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의 아버지께 3년 째 책 읽어주는 딸…"책을 통해 치유했죠"
“잘 이해가 안 됐어요.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13년 전 낙상 사고 이후 전신 마비로 병상에 누워 계신 80대 아버지, 그 옆을 묵묵히 지키며 하루에도 몇 번씩 대소변을 받아내는 어머니. 김소영(52) 전 허스트중앙 대표는 한동안 부모님께 닥친 일련의 시련이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정동길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김 전 대표는 “열심히, 그리고 베풀며 살던 부모님의 삶이 결국은 이러한 결말인 것인지, 그렇다면 나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 건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변화는 책을 읽으면서 시작됐다. 퇴사 후 그는 책을 통해 삶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점차 자신이 치유를 받고 있음을 깨달았고, 온종일 누워 계신 아버지와 이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상의 아버지 옆에서 3년째 책을 낭독하게 된 계기다.
지난달 28일 출간한 에세이집 『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 드립니다』에 이러한 경험을 담았다. 그는 “사람들이 효녀라고 하는데, 책의 진정한 유익함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면 이 일(낭독)을 하진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이 힘들면 ‘내 안의 고난’에만 갇혀 있기 마련인데 책을 읽으면 ‘누구에게나 고난이 있을 수 있구나’ 깨닫게 되고 생각의 시야가 넓어진다. 인생을 줌아웃해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다”고 말했다. 책을 통한 치유 효과, 즉 ‘비블리오테라피’(독서치료)의 효능을 직접 경험했다고 강조했다.
소설부터 에세이, 고전문학, 우화집까지 김 전 대표가 낭독한 책은 30여 권에 이른다. “너무 어려운 지식 위주의 책보다는 서사가 있는 책 위주로 택했다”고 했다. 코로나19 유행 때는 휴대전화로 낭독을 녹음한 뒤 녹음 파일을 전송했다.
아버지와 할 말이 생겼고 교감도 늘었다. “죽음학 연구자의 책(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사후생』)에 죽음에 가까워지면 돌아가신 분들이 마중을 나온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버지께 누가 마중 나올 것 같냐고 여쭤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마중 나오겠지’ 하시더라”면서 “일반적인 생활 대화보단 이렇게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아프시기 전에는 아버지와 대화 나눌 시간이 없었는데, 책을 통해 대화를 나누며 아버지의 장점을 많이 발견했고 그걸 물려받은 것 같아 자긍심도 들었다”고 했다.
가장 큰 변화는 김 전 대표 자신에게 나타났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고 7년 후, 두 아들 옆에 있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던 그는 허탈감을 크게 느꼈다고 했다. 잡지사 CEO(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오를 정도로 “20년 넘는 기간 동안 일을 재밌게 했고, 또 굉장히 좋아했다”던 그는 “아쉽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인문학, 성경 공부 등을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내가 누구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근본적인 나에 대해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구절처럼 책으로 인생이 달라졌다”면서다.
현재 고등학생, 중학생인 두 아들의 교육에서도 가치관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무조건 성취해야 하고, 놓치거나 뒤처지면 불안했다. 제 세대는 그런 세대이기도 했다”면서 “이제는 아이들의 성향,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 파악해 진로를 풀어나가도록 시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제가 몰입의 즐거움을 깨달은 만큼 아이들도 그것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대표는 다음 달 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성우 서혜정, 송정희 씨와 ‘한여름 밤의 낭독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자신의 책을 낭독할 예정이다. 책을 낸 뒤 다양한 반응을 접하면서 그는 자신이 왜 이 책을 쓰게 됐을까 뒤늦게 생각해 봤다고 했다. “부모님의 고생이 조금이라도 더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면서 “그들의 힘들었던 시간이 단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쳤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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