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 더뎌 지진 상흔 그대로… 절망의 땅에 희망 씨앗 심었다

장창일 2023. 7. 2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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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를 가다] 월드휴먼브리지 동행기
튀르키예 안타키아 라이트하우스 이재민 구호 캠프를 찾은 어린이들이 지난 17일 교사를 따라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다.


대지진 후 5개월. 상흔이 여전히 남아있는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지난 16일 밤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해 국내선으로 환승한 뒤 시리아 접경 아다나 공항까지 가는 데만 꼬박 16시간이 걸렸다. 여기서 다시 승합차를 타고 2시간 반쯤 달려서야 안타키아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식혀주는 건 지중해에서 간간이 불어오는 소금기 섞인 바람뿐이었다.

무너진 건물에서 쓸만한 자재를 골라 싣고 가는 트럭들과 시리아 국경으로 향하는 대형 트레일러가 뒤섞인 도로는 뿌연 먼지로 가득했다. 적신월사(이슬람 국가 적십자사) 마크를 단 차량들도 비상등을 켜고 어딘가로 바삐 움직였다.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휴먼브리지(대표 김병삼 목사) 모니터링팀과 함께 17일(현지시간)부터 나흘 간 지진피해 현장인 안타키아와 압신 일대를 돌아봤다. 월드휴먼브리지는 실크웨이브미션(SWM)선교회를 통해 선교사들에게 구호금을 전달했다. 월드휴먼브리지가 전달한 기금은 교파를 초월한 15개 교회가 모인 사귐과섬김(공동대표 이규현 주승중 유관재 목사)이 마련했다. 이번 모니터링은 월드휴먼브리지의 지원이 닿은 현장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구호금은 이재민 임시거처인 텐트촌과 컨테이너촌 건설, 긴급 의약품과 식량 지원 등에 사용됐다. 여기에다 이재민 어린이 교육을 위한 컴퓨터·교육 기자재 지원에도 쓰일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무색하게도 복구는 더뎌 보였다.

적지 않은 건물이 지진 직후 무너진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거나 지붕이 내려 앉은 건물들, 실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건물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멀쩡해 보이는 건물에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진 트라우마’로 건물에 들어가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남부 하타이주 안타키아 쿠츠크달리안 마을의 구호 캠프 ‘안타키아 라이트하우스’에 도착한 건 첫날 오후였다.

“호쉬 겔드니스(어서 오세요).”

라이트하우스를 이끄는 폴 신쿠츠(38)씨가 모니터링팀에 튀르키예어로 인사를 건넸다. 지진 직후 이곳에 캠프를 차린 신쿠츠씨는 30개국에서 온 40여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매일 1000여 명의 이재민에게 오전 8시와 오후 4시 음식을 제공한다. 국제 구호팀은 이재민을 위해 식수도 공급하고 샤워실도 제공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신쿠츠씨는 “지진 트라우마는 사람들을 평범한 삶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어서 신앙적 상담이 필요하다”면서 “전문 훈련을 받은 한국의 상담가들이 이곳으로 와 이들의 상처를 보듬어 달라”고 요청했다.

안타키아의 유일한 개신교회인 안디옥개신교회(장성호 선교사)가 캠프 가까이에 있었다. 현장은 처참했다. 교회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쑥대밭으로 변한 상태였다. 이 교회는 서울 광림교회(김정석 목사)가 2000년 튀르키예 정부의 허가를 받아 설립한 뒤 튀르키예 개신교인과 난민까지 복음으로 품었다. 1923년 세워진 문화재 건물에 교회가 들어오면서 해마다 1만명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아 왔다.

장성호 선교사는 “교회 재건을 위한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면서 “문화재여서 잔해 제거도 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로 까다로운데 곧 허락이 날 것 같다. 잔해 제거부터 시작하려 한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카흐라만마라슈 압신군의 '압신 피단릭 지진 피해자 임시 거주 센터'에 사는 아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이튿날 카흐라만마라슈 압신군을 찾았다. 진앙지인 튀르키예 남부 가지안테프와 200㎞ 이상 떨어져 있지만 지진을 피하지 못했다.

모니터링팀은 이날 압신군청에서 아흐메드 장 피나르 행정군수를 만나 컴퓨터와 교육 기자재를 지원했다. 이 기자재는 ‘압신 피단릭 지진 피해자 임시 거주 센터’에 건립하고 있는 사회복지관에 비치된다.

임시 거주 센터 안에는 2~12세까지 학생들을 위한 학교가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교사 라 비아(28·여)씨는 “비록 천막 학교지만 어엿한 교육기관으로 캠프촌 아이들이 모두 다닌다”면서 “주말엔 중·고등학생을 위한 특별 교육과정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라티아는 튀르키예산 살구의 80%가 재배되는 지역이다. 지난 19일 말라티아의 한 마을인 도힌쉐히르에 조성된 컨테이너촌에는 월드휴먼브리지 후원으로 세워진 컨테이너가 띄엄띄엄 있었다. 무너진 자신의 집 옆에 있는 컨테이너에 거주하는 세제르 외세안(34)씨는 “2개 컨테이너에서 11명의 식구가 사는데 몹시 덥고 새벽엔 너무 추워서 힘들다”면서 “빨래하기도 어렵고 깨끗한 물과 음식을 마련하는 것도 쉽질 않다. 하루하루가 힘든데 그나마 컨테이너라도 있어 다행으로 여긴다”고 했다.

김진섭 월드휴먼브리지 사무총장은 “교인들이 정성껏 마련한 구호금이 사용되는 현장을 돌아봤다”면서 “모든 구호금이 집행될 때까지 튀르키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후원하려 한다”고 밝혔다.

안타키아·압신·도힌쉐히르(튀르키예)=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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