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거대 AI 시장 들여다보니…주도 못하면 미래 없다 ‘조 단위’ 투자
주도 못하면 미래 없다…‘조 단위’ 투자
국내 기업들의 초거대 AI 계획이 하나둘 구체화되고 있다. LG AI연구원은 최근 초거대 AI ‘엑사원 2.0’을 공개했다. 2021년 공개된 엑사원과 비교해 처리 시간이 25% 단축되고, 메모리 사용량도 70% 줄이는 데 성공했다. 앞선 엑사원이 ‘초거대 AI 시험판’이라면 엑사원 2.0은 진정한 초거대 AI라는 게 전문가 평가다.
네이버는 새로운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X’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미 내부 직원 상대로 최종 테스트가 진행되는 단계다. KT 역시 자사 초거대 AI 믿음(Mi:dm)을 올해 중 선보일 계획이다.
포티투마루(42maru) 같은 스타트업과 LG CNS, 메가존클라우드 등 클라우드 운영 관리(MSP) 업체들도 AI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기업의 AI 도입을 지원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여느 때보다 중요해진 AI 주권
해외 종속 탈피 위해 ‘협업’도 불사
AI업계 전문가들은 오픈AI ‘챗GPT’로 촉발된 초거대 AI 경쟁이 새로운 패권 전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자체 초거대 AI 모델 보유 여부가 ‘핵무기 보유’와 맞먹는 영향력을 가졌다는 의미다. 다른 나라 초거대 AI 모델에 의존하면 데이터와 가치관까지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정우 네이버 클라우드 AI 이노베이션 센터장은 “AI 기술력은 핵무기급 국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이를 주도하거나 종속되거나, 어느 쪽에 속하느냐에 따라 미래 경쟁력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해외 초거대 AI 모델의 API를 가져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있다고 하자. 해당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이용자 데이터는 해외 기업의 초거대 AI 모델이나 이를 운용하는 클라우드에 저장된다. 데이터 이탈을 우려할 수 있다. 데이터의 양과 품질이 AI 능력을 결정하는 시대다. 데이터 주권을 잃는다는 것은 결국 AI 기술 역량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악순환이 반복돼 결국에는 종속되는 상태가 될 것이다.”
글로벌 빅테크가 만든 초거대 AI 모델 대부분이 ‘영어’ 기반이라는 것도 우려할 만한 지점이다. 영어 기반 초거대 AI 모델이 만들어낸 콘텐츠에는 영어 문화권의 가치관이 녹아 있고, 이를 이용자들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김동환 포티투마루 대표는 “영어 기반 초거대 AI 모델이 만들어낸 콘텐츠에는 영어 문화권의 가치관이 녹아 있다”며 “이용자들이 자연스레 영어 문화권의 사고관과 가치관을 접하고 익숙해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AI 주권 수호를 위해 힘을 합치고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는 최근 ‘초거대 AI 추진협의회 발족식’을 열었다. 협의회는 네이버와 LG AI연구원, KT 등 국내 대표 주요 AI 기업이 모여 초거대 AI 기술과 산업 발전에 협력하는 협의체다. 이외에도 통신과 IT 서비스, AI 벤처 등 국내 105개 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했다.
AI에 투자 역량 집중하는 韓 기업들
늦었지만 ‘제대로, 빠르게’ 쫓아간다
글로벌 빅테크와 비교하면 국내 기업들은 AI 후발 주자다. 하지만 뒤늦게 출발한 만큼, 공격적으로 투자하며 격차를 좁히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KT다. KT는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향후 5년 동안 7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기존 AI 데이터센터 사업은 물론이고 AI 로봇·AI 케어·AI 교육 사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2년 내 AI 부문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치다.
LG AI연구원이 만든 초거대 AI 엑사원 2.0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LG AI연구원은 ‘LG AI 토크 콘서트 2023’에서 엑사원 2.0을 공개했는데, ‘신뢰성’에 눈길이 갔다. 엑사원 2.0은 사용자 질문에 답변과 함께 근거를 제시한다. 기존 초거대 AI 모델의 약점으로 꼽히는 ‘환각 현상’을 최소화한 것이다.
이게 가능해진 것은 그룹 차원의 AI 개발 지원 덕분이다. 엑사원 2.0은 LG그룹 계열사와 국내외 파트너사들을 통해 약 4500만건의 특허, 논문 전문 문헌과 3억5000만장의 이미지를 학습했다. 또 엑사원 2.0의 언어모델은 기존 모델과 동일한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추론(Inference) 처리 시간은 25% 단축했다.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데이터 양을 놓고 보면, 약 2조개의 토큰(말뭉치)을 학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LG AI연구원은 엑사원 2.0을 쓰임새에 따라 ‘유니버스(전문가용 대화형 AI 플랫폼)’ ‘디스커버리(신소재·신약 탐색)’ ‘아뜰리에(이미지 생성과 이해에 특화)’로 나눠 활용할 방식이다.
네이버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주자다. 네이버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X는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양의 데이터를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하이퍼클로바X는 지식인과 수십 년간 쌓인 뉴스 콘텐츠, 9년 동안 축적된 네이버 블로그 콘텐츠를 학습했다. 한국어 데이터 학습량만 놓고 보면 오픈AI가 개발한 챗GPT의 6500배 수준이다.
네이버의 AI 활용 서비스화 경험도 강점이다. 네이버는 AI 기술을 클로바 케어콜, 스마트스토어 등 자사 내부 서비스에 적용해왔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이퍼클로바X는 기업 간 거래(B2B), 해외 시장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 방침이다. 하 센터장은 “유통·마케팅·교육·건설·공공 등 다양한 업계에서 하이퍼클로바X를 활용해 더 쉽게 기업 내부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B2B 분야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 경쟁력을 두고서는 “검색·쇼핑 등 네이버 서비스에 AI를 적용해 효율성을 끌어올린 사례들이 많다. 서비스화 경험은 글로벌에서도 가장 앞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언뜻 보면 AI와 거리가 먼 ‘카드업계’도 AI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현대카드다. 배경화 현대카드 전무는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와 회사 내 업무 개선, AI 솔루션 고도화 등 세 가지 영역에 집중해 AI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AI를 통한 초개인화 마케팅 솔루션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현대카드는 AI 엔진으로 분석·가공한 데이터를 초개인화 마케팅에 활용하는 솔루션을 개발, 현대카드 PLCC(상업자 전용 신용카드) 파트너사들에 제공하고 있다.
중요성 커지는 SI·MSP 업체도 각광
초거대 AI 기술 개발에 뛰어든 곳은 대기업뿐 아니다. 스타트업업계에서도 초거대 AI 시장에 진입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곳들이 있다.
앤서링(Answering) AI 플랫폼을 개발하는 포티투마루가 대표 주자다. 앤서링 AI는 딥러닝을 활용,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답을 주는 기술이다. 2017년 앤서링 AI 분야에 뛰어든 포티투마루는 관련 시장을 이끄는 대표 업체다. 포티투마루의 기술력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미국 스탠퍼드대가 주관한 글로벌 기계독해(MRC) 경진대회 ‘SQuAD 2.0’에서 구글과 공동 1위를 차지했다. 2020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한 언어 이해 경진대회 ‘GLGE’에서도 1위에 올랐다.
최근에는 자체 개발한 초거대 AI 모델의 경량화 버전 ‘LLM42’도 선보였다. 기업에 꼭 필요한 기능만으로 설계한 버전이다. 김동환 대표는 LLM42를 ‘스페셜리스트’ AI라고 표현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만 전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분야에만 집중된 역량 덕분에 도입·운영비용도 저렴한 편이다. 또 LLM42는 ‘프라이빗(Private·맞춤형) 모드’도 지원한다. 이때 고객 정보 혹은 내부 데이터 유출 우려가 없어진다. 포티투마루는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도 LLM42를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챗GPT 등 초거대 언어 모델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는 ‘환각 현상’을 완벽히 제거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잘못된 정보로 인한 의사 결정 오류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이라며 “현재 대기업 몇 군데와 LLM42 도입을 논의,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스템통합(SI), 클라우드관리서비스(MSP) 업체들도 AI 시대에 발맞춰 변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전환(DX) 전문 기업’을 외치는 LG CNS의 행보가 눈에 띈다. LG CNS는 최근 챗GPT를 기반으로 하는 코딩 지원 서비스 ‘AI 코딩’을 개발했다. AI 코딩은 개발자 요구에 따라 코드 변환부터 생성, 추천, 품질 검사 등 다양한 기능을 지원한다. 코드 생성 기능을 예로 들면, 개발자가 코드 작성 화면에 “사용자 로그인 기능을 코딩해줘”라고 입력하면 적합한 코드가 도출되는 형태다.
이주열 LG CNS 수석연구위원은 “LG CNS는 고객사에 필요한 AI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확한 답변과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도록 최적화 작업을 돕고 있다”며 “AI 코딩은 LG CNS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서비스다. 고객사 피드백을 바탕으로 AI 코딩 정확도와 지원 범위를 넓혀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고객사에 어떤 AI 서비스가 필요한지 진단하는 디스커버리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최초 클라우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메가존클라우드도 AI 흐름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박문기 메가존클라우드 팀장은 “AI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와 기술이 보편화돼 MSP의 역할도 단순 클라우드 전환, 운영 관리에서 기술을 최적화해 활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다”며 “MS뿐 아니라 구글, AWS까지 오픈AI의 초거대 AI 모델을 활용한 서비스를 발표하면서 고객들로부터 AI 도입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 AI 시장이 커질수록 클라우드 산업도 성장하고, 이를 구축하는 MSP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9호 (2023.07.26~2023.08.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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