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공원의 추억

2023. 7. 2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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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출근하니 직원 하나가 밤사이 모 공원 시설물이 훼손됐다고 보고했다.

잘못과는 별개로 아버지와 아들이 한 동네 한 공원에서 추억을 공유했다는 점이 가슴에 남았다.

이리도 도시가 달라지면 무엇이 남아 추억을 지킬까? 그나마 도시에서 버티는 것이 공원과 산이다.

추억이라는 것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떠나왔는지 가늠하는 척도라면 공원의 추억은 신산한 회색 도시에 오롯이 도드라진 따스한 초록색 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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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어느 날 출근하니 직원 하나가 밤사이 모 공원 시설물이 훼손됐다고 보고했다. 불을 피운 흔적이 있고 그로 인해 바닥이 일부 불탄 것. 새벽에 공원 화장실에 잠입해 변기나 세면대를 파손하는 등 공원 시설을 고의로 훼손하는 경우는 왕왕 있지만 정작 범인 색출은 쉽지 않기에 큰 기대 없이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CCTV를 통해 몇 달 뒤 찾아낸 범인은 동네 고등학생들. 경찰에선 학생들이 반성하고 있고 복구비를 부담한다고 해 우리는 소정의 과태료를 부과하며 마무리했다. 후일 한 학생의 아버지와 통화하게 됐는데 긴 이야기 끝에 아버지도 아들처럼 서울 목동에서 자란 목동 키즈로 같은 공원에서 많이 놀며 사고를 치기도 했단다. 잘못과는 별개로 아버지와 아들이 한 동네 한 공원에서 추억을 공유했다는 점이 가슴에 남았다.

아이들은 대개 도시에서 태어나고 아파트에서 자란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파트는 재건축되고 시장은 사라지고 거리는 바뀌고 길은 변한다. 이리도 도시가 달라지면 무엇이 남아 추억을 지킬까? 그나마 도시에서 버티는 것이 공원과 산이다. 목동에서 자란 이들을 만날 때마다 양천공원 농구대나 파리공원 분수대 또는 용왕산이나 신정산 자락을 누빈 무용담을 반복해 듣는 건 우연이 아니다. 도시는 변하고 거주지도 옮기지만 공원과 산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물며 사람과 자연을 보듬기 때문. 서울 관악산 자락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10여년 전 관악산팀장을 맡아 구석구석을 누빈 3년간도 추억을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글로벌하게 노마드한 삶을 부러워했던 적도 있지만 이젠 잘 직조된 지역과 동네의 가치도 빛난다는 걸 알게 됐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처럼 경제성 없어 보이는 공원과 산이 도시를 지키고 동네를 보듬는다. 추억이라는 것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떠나왔는지 가늠하는 척도라면 공원의 추억은 신산한 회색 도시에 오롯이 도드라진 따스한 초록색 불빛이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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