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소아과 회생 위한 골든타임

2023. 7. 26. 04:0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학교 숙제로 '30년 뒤의 내가 쓴 일기'란 글을 썼다.

"후, 오늘도 병원에서 새벽까지 일하다 왔다. 이게 바로 소아과 의사의 힘든 인생이구나. 이 일은 내가 좋아하기는 하지만, 힘들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보람이 있으니 만족한다." 아빠 직업을 잇겠다는 아들을 보니 대견하긴 한데, 요즘 소아청소년과 사정을 생각하면 흐뭇하지만은 않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경남(서울아산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학교 숙제로 ‘30년 뒤의 내가 쓴 일기’란 글을 썼다. “후, 오늘도 병원에서 새벽까지 일하다 왔다. 이게 바로 소아과 의사의 힘든 인생이구나. 이 일은 내가 좋아하기는 하지만, 힘들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보람이 있으니 만족한다.” 아빠 직업을 잇겠다는 아들을 보니 대견하긴 한데, 요즘 소아청소년과 사정을 생각하면 흐뭇하지만은 않다.

소아청소년과 대란이다. 1차 병원은 새벽부터 오픈런이다. 오픈런으로 줄을 서는 맛집이 있으면 비슷한 식당들이 많이 생기는 게 보통인데 어찌 된 일인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에도 못 미친다. 전공의와 전문의가 부족한 3차 병원들은 응급실과 입원 병동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전공의 지원자가 없는 근본 원인은 현재 건강보험의 보상 시스템 내에서는 소아청소년과의 미래가 암울하기 때문이다.

여기 21세기 대한민국 소아청소년과의 몇 가지 풍경이 있다. 제자 한 명에게 병원이 잘되느냐고 물으니,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힘들지 않게 지낸다고 한다. “그런데 소아는 안 보고, 성인 진료만 하고 있어요. 그냥 그게 속 편해요” 하며 멋쩍게 웃는다. 병원 상황이 좋다는 또 다른 제자에게 물어보니, 엄마들을 대상으로 피부 미용을 겸하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잘돼서 밑에 의사를 몇 명이나 두고 있다고 한다.

폐업한 어느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인터뷰다.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돈 벌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도 그런 경제적인 보상을 바라지는 않았어요. 그런데도 이제는 버티기가 힘드네요.”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개원의 교육에서 고지혈증 관리 강의를 듣던 어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말한다. “이거라도 배워서 병원 운영을 해야 소아 환자를 계속 진료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다른 과 전문 진료를 배워야 병원이 운영된다면 소아과 전문의 수련을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정부에서는 공공 어린이병원 적자 보전 시범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적자에 대한 사후 보전이 아니라 애당초 적자가 안 나게 해주는 것이다. 또한 소아 중환자와 응급진료 기능을 강화하고, 경증 환자가 공휴일이나 야간에 진료받을 수 있는 달빛어린이병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대책이 아니라 희망 사항에 가까워 보인다. 구체적 실행 방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전국에 달빛어린이병원은 겨우 45개이고, 서울에도 겨우 4개밖에 없다. 야간에 진료하는 의사의 노력은 차치하고라도 야간에 근무할 직원 인건비를 충당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연령별, 시간대별로 적절한 가산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의사들이 전공과목을 정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하는 의사들이 바라는 것은 대단한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소아 진료의 전문성을 합당하게 인정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소아 진료에 대한 가산이 연령이나 응급도에 따라 최대 500%까지 이뤄진다. 소아청소년과 개원을 하면 피부 미용과 성인병 관리를 같이해야 하고, 상급 병원에선 계속 적자가 나서 정부의 적자 보전 사업에 매달려야 한다면 누가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하겠는가.

이제 가을이 되면 내년 전공의 모집이 시작된다. 가시적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내년 전망 역시 어둡다. 수십년간 쌓아온 전문의 양성 시스템이 뿌리째 시들어가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선의와 헌신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소아청소년 진료시스템을 회생시키기 위한 합리적 보상과 지원이 절실하다.

고경남(서울아산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