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의 시선] 죽은 교사의 사회
“방학이 없다면, 교사는 하면 안 되는 직업이래요.”
여름 방학을 맞아 서울에 온 처조카가 직장인 개그를 했다. 조카딸은 지방 중학교의 2년 차 교사다. 서울 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후, 일선 학교에선 ‘방학이 유일한 낙’이라는 자조(自嘲)가 늘었다고 했다. 후배 교사에 대한 걱정도 많아졌단다. “○○ 선생님, 살 빠진 것 같은데 무슨 걱정 있어? 고민 있으면 꼭 얘기해”라는 관심을 평소보다 더 받는다고 했다. 학교생활이 힘드냐고 물으니 “서울보다 심하진 않겠죠. 하지만, 말 안 듣는 학생의 부모와 통화하면서 ‘빡친’ 적이 있긴 해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내 눈엔 아이인데 학부모들과 자녀 교육에 대해 논쟁까지 한다니 왠지 짠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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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교사 죽음은 ‘교권 추락’ 경고
교사·학생 한 쪽만의 책임 아냐
사회 구조에 대한 통찰 필요해
」
서울 서이초 교사는 조카딸보다 두 살 어린(2000년생) 2년 차 교사였다. 그 자리에 도달하려면 어린 나이에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기에, 꿈꾸던 초등학교 교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을 마감한 그녀의 선택이 더 안타깝고 허망했다. 지난 24일 교사노조가 공개한 일기엔 “업무 폭탄+(학생 이름)○○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숨이 막혔다. 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고 적혀 있었다.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이 학부모 갑질 때문이었는지에 대한 의혹은 아직 사실로 단정하긴 어렵다. 교육 당국과 수사기관이 명백하게 밝혀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스물셋 여교사의 죽음은 이미 사회적 의미가 됐다. 우리 사회의 거대한 ‘싱크홀’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비상벨이 된 것이다.
비보가 전해진 뒤 교사 수천 명이 거리에서 동병상련을 호소했고 교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분노의 경험담이 쇄도하고 있다. 수면 아래 있던 초등학생의 교사 폭행도 속속 드러났다.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 교권은 가공할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2년 안 되는 교직 생활만으로도 공황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증거들이 동료들의 입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소녀 시절 꿈의 무대였던 교실이, 감옥처럼 숨 막히는 곳으로 느껴졌을 때의 상실감은 얼마나 컸을까.
교권 추락 현장을 취재한 후배 기자가 만난 사람 중엔 “내가 먼저 죽었을 수도 있었다”고 말하는 초등학교 교사(43)도 있었다. 그는 지난해 9월 담임으로 지도하던 학생의 부모로부터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를 당한 뒤 자살을 시도했다가 이틀 만에 깨어났다. 학교 폭력 가해 초등학생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려다 계속 장난만 치는 아이의 어깨를 잡은 행위가 “목을 졸랐다”는 학대행위로 의심을 받게 됐고 법원의 재판을 받았다. 두 아이의 아빠임에도 “결백을 증명하려면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하니, 그 억울함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교권 추락을 막을 대책 마련에 나서서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과연 우리가 이 총체적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착잡해진다. 악성 민원의 포괄적 근거가 되고 있다는 학생인권조례를 고치면, 교육활동 침해 사례를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하면, 교권 회복의 실마리가 풀릴까. ‘몬스터 페어런츠’들의 제 자식 우선주의는 어떻게 해소할 것이며, 사교육 업체와 카르텔을 이루고 있는 일부 교사의 공공연한 일탈은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입시 위주의 교육계는 이미 학생·학부모·교사 중 누구라도 괴물이 될 수 있는 아노미(anomie)에 빠져 있다.
어느 한쪽을 악마화해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그런 점에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90)를 떠올려 본다. 과거 교육 시스템의 오류에 대한 묵직한 철학적 질문을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음미하고 처음부터 짚어봤으면 해서다.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엄스)을 통해 시와 연극의 매력에 심취한 모범생 닐(로버트 숀 레어나드)은 아이비리그 의대 진학을 바라는 아버지와 갈등하다 결국 자살했다. 집안에 총성이 울리고 뒤늦게 아들에게 뛰어가는 아버지의 슬로모션은 아직도 가슴 아리는 장면이다. 지금의 우리는, 그 비극을 멈출 수 있는가.
질문은 이어진다. 교칙을 위반한 죽은 시인의 사회 멤버를 체벌한 교장 선생님은 꼰대였는가.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을 알려주며 학생들의 개성과 감수성을 극대화한 키팅 선생님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33년이 흐른 뒤 교사가 폭행당하는 ‘죽은 교사의 사회’에서, 다시 답을 찾아야 한다. 명작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보다 더 날카로운 통찰력이 아니고서는 추락하는 교권에 날개를 달아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승현 사회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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