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넘은 6·25 참전용사들 “한국서 싸운 것, 자랑스럽다”
“열두 살 소년이었던 장씨를 찾습니다. 이분도 나를 그리워할까요.”
오는 27일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부 초청으로 방한한 미국 아칸소 출신 참전용사 윌리엄 워드(91)씨는 25일 서울 송파구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옛 인연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 부대에서 옷을 빨아주고 신발도 닦아줬던 열두 살 소년 장씨를 만나고 싶다”며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가족들과 열심히, 또 성실하게 일하면서 용기를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쯤 80대인 이분 역시 나를 그리워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리를 함께한 캐나다 참전용사 에드워드 버커너(91)씨도 찾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앳된 소년의 사진을 꺼내더니 “전쟁 당시 19세였던 나보다 더 어렸던 한국 소년 ‘조정성’ 또는 ‘조적성’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부산에 막 도착했을 때 나를 굉장히 잘 돌봐줬고 북쪽으로 갔을 때도 많이 도와줬다”고 했다. 오랜 시간 소년의 사진을 소중히 간직했다는 버커너씨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며 울먹였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2019년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최고령 참가자이자 우승자이기도 한 참전용사 콜린 새커리(93)씨도 나왔다. 새커리씨는 26일 부산에서 열리는 정전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아리랑을 부를 계획이다. 그는 “처음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아리랑이 자장가나 국가인 줄 알았다”며 “같이 근무했던 한국인 병사가 계속 아리랑을 불러 금세 따라 부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6·25전쟁 후 처음 한국을 찾았다는 이들 모두 달라진 서울 풍경에 놀라워했고, 한국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새커리씨는 “황폐해졌던 땅에 고층 건물이 즐비한 것을 보고 그동안 한국이 이뤘던 성공과 발전이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북한군을 격퇴하는 임무를 우리가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기쁘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군에 입대할 때 유럽과 아시아의 두 전장 중 어디서 싸울지 선택할 수 있었다는 워드씨의 경우 “아시아를 선택한 건 지금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해 6·25전쟁에 참전하겠다는 그는 “한국인은 대단하고 한국에서 싸운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보훈부는 이번 정전 70주년을 기념해 22개 나라에서 64명의 유엔 참전용사를 초청했다. 이들은 이날 판문점을 견학한 후 26일 부산으로 이동하고, 27일 기념식 본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보훈부는 연대의 상징으로서 ‘아리랑 스카프’를 이들에게 선물한다. 전쟁 당시 고국의 어머니와 부인에게 인기 기념품이었던 이 스카프를 70년 만에 복원했다. 스카프에는 한반도 지도와 참전국들 부대 마크 사이에 아리랑 악보와 영어 가사가 새겨져 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아리랑 스카프는 동맹국의 위대한 연대를 알리는 상징물로 자유의 가치, 연대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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