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수신료 분리징수, KBS엔 기회다

2023. 7. 26.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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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TV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KBS에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그동안 국가 기간 공영방송이라는 이유로 안락하게 ‘맏형’ 대접을 받아왔는데 이젠 엄중한 현실의 파도 속에 내몰리고 있다.

지금 KBS 구성원들은 암담하고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번 수신료 분리 징수를 계기로 KBS는 과감한 창조적 파괴를 시도해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의 행적에 대한 엄정하고도 처절한 반성과 함께 국민과 시청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지금의 KBS는 사실상 실패한 조직이다. 한때 반짝했으나 시장에서 퇴출당한 블록버스터와 코닥·블랙베리 같은 기업들의 전형적 실패 사례를 KBS가 그대로 답습해왔기 때문이다.

「 경영 실패 겹치며 총체적 위기
공적 목표 분명한 BBC가 모델
조직 혁신하며 신뢰 되찾아야

시론

첫째, 과거 성공의 향수에 매몰돼 있다. MZ세대 중 KBS 애청자가 얼마나 될까. 과거부터 확보한 중장년 고정 시청자층에 안주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절박함이 전혀 없었다. 기존의 콘텐트 제작 라인을 약간만 조정하거나 일부만 손질하자는 안이한 인식 속에 선점해온 위치를 유지하려다 보니 콘텐트 혁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니 젊은 세대는 KBS 콘텐트에서 기대를 버렸다.

둘째, 완고하고 완강한 조직 문화다. 미국의 방송학자 리처드 거손은 공영방송의 병폐 중 하나로 정치 지향적 조직 성향을 꼽았다. 보수와 진보로 내 편 네 편으로 사분오열된 조직에서 어떻게 국민 통합적 기능 수행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KBS 전체 구성원이 공유하는 신념이나 가치가 있기는 한가. 공공성이라는 고집스러운 경영 통념에 빠져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조직 문화의 병폐도 크다.

셋째, 경영진의 리더십 실패도 책임이 크다. 사장은 조직이 달성해야 하는 결과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KBS 수장은 조직의 미래보다 본인의 평판에만 더 신경을 쓰고 자신을 임명한 정치권의 의중을 살피는 데만 급급해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놓치고 조직의 위기는 커져만 갔다. 넷째, 위험회피 문화가 만연하다. 고정 시청자층에 안정적인 수신료 수입이 보장되는 비즈니스 모델에서는 혁신을 이루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KBS는 인터넷과 모바일로 대변되는 미디어 시장의 변화와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온라인과 모바일 등 디지털 영역으로 공적 서비스를 확장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혁신적 미디어 기업은 기술이 발전하고 시청자의 취향도 바뀜에 따라 관련 변화를 예측하고 전략을 수정하며 새로운 콘텐트를 만들어낸다. 영국 BBC는 디지털의 초국경성을 살려 ‘월드 서비스’를 론칭해 글로벌 뉴스 경쟁에서 앞서갔다. BBC는 또한 ‘아이 플레이어’라는 독자적인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개시해 미국의 OTT 사업자들과의 경쟁에서 영국 미디어 시장을 지키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여러 위험 요인이 존재하지만, 과감히 도전해 새로운 미디어 시장을 창출한 것이다.

이번에 개정된 방송법 시행령은 국민의 입장에서 수신료 징수 방법을 개선하는 것이지 수신료 납부 의무를 면제하는 것이 아니다. 수신료 폐지가 아님에도 절차상 문제를 부풀리면서 각종 성명서와 소송전으로 분리 징수를 무력화하려고 하면 KBS 스스로 국민 신뢰를 잃었음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KBS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우선 본연의 공적 목표를 새롭게 세우고 실천하며 뼈를 깎는 경영 혁신도 추진해야 한다.

BBC의 5대 공적 목표를 다시 한번 살펴보길 바란다. 공정한 뉴스의 제공, 모든 연령대를 위한 학습 지원, 가장 창의적이고 고품질의 독창적 콘텐트 제공, 다양한 공동체의 의사 반영, 고유문화 가치의 세계적 확산이 5대 공적 목표다. BBC의 공적 목표가 시사하는 바를 곰곰이 되새기며 KBS가 지금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을 내부 공론의 과정을 거쳐 제대로 설정하길 바란다. KBS가 수신료 분리 징수를 일대 혁신의 계기로 삼아 거듭남으로써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길 간절히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천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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