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일본 원전 오염수 이중 잣대
바라지 않았다만, 오고야 말았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임박했다. 경제만 심리가 아니라 환경도, 먹거리도 심리다. 더구나 원전 사고 오염수의 해양 배출은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과학적으로 따져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마음 한구석은 찜찜할 수 있다.
국민 다수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이 처리한 오염수는 완전무결할 것이다’라고 철석같이 믿거나 ‘오염수가 안전하다면 마셔라’며 비꼬는 양극단의 중도에 선 경우가 많다. 내가 불안해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만큼, 남이 불안해할 자유가 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어떤 경우더라도 평가 잣대는 같아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은 원전 55기를 가동 중이다. 23기는 짓고 있다. 100기를 더 지을 계획이다. 가동 중인, 가동할 원전 대부분이 대한민국 서해 건너편 중국 동부 연안에 몰려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중국 원전에서 한 해 배출하는 삼중수소(방사성 물질) 총량은 1054테라베크렐(T㏃)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서 연간 배출할 예정인 삼중수소(22T㏃)의 48배 수준이다.
서해와 접한 중국 해류는 가까운 데다, 직접적이다. 일본 후쿠시마 해류는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서야 한국으로 흘러들어온다. 백원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삼중수소는 방사성 물질 중 가장 덜 위험하다”며 “한국 원전의 삼중수소 연간 배출량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배출량의 10배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물론 한국 원전이 배출하는 방사성 물질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으면서 일본 원전 오염수의 위험성만 우려하는 건 어색하다. 잣대가 이중적이면 본심을 의심받는다.
원전 사고 없는 중국·한국과, 원전 사고 오염수에서 삼중수소뿐 아니라 다른 방사성 물질이 나올지 모르는 일본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느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오염수가 꼭 한국으로 흘러들지 않더라도 후쿠시마 해류가 태평양을 돌며 해양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려하려면 과학으로도 검증할 수 없는 미래의 위험(일본)보다 이미 드러난 현실의 위험(중국·한국)부터 주목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일본이 미덥지 않을 수 있다. 원전 오염수를 꼼꼼하게 처리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오염수를 방류할 최소 30년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다그쳐야 한다. 다만 음모론보다 과학에 기대자. 이성에 호소한 결말이 “오염수는 당신이 마셔라”는 반응이라면 딱 그 수준에서 답할 수밖에. “당신은 안전하다는 것만 확인하면, 무엇이든 먹고 보는 사람입니까”.
김기환 경제부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형의 죽음에 짜증내던 동생, 통장 발견되자 “잔액은요?” | 중앙일보
- 일본 발칵 뒤집은 '머리 없는 시신'…범인 정체가 밝혀졌다 | 중앙일보
- "다리 만져달라" 60대 택시기사 성추행…女승객 신원 알아냈다 | 중앙일보
- 오은영 "최근 사건 가슴 아파…'금쪽이' 인간개조 프로그램 아냐" | 중앙일보
- 쓰러진 아내 두고 테니스 치러 간 남편…집에선 핏자국 나왔다 | 중앙일보
- 인생은 한 방?…월 300만원 버는 30대 직장인도 도전한 이것 | 중앙일보
- 37도 폭염 속, 차에 아기 갇히자…돌연 유리창 깬 아빠의 괴력 | 중앙일보
- 숨 쉴 공간 30㎝, 흙탕물 '첨벙'…오송 최후 생존자 탈출 순간 | 중앙일보
- 재난사령탑 없이 보낸 167일...'거야 정치탄핵' 헌재가 기각했다 [VIEW] | 중앙일보
- 지글지글 끓어도 좋다? 바르셀로나 해변서 브래지어 벗어보니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