알려진 일입니다. 특히 교육열이 높고 법조인이 많은 서울 서초·강남지역은 교사들 사이에 기피 지역으로 알려져 있죠. 아이들을 잘 가르칠 책임만 있고 권리는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게 지금의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의 마음이 상했다’는 학부모 항의가 너무 많아서 어느새 아이들과 학부모의 눈치를 보고, 무슨 말이나 행동을 했다가는 고발을 당할까 봐 지레 움츠러들고 맙니다. 당연히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 없겠죠. 실제로 교실에서 아이들의 싸움을 말리려고 팔을 잡았던 교사가 아동학대처벌법으로 기소된 일도 있었죠. 무죄로 결론 났지만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지난 5년간 고소를 당한 교사가 1252명이나 됩니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교사가 다른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6학년 학생에게 맞아 전치 3주 진단을 받는 일이 있었어요. 교사는 무차별 폭행을 당하면서도 ‘소리 지르면 정서적 학대’라는 부담감에 소리도 못 내고 머리만 감싼 채 참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학생에게 맞은 교사가 지난 5년간 1100명이 넘습니다. 지금도 학교 현장에는 학부모에게 쌍소리를 듣고, 말도 안 되는 민원에 시달리고, 학생에게 맞고, 성희롱에 노출된 교사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학교·교육청·교육부 어디에도 호소할 곳이 없습니다. 교권 추락을 넘어 교사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이 무너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선생님처럼 힘든 교사가 다시는 없도록 추락한 교권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학부모 갑질도 없어져야 되겠죠.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해질 테니까요. 교권 회복을 위한 제도 개선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 부디 편안히 쉬세요.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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