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사회가 붙인 이름… 계단 없으면 휠체어 타도 비장애”

손영옥 2023. 7. 2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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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장애 예술 현장을 가다] <중>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공공 프로그램 책임자 루스 하디 인터뷰
영국 런던의 사우스뱅크센터는 우리나라 서울 예술의전당처럼 전시·공연·음악회·문학행사 등 각종 이벤트가 열린다. 특히 2년마다 개최되는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은 장애예술인 축제이면서도 이주민, 페미니스트, 유색인 등 다른 소수자와 함께 하는 전위적인 성격 덕분에 대표적인 브랜드가 됐다. 사진은 위부터 사우스뱅크센터에서 열린 이매진어린이페스티벌, 세계여성을 위한 페스티벌. 사우스뱅크센터 제공


지난 6월 중순 런던 템즈강 남쪽 사우스뱅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사우스뱅크센터. 런던의 상징물인 런던아이가 코앞에 보이는 이곳은 런던 시민들의 문화예술 해방구다. 문이 없이 탁 트인 1층에서는 청소년들이 보드를 즐기고 다른 층에서는 ‘스스로 저자되기 이벤트’(The Self Publishing Show)가 진행 중에 있었다. 로열페스티벌홀, 퀸엘리자베스홀, 헤이웨드갤러리 등 3개 건물 군으로 구성이 된 사우스뱅크센터에서는 우리나라 서울 예술의전당처럼 전시·공연·음악회·문학행사 등 각종 이벤트가 열린다. 특히 2년마다 개최되는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은 장애예술인 축제이면서도 이주민, 페미니스트, 유색인 등 다른 소수자와 함께 하는 전위적인 성격 덕분에 대표적인 브랜드가 됐다.


사우스뱅크센터의 공공 프로그램 책임자 루스 하디(사진)를 현지에서 만나 소수자들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실천적 노력에 대해 들어봤다.

-우선 한국의 독자들에게 사우스뱅크센터에 대해 소개해 달라.

“사우스뱅크센터는 1951년 20세기 최고의 문화 행사인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의 개최지로 탄생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탄생 시기가 중요하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는데, 국민들이 전쟁의 아픔과 폐허의 고통을 딛고 새 출발하는 에너지를 얻고 또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예술을 즐길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건물도 아주 개방된 형식으로 설계됐다.”

-이곳만의 특징이 있다면.

“대중에게 개방된 공간이라는 성격이야말로 가장 독특한 점이다. 특히 1980년대 ‘오픈 포에’(로비 개방, foyer는 로비를 뜻함) 정책이 시행 되며 이전과 달리 서민들도 티켓 없이 전시·공연 등 각종 문화 행사를 즐길 수 있게 됐다. 현재 이곳에서 선보이는 프로그램의 40%가 무료로 제공된다. 그만큼 대중성이 강화된 곳이다.”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이 유명하더라.

다운증후군을 앓는 배우로만 출연진이 구성된 공연 무대에서 한 배우가 공연하는 모습. 사우스뱅크센터 제공


“이 공간 자체가 페스티벌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또 1년 내내 여러 페스티벌을 진행한다. 컨템퍼러리 아트 관련 멜트다운 페스티벌이 막 끝났고, ‘이매진’이라는 어린이 대상 페스티벌도 있다. 언리미티드는 이곳에서 개최되는 여러 페스티벌 중 하나인데, 영국을 넘어 유럽 전체에서 유명해진, 장애인 대상 가장 큰 페스티벌이다.”

-언리미티드를 시작한 계기는.

“2012년 런던올림픽과 패럴림픽이 개최되면서 문화올림피아드의 하나로 장애인이 참여하는 아트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개최 장소로 페스티벌이 유명한 사우스뱅크센터가 지정돼 첫 행사가 열렸다. 이후 자금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며 언리미티드 페스티벌 운영위원회가 꾸려져 2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사우스뱅크센터도 이 페스티벌의 파트너로 함께 참여하는데, 저는 사우스뱅크센터에서 수석 기획자로서 언리미티드를 총괄한다.”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은 장애인뿐 아니라 페미니스트, 이주민, 성소수자, 유색인 등이 함께 참여한다고 들었다. 이들 모두를 ‘장애’라는 이름으로 묶어 소수자 연대 예술 축제로 자리매김시키며 성공했다는 평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에 출품되는 작품은 다 장애인이 만든다는 점이다. 주제가 장애인이나 장애에 관한 것이 아닐 수 있지만 모두 장애인이 만든 작품이 전시나 공연으로 오른다. 참가들이 장애인이면서 동시에 유색인 이주민 페미니스트 등 다른 소수자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사우스뱅크센터는 ‘모든 행사는 우리가 사는 시대와 환경을 반영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런던은 방대하고도 다양성을 가진 도시다. 전시와 공연에 이 도시가 가진 인구 다양성이 표현되도록 노력한다. 이주민 등의 이야기가 녹아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존감 파티. 사우스뱅크센터 제공


-그런 작가의 예를 든다면.

“브라운튼 애비가 대표적이다. 흑인이면서 장애인이고 성소수자인 그는 아시아계나 흑인의 권익을 위해 공연을 한다.”

-영국에서는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들었다.

“그렇다.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의 정의는 다르다. 의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에서 장애 작가를 선정한다. 어떤 작가가 사회가 만들어낸 장벽 탓에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규정하면 토를 달지 않고 그를 장애 작가로 받아들인다. 즉 ‘사회적 장애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은 모두 장애인이 만들고 장애인이 이끈다.”

-한국 독자에게는 이해가 덜 가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휠체어 타는 사람을 우리는 대개 장애인이라고 명명하지만 휠체어 접근을 만든 장애물인 계단이 없는 곳이라면 그곳에서는 그도 장애인이 아니지 않나. 신경다양성(발달장애) 예술가들의 경우 사회가 만든 틀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장애인이라고 명명하지만 그런 틀을 바꾼다면 그들도 장애인이 아니게 될 것이다.”

-장애인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은 달라야 할까.

“영국에도 장애 예술 섹터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 장애인 작가가 만들어내는 작품이 실제로 훌륭하고 그들이 다 예술가라는 사실이다. 그 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들의 장애가 아니라 그들의 작품성 때문에 참여 작가로 선정이 되는 것이다.”

-장애인 관객을 포용하기 위한 노력이 다양하다고 들었다. 어떤 실천을 하고 있나.

“이는 언리미티드 페스티벌 뿐 아니라 사우스뱅크센터에서 하는 모든 전시와 공연에서 실천되는 노력이다. 예를 들어 전시공간인 헤이워드갤러리는 매 전시마다 수화 투어를 제공하고 있고, 자폐 등 신경다양성 관람객을 위해 ‘릴랙스트아워’도 운영한다. 사회적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특정 시간대를 정해 입장 관객을 줄이고, 조명 조도를 낮춰 심리적으로 편안한 관람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또 청각 장애인을 위해 공연자의 말이 문자로 바로 제공되는 ‘스피치 투 텍스트’ 서비스를 하기도 하고 컨템퍼러리 음악 페스티벌에서는 음악에 맞춰 무대가 진동을 해 청각장애가 있는 이들도 음악의 비트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영국에서는 장애인 예술을 지칭할 때 일본처럼 ‘에이블 아트’가 아니라 ‘인클루시브 아트(포용적 예술)’를 쓴다. 그 이유는.

“우리는 ‘에이블’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할 수 있는’이라는 뜻의) 에이블이라는 표현에는 에이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에이블하지 않으면 장애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좀 전에 제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장애로 명명하는 것은 사회적인 개념에 따른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어떤 면에서는 장애가 있다. 서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경험을 나누며 더 나은 사회를 향해 같이 나가자는 의미에서 우리는 인클루시브 아트를 지향한다.”

런던=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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