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호연지기 교육으로 기본을 다지자
반복되는 폭염과 ‘극한호우’로 온 국민이 어려움을 겪는데도 정치권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거짓말과 상대 비방의 구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모와 학생, 교사 간 신뢰와 존중이 앞서야 할 교육 현장은 학교 폭력과 교권 침해로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큰 나라 그리고 더 공정하고 살기 좋은 일류국가를 향하여 뛰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기본’이 중요하고, 교육의 첫 번째 목적 또한 기본을 다지는 데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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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류국가 위해서는 기본이 중요
교육의 제일 목표는 기본 다지기
당당함과 겸손 강조했던 은사님
‘지덕체’아닌‘체덕지’교육 돼야
」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김원규(金元圭) 교장 선생은 입학식에서 “영국이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물리친 힘의 원천은 이튼(Eton College·영국의 명문 중등학교)의 교정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튼 출신인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을 염두에 두신 말씀이었다. 우리들에게 이튼 학생들같이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여 넬슨처럼 훌륭하게 되라고 격려하신 것이다. 런던의 국립미술관 앞 트라팔가 광장에는 오늘도 넬슨의 커다란 동상이 당당하게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튼에서는 전통적으로 추운 날씨 속에서도 학생들이 반바지, 반소매 차림으로 흙투성이가 되어 레슬링 등 게임을 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학부형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튼에서 나폴레옹을 물리칠 넬슨이 나온 것은 바로 이러한 스파르타식 교육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튼 전통의 원천은 어디일까? 그 답은 17세기 영국의 계몽주의 사상가 존 로크(John Locke)가 1693년에 발간한 『교육론』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교육은 우선 책으로 배우고, 다음으로 행동을 가르치고, 마지막으로 신체의 건강을 강조해 왔다. 지덕체(智德體)의 순서다. 존 로크가 강조한 것은 이와 정반대이다. 체덕지(體德智)다.
이 책의 제1장 ‘신체의 건강에 대하여’는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란 말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상태를 짧지만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다”라고 시작한다. 제2장부터 제19장에 이르기까지 18개 장은 예절, 상벌, 용기, 덕성, 지혜 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제20장에 가서야 비로소 ‘학습에 대하여’가 나온다. 특히 로크는 읽기, 쓰기 등 언어 학습과 수학을 중요시했다. 수학은 일상생활에서 매일 필요한 것이고 언어는 목수가 마음먹은 것을 무엇이든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연장통과도 같다. 깊고 넓은 언어에 대한 지식은 명료한 사고→설득력 있는 추론→사상체계→문화형성으로 연결된다. 활력이 넘치는 문화 없이는 어느 사회도 좋은 제도를 갖추고 또 번창할 수 없다.
이튼 학생들은 신체를 열심히 단련하면서 선현들이 쌓아온 지식의 세계를 섭렵한다. 그들은 일찍부터 물리(학), 생물(학), 경제(학), 역사(학) 등을 공부한다. 학생들이 일찍이 체력을 증진하고 건강하게 자라서 창의적 인재와 사회 공동체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김원규 선생은 10대 초중반의 우리들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 즉 세상에 꺼릴 것이 없는 크고 넓은 도덕적 용기를 심어줌으로써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신감과 융통성을 겸비한 시민이자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본을 다져주려고 노력하셨다. 김 선생은 학생들이 항상 당당하면서도 겸손한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교복 바지의 호주머니를 모두 없애 겨울에도 손을 호주머니에 못 넣게 하셨다.
현실 세계에서 기본이란 무엇인가? 다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것이며 동시에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이다. 기본의 특징은 대충해선 안 되는 것이며 또한 시작하긴 쉬울지 몰라도 항상 잘하기는 어렵다. 강건한 체력과 올곧은 마음을 유지하는 생활 습관이 필수이다. 예를 들어보자. 언뜻 보기에 피카소의 그림은 낙서 같기도 하다. 그러나 피카소는 이미 10대 때 그림의 모든 기법을 완벽하게 익혀 위대한 고전파 화가들에 빠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었다. 미국 프로야구 MLB에서는 공을 가까스로 받는 묘기가 잘 안 나온다. 그러나 플레이는 아름답다. 수비수들이 기본기에 뛰어나 언제나 볼이 어디로 올지 알고 미리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양궁 선수들은 바람이나 관객의 야유 같은 것에 흔들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화살을 올바르게 쏜다. 손흥민 선수는 골대의 가장 구석진 곳으로 공을 차 넣는다. 그곳으로 슛을 하면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경기 중 긴박한 상황에서 아무나 그런 슛을 날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다 지독히 철저한 기본기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가 일류사회가 되는 데 필요한 마지막 몇 걸음을 언제 완성할지 궁금하다. 그렇게 되자면 기본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 첫 번째가 “건전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호연지기(浩然之氣) 교육이 되어야 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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