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시울 붉힌 유엔 참전용사들 “한국 위해 싸울 수 있어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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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백발 노병'이 된 6·25전쟁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25일 "폐허에서 빌딩 숲으로 변한 한국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며 "70여년 전 한국을 위해 싸울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두 아들과 함께 방한한 리처드 데커(92·미국)씨는 "전쟁 이후 한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도로, 자동차, 건물 등 모든 것들이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해 같은 나라인지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워드씨와 버크너씨는 전쟁 당시 인연을 맺었던 한국인 소년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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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백발 노병’이 된 6·25전쟁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25일 “폐허에서 빌딩 숲으로 변한 한국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며 “70여년 전 한국을 위해 싸울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참혹했던 전쟁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국가보훈부의 초청으로 전날 방한한 21개국 참전용사 64명과 이들의 가족 및 다른 참전용사 유가족을 포함한 200명의 방문단은 이날 보훈부와 한미동맹재단,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서울 송파구의 한 호텔에서 주최한 ‘정전협정 70주년 기념 유엔 참전용사 초청 감사조찬회’에 참석했다.
6·25전쟁 당시 4형제가 함께 참전했던 캐나다 출신 아서 로티(91)씨는 전날 밤 한참 동안 호텔 창밖을 바라봤다고 한다. 아들 로티씨는 “아버지는 한국이 완전히 파괴됐던 과거와 빌딩으로 가득한 현재 한국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며,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 한국의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아서 로티씨는 ‘전쟁 당시 잊지 못하는 기억이 있느냐’는 질문에 “부산의 전쟁고아들이 굶주린 채 길가에 혼자 남겨져 있었다”며 “폐허 속에서 아이들이 굶주리던 풍경이 90세가 넘은 지금에도 마음에 남아 있다”고 답했다. 이어 “나와 동료들은 길거리로 나가 아이들에게 우리가 받은 식량을 나눠줬고, 오랫동안 그 일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한국을 위해 싸우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이 완전히 폐허였던 과거에 참전했는데, 이제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를 지켜보는 것은 정말 보람찬 성취”라고 강조했다.
두 아들과 함께 방한한 리처드 데커(92·미국)씨는 “전쟁 이후 한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도로, 자동차, 건물 등 모든 것들이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해 같은 나라인지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빅터 암필드(미국·92)씨는 “내가 있던 부대의 주 임무는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것이었다”며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지만 북한군 포대 역시 산 어디선가 끊임없이 등장했고 전투는 끝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가 싸웠던 결실이 무엇이었는지 한국에 직접 와서 볼 수 있기를 얼마나 기대했는지 모른다”며 “70년이 지나서야 한국에 올 수 있게 돼 정말, 정말, 정말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조찬 행사가 이후에는 참전용사 윌리엄 워드(91·미국), 에드워드 버크너(91·캐나다), 콜린 새커리(93·영국)씨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워드씨와 버크너씨는 전쟁 당시 인연을 맺었던 한국인 소년을 찾고 있다. 워드씨는 부대에서 청소, 빨래 등을 도왔던 소년 ‘Chang(장)’을 회상하며 “장과 그 가족은 성실하게 일했고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며 “그 친구도 80세가 넘었을 텐데, 내가 그를 그리워하듯 그가 나를 기억하고 그리워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로 다시 돌아가 결정하라고 해도 기꺼이 똑같은 선택을 해 참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버크너씨도 전쟁 때 초소를 청소했던 ‘Cho Chock Song’이라는 소년을 떠올리며 “이 친구가 절대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잊을 수가 없다”며 울먹였다.
경연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 우승자로 유명한 새커리씨는 27일 부산에서 열리는 정전협정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아리랑을 열창할 예정이다. 그는 “전쟁 때 수많은 한국 병사가 아리랑을 불러 자연스럽게 곡조를 익히게 됐다”고 말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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