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 돌덩이 '감당 못 할 빚', 여기로 오세요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를 넘은 지 오래이고, 국민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 역시 200%가 넘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즉 전 국민이 1년간 버는 돈보다 빚이 더 큰 상황입니다. 부채의 질도 좋지 않습니다. 연소득의 70% 이상을 빚 갚는 데 쓰는 대출자 수가 약 300만 명에 달합니다. 취약차주(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 또는 저신용 채무자)의 대출이 증가하고 부실 가능성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오마이뉴스 연속기고를 통해 가계의 부채 팽창이 야기한 사회적 문제점과 개선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박현근]
▲ 서울 서초동 서울회생법원 |
ⓒ 연합뉴스 |
서민들의 삶은 참 고단하다. 그 고단함의 이유를 찾자면 수만 가지겠지만 첫째를 꼽으라고 한다면, 늘 가슴속에 돌덩이가 하나 있는 것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짓누르는 빚 문제이다.
빚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한국 사회는 IMF를 겪으며 노동시장 유연화를 명목으로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러한 현실에서 서민들의 소득은 늘 뻔하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해 대출을 받다 보면 어느새 채무의 굴레 속에 빠져 있게 된다.
한 달 벌어봤자 카드값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일단 또 카드로 생활하고 어김없이 다가오는 카드 결제일이 되면 또 메워야 하는 무한반복의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간다. 물가는 치솟는데 소득은 그에 맞춰 따라가지 못한다. 한번 빚지는 생활에 빠져들면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이유다.
채무의 굴레
또 20~30대 젊은 세대는 어떤 상황인가? 학자금 대출 때문에 이미 빚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 월급만으로 살기에는 부족해 진즉에 연애와 결혼, 출산은 포기했고 노후마저도 불안한 자신의 인생을 보자니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이러니 유튜브에서 홍수처럼 접하는 정보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자본 소득을 통한 부자 되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코인 투자나 주식 투자에 발을 들이게 되고 시드 머니(Seed money)라 불리는 목돈이 없다 보니 이른바 '빚투'(빚을 내서 투자하기)에 빠지게 된다. 레버리지(leverage)를 쓰지 않으면 수익을 극대화 할 수 없다지만 그것은 극소수 운 좋은 사람들의 성공담일 뿐 대부분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그렇게 또 20~30대 젊은 세대가 빚의 굴레 속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빚에 허덕이는 현실을 정부는 모를까? 심각한 부채 상황은 한국은행 통계로 바로 확인이 된다. 최근 10년간 가계부채 증가세는 매우 심각하다. 2023년 ¼분기 기준으로 약 1853조 원의 가계부채가 확인되는데 2013년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돌파한 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부채를 해결할 엄두가 안 나는 경우 가장 손쉬운 방법이 대환대출, 이른바 돌려막기다. 당장은 아무 문제가 없다. 빚을 못 갚는 사람에게 만기가 돌아오면 이전보다 좀 더 많이 대출해주고 좀 더 오랜 기간에 걸쳐 갚도록 해 줄 테니 빚을 계속 갚아보라고 하는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가 터지는 순간 금융기관이 부실해지고 이로 인해 경제 시스템이 마비될 수 있으니 가계부채 문제가 터지지 않도록 문제 해결을 일시적으로 미루는 것이다. 폭탄돌리기 방식의 임시 방편인 것이다.
하지만 근본 해결책이 아님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게 문제 해결을 미루다 보니 가계부채 1000조 시대를 넘어 2000조 시대를 바라보는 오늘까지 끌고 오게 된 것이다.
도덕적 해이? 문제는 사회적 비용
그렇다면 특단의 대책의 핵심이자 근본 대책은 무엇일까? 결국 채무의 재구조화 즉, 채무 조정이다. 이미 우리는 이러한 사태에 대비해 공적 채무조정 제도를 갖추고 있다. 공적 채무조정 제도의 대표는 개인 파산과 개인회생제도이다. 채무자가 자신의 모든 재산으로도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 경우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더 빌려주면서 죽기까지 평생 일해서 갚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재기 회생의 기회를 줄 테니 원점에서 다시 한번 시작해보라고 해야 한다.
이러한 공적 채무조정은 결국 면책(잔여 채무의 책임을 면제하는 일)을 전제하는데 면책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 즉 '도덕적 해이'로만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패자는 반드시 나온다. 그 실패자에게 재도전과 성공의 기회를 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실패자에게 아무런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결국 정부의 몫이 된다. 사회보장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것도 결국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것이고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실패자들이 아무런 의욕 없이 경제 활동을 포기해 버린다면 내수 침체는 물론 정부의 세수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자본주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제도가 바로 공적 채무조정제도인 것이다.
개인파산제도의 목적은 모든 채권자가 평등하게 채권의 만족을 얻도록 보장하는 것 외에 지급불능의 상태에 빠진 채무자에게 경제적으로 재기·갱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데에도 있다고 할 것이다. 그 제도를 설계함에 있어 반드시 파산자에 대한 면책을 일종의 특전으로 이해하는 전제 위에서 이를 행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고, 적극적으로 채무자의 불성실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평가되는 사유 등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면책을 인정한다고 하여도 이는 파산 상태에 있는 채무자에게 가급적 넓은 범위에서 경제적 재생의 기회를 부여하여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려는 정당하고 중요한 입법 목적에 기한 것으로서, 그것이 신청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헌법에 규정된 재산권,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과잉금지의 원칙 등을 근거 없이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위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3년 1분기 국내 은행 영업실적(잠정)'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7조 원으로 전년 동기(5조 6000억 원)보다 1조 4000억 원(24.0%) 증가했다고 한다. 또 올해 1분기 국내 은행의 이자 이익은 14조 7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12조 6000억 원)보다 2조 1000억 원(16.7%) 상승했다고 한다. 이는 역으로 채무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빚을 갚고 있는지 보여준다.
채무자들이 빚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숨을 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지급불능상태에 빠진 채무자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것을 도덕적 해이로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도 거둬들여야 한다.
공적 채무조정 제도는 채무자가 오로지 채무 변제를 위해서만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극단적 상황을 방지해야 한다는 요청에서 비롯된 것이다. 빚을 평생 갚아야 하는 상황, 또 평생 갚아나가도 결국 다 갚지 못할 상황에 놓인 채무자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는 현실을 우리는 심각하게 바라봐야 하고 그들의 절망에 공감해야 한다.
자신의 소득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채무를 안고 있는 채무자들은 지금 바로 공적 채무조정 제도로 달려가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판결한 것처럼 기존 채무의 압박과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기회와 미래를 설계할 기회를 갖는 것은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들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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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현근 변호사는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참여연대 홈페이지(https://www.peoplepower21.org/category/economy)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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