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이상민 탄핵안 무리수 '확인'…후폭풍 불가피
野3당 "이태원 참사 책임"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이태원참사특별법 등 강행 등 주목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을 기각하면서 정치권이 후폭풍에 직면했다. 특히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국회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던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헌법재판소는 25일 이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의 관점에서 피청구인(이 장관)이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국민을 보호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태원 참사 후 우려 속에서 탄핵소추 국회 가결
지난해 10월 핼러윈 축제 당시 이태원 일대에서는 158명이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참사 예방과 후속 대응 조치 등을 둘러싼 논란 끝에 야당은 이 장관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 등이 실시됐지만 이 장관에 대한 파면 등 후속 조치가 없자, 야3당은 올해 2월6일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탄핵안은 이틀 뒤인 2월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여야 의원들이 총동원된 가운데 재적의원 299명 중 293명이 투표에 참여, 찬성 179표·반대 109표·무 5표로 가결됐다.
탄핵 소추 당시 민주당 의원은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을 통해 유가족의 동의를 공개를 동의한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의 107명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한 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국회가 정부에 그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후에라도 그 책임을 다했다고 기록되기를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감정과 숫자의 힘이 통하는 것은 국회까지"라면서 "국회를 벗어나는 순간 이내 후회와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 엄청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헌재 판결로 확인된 '무리수'
이번 헌재 판결은 재판부 전원이 기각을 결정한 점이 야당 입장에선 가장 뼈 아픈 대목이다. 당초 야당에선 헌재 탄핵소추를 위해서는 6명의 헌법재판관의 탄핵 판단이 필요한 데 반해, 헌재 재판관들의 정치적인 성향 등에서 불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김승원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에서 "헌법에 정해진 중대한 법익과 헌법 수호의 이익을 비교해 보면 이렇게 159명이 돌아가신 대형 참사에 있어서는 정무직 장관 정도 해임하는 것 탄핵시키는 것은 사실 외국 사례에 비추어 봐도 상식적으로 이게 인용이 돼야 된다라고 보이는데 헌법재판관들이 소극적으로 법 해석에만 치중한다든가 아니면 정말 중대한 법 위반이 있는지 물리적인 쪽으로만 해석한다면 보수적인 분들이 그 방법을 따라서 탄핵 심판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민주당은 앞서 검찰청법 개정안(일명 검수완박법) 권한쟁의 심판 당시 5:4로 여론이 갈린 것에 주목했다. 진보 성향을 보인 헌재 재판관 5명은 탄핵소추에 동의할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재판관 전원이 기각을 결정함에 따라 이번 탄핵심판 판단은 진보나 보수냐의 정치적 판단을 거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애당초 이번 탄핵심판은 탄핵 사유조차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게다가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이 ‘기각’결정을 내렸으니, 얼마나 허무맹랑한 탄핵소추였는지도 여실히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유 대변인은 "이제 민주당이 책임져야 할 시간"이라며 "국민 피해를 가중시키는 민주당의 ‘습관적 탄핵병’,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결정과 관련해 야당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앞서 민주당은 당초 2월2일 의총에서 탄핵을 의결하려 했지만, 탄핵의 실효성 등을 놓고 고민에 빠지면서 의결 시점이 늦어졌다. 당시 의총에선 탄핵안이 기각될 경우 총선에 미칠 영향과 실효성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野 향후 대응은
야당은 이 장관에 대한 탄핵이 기각됐지만, 이태원특별법은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통해 퇴행하는 역사를 전진시키겠다는 다짐을 해본다"고 했다. 민주당은 "국민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걸음을 절대 멈추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민주당 등 야권은 지난달 30일 이태원특별법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패스트트랙 지정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원 이석한 가운데 재석의원 185명 가운데 184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면 본회의 상정까지 최장 11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소관 상임위 심사(최장 180일), 법사위 심사(최장 90일), 본회의 부의(60일)를 거쳐 표결에 이르기까지 최대 330일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르면 내년 총선 직전인 3월쯤 표결에 부쳐질 것으로 보인다. 21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 전인 내년 5월25일 이후 본회의에서 특별법을 통과시킬 수 있게 된다.
야당 일각에선 헌재 판결과 무관하게 감사원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감사를 서둘러 착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탄핵심판 기각이 이상민 장관이나 윤석열 대통령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법의 영역, 정치의 영역, 윤리의 영역은 각각 다른 것이고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정권의 책임은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감사원은 연말로 미룰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이태원 참사 감사에 착수해야 한다"며 "사를 통해 이상민 장관의 책임과 재난대응시스템의 미비를 적극적으로 추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민주당 이상민행정안전부장관 탄핵심판대응 TF는 이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진선미 TF 단장 등은 입장문을 통해 "유가족과 다수 국민의 분노를 유발한 중대한 공무원법 위반 행위에 대해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응당한 조치 취해야 한다"면서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심판대에 올랐다는 오명을 짊어진 이상민 장관은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즉각 사퇴하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이들은 "국회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이태원특별법 제정으로 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며 " 유가족 여러분이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치유의 길을 만들어 주고, 비극적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재난대응시스템을 철저히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민주당은 헌재 판결에 대한 존중 의사를 밝힌 데 반해 정의당이나 기본소득당 등은 유감을 밝혔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헌재 판결과 관련해 "헌재 판결은 존중한다"면서도 "행안부장관이 탄핵되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게 헌재 결정문에도 나와있고 국민 여러분의 일반적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오늘 헌재의 기각 결정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은 사라졌다"며 "이제 정부의 재난 대응 실패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게 됐다.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논평을 통해 "헌재가 국민에 대한 국가의 안전의무를 기각한 것"이라며 "국가행정의 부재 속에서 발생한 초유의 비극에 대해 행정 안전의 책임 장관에게조차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국민들께서는 이 정치적 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하냐"고 비판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는 몰염치한 정부에게 국민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수단은 장관에 대한 탄핵 뿐이었다"며 "사법부는 이번 결정으로 우리 국민은 앞으로 사회적 참사로 인해 국민이 얼마나 죽고 다쳐도, 정부가 재난 예방과 대응책임을 방기하고 어떠한 법적·정치적 책임조차 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고 질타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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