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주친, 근대 서울 #두도시이야기

김초혜 2023. 7. 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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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와 예술적 영감, 역사적 교훈을 불러일으키는 서울의 모더니즘. 근대건축 연구자 박건이 포착한 근대 서울을 재구성했다.
1937년에 일본인 도요타가 지었다고 해서 일명 ‘도요타 아파트’로 불린다. 서대문구 충정로 3가에 있으며, 9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호텔과 아파트로 쓰였다.
〈경성의 아파트〉란 책에 따르면, 1940년 〈자유미술전〉에 출전한 화가 김환기가 자신의 주소를 ‘경성부 죽첨정 도요타 아파트’로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1939년에 지어진 조지야 백화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명동 롯데 영플라자관이 됐다.
1904년에 대한제국으로 넘어와 ‘정자옥 양복점’을 운영했던 일본인 고바야시 겐로쿠가 사업이 성공하면서 점점 자신의 양복점을 확장하다 백화점 규모로 키웠다.
발터 벤야민은 철학적 사유 방법을 ‘도시 산책’에서 찾았던 철학자 중 한 명이다. 19세기 자본주의가 낳은 화려한 도시문화,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축과 기술 매체, 아름다운 예술과 패션은 파리, 베를린 같은 대도시 사람들을 거리의 산책자로 만들었다. 샤를 보들레르가 유유자적 느리게 걸으며 급변하는 도시의 스펙터클을 경험하는 산책자로 ‘플라뇌르(Fla^neur)’를 정의한 이래, 산책은 도시의 현재를 관찰하는 것은 물론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벤야민이 산책을 통해 파리를 사회문화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관찰하고 그것을 글로 기록했듯이 오늘날의 도시 산책자들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도시 경험을 포착하고, 자신이 이해한 것을 SNS에 글로 남긴다. 그 기록의 정곡은 도시에 대한 깊은 애정과 닿아 있다.
건설업체 호리우치구미의 경성 부지점장이었던 야마자키 카츠사부로의 저택은 서양과 일본의 건축양식이 융합된 곳이다. 2018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Kitte’란 이름의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일명 ‘딜쿠샤’로 불리는 등록문화재 제687호 앨버트 W. 테일러 가옥은 벽돌의 앞면과 옆면을 번갈아 쌓은 ‘공동벽 쌓기’가 적용됐다. 1942년 일제에 추방되기 전까지 이곳에 거주했던 미국인 앨버트는 UPI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3.1운동을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한편, 덕수궁 고종의 길에 있는 근대 저택은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으나, 동양척식주식회사 총재 관사로 추정된다.
이들은 도시의 랜드마크를 관광하듯 조망하지 않는다. 세심한 관찰 끝에 발굴해 내듯 도심 한켠에 조그맣게 웅크린 존재들을 끄집어낸다. 잊히거나 사라질 것이 자명한 도시의 디테일을 이미지로 펼쳐 내며, 보편적 경험으로 확대시킨다. 그리고 사라지길 종용받는 ‘아스라한’ 것들의 남은 시간을 유예시키려 애쓴다. 건축물을 비롯해 도시의 오랜 구성 요소들을 통해 근대라는 시간을 탐구하고,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현대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고 싶어한다. 팔로워들로 하여금 작은 스마트폰 화면 대신 맨 눈으로 도시의 속살을 확인하고 싶게 만든다. 그 기록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친숙하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때론 낯설게 만들어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타인이 포착한 도시의 기록이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지금도 SNS를 열면 낭만적인 도시 산책자들이 포착한 서울의 디테일이 수천, 수만 개씩 쏟아진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그만큼 걷기 좋고 볼수록 매력적인 곳임을 방증(傍證)하는 한편, 기록으로만 남고 사라질 것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반증(反證)한다. 근대건축 연구자 박건의 ‘근대건축 아카이브 프로젝트(Architecture Archive Project, @aap_modern)’ 또한 마찬가지. 그의 기록에는 서울의 근대와 현대 사이, 어느 시점에서 유유히 걷고 있는 도시 산책자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1907년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설립된 국립병원 대한의원은 서울대병원의 모태(母胎). 1908년 건물 꼭대기에 설치된 기계식 시계는 2014년에 복원됐다.
현재 서울특별시의회로 쓰이는 빌딩은 원래 1935년에 세운 극장 건물이었다. 이곳은 한국인들을 일본침략전쟁에 동원하는 대회를 개최하는 것에 분노한 세 청년 의사가 행사장에 폭탄을 터뜨린 사건, ‘부민관 폭파 의거’로 잘 알려져 있다.
아지노모도(1909년 출시된 일본 화학조미료) 본포 ㈜스즈키상점 조선사무소. 고문서는 신축 당시의 외관에 대한 기록이다.
과거 높게 솟은 옥상 전광판이 현재 건물에는 없다.

Q : ‘근대건축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언제부터 시작했나? 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A : 오래전부터 근대건축이 일제의 잔재로 미움받아 그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2년 전부터 근대건축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근대건축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 매력을 전하고, 보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프로젝트의 주된 활동은 한국의 근대건축물 중 하나를 선정해 그것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일대기를 조사하고, SNS에 기록하는 것이다. 역사학 전공을 살려, 현대사의 굴곡과 우리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새겨진 건물의 역사를 평전 쓰듯 꼼꼼히 조사하고 기록을 남기려 한다. 옛 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답사하거나 철거되는 건물의 부재를 수집하는 것도 활동 영역의 일부이다.

Q : 세 개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각각의 차이는

A : ‘@aap_modern’ 계정에는 한 채의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틀이 정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부수적인 이야기를 다루기가 애매해서 또 다른 계정으로 ‘@_aap_official’을 만들었다. 근대건축 아카이브 프로젝트 활동을 공지하거나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나온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_standing_kun’은 내 일상과 근대건축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기록한다.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입구에 있는 옛 조선식산은행 본점 건물의 기둥과 주두. 산업은행은 1954년 설립 때부터 조선식산은행의 사옥을 사용했다. 이후 건물 노후화로 철거가 확정되고 그 과정에서 기둥 장식만 남겨 24년 동안 보관해 오다 지금 사옥 앞에 조형물처럼 세웠다.
충정로 3가 인근 나무 전봇대 위로 위치 정보를 담은 전신주의 주민등록증 같은 전주번호찰 ‘1947’이 희미하게 보인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 서울에 전기를 공급했던 경성전기주식회사의 맨홀과 서촌 골목길에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이 송석원 터에 지은 프랑스풍 저택 ‘벽수산장’의 흔적.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 서울에 전기를 공급했던 경성전기주식회사의 맨홀과 서촌 골목길에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이 송석원 터에 지은 프랑스풍 저택 ‘벽수산장’의 흔적.

Q : 스스로 근대건축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진행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사례가 있다면

A : 최근 사라지는 건물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 이상의 활동으로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1935년에 지어진 남대문로 요시카와 상점의 철거 소식을 들었다. 인근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건물주와 연락이 닿았고, 철거 진행 중에 외부 타일과 건물 이름을 새긴 동판, 원형 창문 등을 수습해 올 수 있었다. 해당 부재들은 박물관에 기증할 예정이다.

Q : 우리나라가 근대건축을 관리하는 방식에 대한 평소의 생각은

A : 우리나라는 근대유산의 가치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근대건축을 활용하는 방법도 천편일률적이다. 대부분 박물관이나 카페로 용도 변경해 운영하는 정도에 그친다. 지자체도 근대유산 활용에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해외 사례를 찾아보며, 보존뿐 아니라 이에 대한 활용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 서울의 근대를 보여주는 12여 개의 컷을 〈엘르 데코〉에 소개했다. 이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한 것인가

A : 서울에 남아 있는 공공· 상업· 주거 건축물의 시기적 변화가 잘 드러나는 것으로 뽑았다. 이중 1938년에 지어진 도요타 아파트(현 충정아파트)는 재개발이 예정돼 있어 더 애착이 간다. 현재 ‘충정 아파트 패밀리’라는 단체를 조직해 보존에 힘쓰고 있다.

Q : 최근 관심을 갖고 진행 중이거나 향후 진행 예정인 근대건축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있다면

A : 북한에도 근대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어디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이를 정리한 책을 출판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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