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도덕 쟁탈전에 갇힌 문제들
지하차도 침수 참사로 주목을 받은 충북의 미호강. 환경단체 반대 때문에 정비가 안 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지역의 대표적 환경단체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지난해까지 12년간 이 지역 행정 최고책임자였던 정치인에게 무엇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예민한 시기에 논란에 끼이고 싶지 않다”며 이름을 쓰지는 말아 달라고 부탁한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하천 정비사업이 진행될 때 준설을 포함한 미호강 정비도 추진됐는데, 지역 시민단체와 환경단체의 반대가 심했다”고 말했다. “나는 야당 소속이었지만 정부 계획에 찬성했고, 당 내부를 설득하느라 애먹었다”고 덧붙였다.
미호강 준설이 전적으로 지역 단체의 반발 때문에 불발이 됐다고 볼 수는 없다. 정부가 밀어붙이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센 저항과 반대 여론에 동력이 약화한 이명박 정권의 하천 정비사업은 4대강에서 멈춰섰다. 미호강 퇴적물 줄이기는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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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수·영아보호·교권존중 절박한데
실질 해법은 뒷전, 관념적 입씨름만
편 먹고 싸우다 날 새는 현실 답답
」
환경론자들은 미호강 바닥을 헤집으면 미호종개(미꾸릿과의 일종) 등의 희귀 생물이 멸종 위기를 맞고 강 모래톱으로 찾아오는 철새가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강을 그대로 두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집중호우 양상이 예전 같지 않다. 이번 참사는 교량공사 과정에서 허문 제방을 제대로 복구하지 않아 생긴 것이지만, 강물이 그 옆 정상적 제방의 턱밑까지 차오르는 것을 온 국민이 봤다. 수리·수문 전문가들은 가장 효과적인 홍수 대비책은 준설이라고 말한다. ‘준설=생태계 파괴’라는 도식적 믿음도 옳지 않다고 한다.
병원에서의 출산 기록은 있는데 출생신고는 돼 있지 않은 아이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수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그중 일부가 살해·유기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병원에서의 출산이 바로 행정적 출생신고로 이어지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자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것 같다는 걱정이 생겼다. 이 문제를 완화할 방법이 있다. 지금 국회에 임산부가 원할 경우 ‘신원을 감춘 채 의료기관에서의 출산’이 가능하게 하는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이 제출돼 있다. 여당 의원 22명이 발의했다.
야당은 반대한다. 이유가 크게 두 가지다. 양육 포기 결심을 부추기는 효과를 내고, 아이가 훗날 친생부모와 출생 과정을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의사 도움 없이 아이를 낳는,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위험한 일을 줄이자면 달리 방법이 없다. 서울 난곡동의 ‘베이비 박스’에 놓인 아이 중 상당수는 병원 밖 출산 흔적이 역력한 상태로 온다. 익명 출산이 양육 포기를 부추긴다는 것은 실업급여가 놀고먹기를 유발한다는, 야당이 한심하다고 비판한 주장과 유사한 논리의 발상이다. 알 권리 문제는? 법안에 친생부모(친생부 미확인 시 친생모만) 인적사항을 출생증서에 작성하게 하고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친생부모가 동의하면 이를 알려준다는 내용이 있다.
한편에선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여권에서 교사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교권 침해가 인권조례 탓인 것처럼 말한다. 학생인권조례가 17개 광역 자치단체 중 일곱 곳에 있는데 그곳의 교권 침해가 더 심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말도 소용없다. 성 소수자 차별 금지 문구 때문에 일부 종교계에서 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해 왔는데, 존치 여부가 한순간에 중앙정치의 이슈가 됐다. 조례가 없어진다고 해서 학부모 ‘갑질’이 사라지거나 크게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홍수 대비, 영아 유기 방지, 교사 보호. 최근 나라를 달군 문제들이다. 현실은 절박한데 사회적 논의는 자꾸 옆길로 샌다. 한쪽에선 환경·인권 수호자처럼 말하고, 다른 쪽에선 그런 행태를 비난한다. 결국 본안은 잊히고 거친 싸움만 남는다. 우리 역사를 연구한 일본 교수 오구라 기조가 한국의 갈등은 도덕 쟁탈전으로 수렴됐다고 책에 썼던 것이 기억난다. 아직도 편 먹고 치고받다가 날이 샌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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