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가 내돈내산 공돈이라는 착각[노정태가 소리내다]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다.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확고한 진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학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논리일 뿐,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잘못된 발언, 혹은 망언이 있다고 할 때, 그 망언에 반박하기 위한 망언이라 해서 옳은 말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실업급여를 둘러싼 두 발언이 그려내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살펴보자.
지난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국회에서 개최한 민·당·정 공청회에 참석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가 논란의 여지가 큰 발언을 했다. “남자분들은 실업급여 신청을 하러 어두운 표정으로 오는데, 계약 기간이 만료된 여자분들, 젊은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웃으면서 온다. 자기 돈으로 못 샀던 샤넬 선글라스, 옷을 사는 식으로 즐기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의 발언으로 인해 이는 한 공직자의 실언으로만 넘어갈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박 의장은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라는 뜻의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여 더 큰 논란을 불러왔다.
일단 분명한 사실부터 지적해야 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국회의 용역을 받아 제출한 ‘부정수급 사례・유형별 프로파일링 및 기획조사 활용방안 등 마련’(2015년 발간)에 따르면 2014년도 실업급여 신청자 중 부정수급 집단에서는 남성 비율이 66.3%, 여성 비율이 33.7%로 남성의 비율이 여성에 비해 2배 정도 더 높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이 실업 급여로 명품을 산다는 발언에는 여성 비하, 여성 혐오적 편견이 배어들어 있다. 성차별적이고 어설픈 문제 제기로 실업급여 개편 논의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 여당의 책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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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의 ‘시럽급여’ 발언은 헛발질
하지만 이번 실업급여 논란은 여기서 끝날 일이 아니다.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나온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되짚어보자. “노동자 스스로 내는 부담금으로 실업급여를 받는데 마치 적선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가 참으로 한심하다. 실업급여 하한선을 낮추겠다, 폐지하겠다는 등 실업급여 수령자를 모욕하는 한심한 발언을 보면서 과연 이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권인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이 대표는 노동자 스스로 내는 부담금으로 실업급여를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월급에서 공제되는 실업급여 부담금이 자신에게 혜택으로 돌아오는 것이므로 실업급여 수급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 돈 주고 내가 산 물건(내돈내산)’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실업급여는 내돈내산이 아니다. 비록 그 속에 내가 낸 부담금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해도 일단 정부의 손에 들어간 이상 그것은 ‘공금’이다. 일단 공금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어떠한 목적 하에 내 통장에 들어왔다면, 내게는 ‘거저 생긴 돈’이 생긴 게 아니다. 수급자는 그 돈을 최대한 해당 목적에 맞게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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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는 고용보험료 납부의 대가 아니다” 명시
고용보험 홈페이지에는 실업급여의 목적이 “실업으로 인한 생계불안을 극복하고 생활의 안정을 도와주며 재취업의 기회를 지원”하는 것으로 나와있다. 이런 부연 설명도 있다. “실업급여는 실업에 대한 위로금이나 고용보험료 납부의 대가로 지급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업급여는 공짜 용돈도 아니고 위로금도 아니며 내돈내산은 더더욱 아니니, 수급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구직 활동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물론 실업급여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정부가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며 국민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감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기존의 수입으로 저축했고 그것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항변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요컨대 합법이냐 불법이냐 여부만 보자면, 정상적으로 실업급여를 받았다고 전제할 때, 그것으로 무엇을 어찌할지는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법으로 막을 수 없는 모든 일을 윤리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앞서 말했지만 실업급여는 실업자의 생계 불안을 해소하고 재취업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사회보험이다. 공금은 해당 목적에 맞게 써야 한다. 실업급여 받기 위해 날짜만 채워서 그만두는 식의 행태는 실업급여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의 몫을 가로채는 짓이다. 그러한 행동 방식이 일상화되어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경우를 경제학에서는 ‘공유지의 비극’이라 부른다.
구직 지원 취지에 맞게 쓰고 사회 연대의 가치 지켜야
24일 고용노동부가 낸 자료를 보면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에 재취업한 비율은 2013년 33.9%에서 지난해 28%로 떨어졌다. 또 전체 실업급여 수급자의 27.9%가 실직 전 세후 근로소득보다 많은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하한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적극적으로 구직할 이유가 없다. 이런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맞는가.
실업급여를 받아서 개인적 여가 생활과 기분 전환을 위해 당당하게 쓸 자격 같은 것은 우리들 중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한 태도는 오늘도 열심히 출근하며 실업 상태에 놓여 있는 나를 대신해 고용보험료를 내는 동료 시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단순히 도덕적으로 비난만 하고 끝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실업급여 부정수급은 엄연한 불법이며, 범죄의 유형으로 보자면 보험사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공금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저개발국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시각이 ‘보수적’인 것일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시민들의 연대감을 중요시하는 진보 역시 실업급여를 내 호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여기는 태도 및 실업급여 부정수급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연대의 가치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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