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사회를 반추하게 하는 희곡
[조은미 기자]
예기치 않은 죽음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더욱이 근래 젊은이들의 죽음은 안타까움과 참담함을 자아냅니다.
물길에 휩쓸려간 해병대원, 학교에서 자살한 선생님, 그리고 대낮에 묻지마 범죄의 표적이 된 20대 청년. 이 세 분의 죽음은 단순 사고나 병사가 아니라 전부 다 사회적 죽음이라고 생각하니 슬픔에 더해 미안함이 듭니다. 저 역시 괴물 사회의 방조자로 살고 있으니까요. 여성을, 약자를, 장애인을 혐오하고, 노동자를, 이주자를, 하층 계급의 사람들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 미호강에서의 수해 복구 자원봉사 지난 21일 저희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은 진천 미호강 유역에서 수해복구 자원봉사 활동을 펼쳤습니다. |
ⓒ 조은미 |
또 지난 15일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에서는 폭우로 미호강 제방이 터지면서 14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참사의 책임은 누구일까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일까요? 관리 소홀과 대응 부실로 인한 인재일까요? 조선일보는 지난 7월 20일 기사 제목에 이렇게 썼습니다.
'미호강 하천 정비 반대 환경 단체, 오송 참사에 책임 느끼고 있나'
조선일보는 MB 시절부터 일관되게 4대강 공사를 찬양하고, 그에 더해서 지천 지류도 정비사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가 미호강 준설을 반대한 환경단체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있어요.
▲ 아서 밀러 희곡 <시련> <시련>은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1953년 이를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희곡입니다. |
ⓒ 조은미 |
문학의 숲에서는 지난 번에 아서 밀러의 희곡 <시련>(The Crucible)을 읽었습니다. <세일즈맨의 죽음> <모두가 나의 아들> 같이 사회 비판 의식을 담은 작품들을 쓴 작가는 1692년 메사추세츠 세일럼에서 실제 있었던 마녀재판을 소재로 <시련>을 씁니다. 미국에서는 1951년 거짓 선동으로 매카시즘 광풍이 불죠. 아서 밀러 자신도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는데, 바로 이 매카시즘을 비판하기 위하여 1953년 <시련>을 씁니다.
세일럼의 마녀사냥은 소녀들의 장난에서 시작됩니다. 한밤중에 마녀놀이를 하며 놀았던 것에 대해 벌을 받는 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됩니다. 고발자들은 당당하고 무고한 피고발자들은 신앙적, 윤리적으로 죄인이 되고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이웃에게 품어 온 오랜 증오심은 이제 공공연히 드러낼 수 있게 되었고, 성경이 자비를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토지 경계선과 거래를 둘러싼 끝없는 말다툼으로 표출되던 땅 욕심은 이제 도적적인 영역으로 승격되었다. 즉 이웃을 마녀라고 모함할 수 있었고, 게다가 덤으로 정의감도 맛볼 수 있었다.' - 아서 밀러 <시련> 서곡 중에서
마녀사냥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어떤 사람들은 이웃을 모함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챙깁니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모함으로 무고한 스물 다섯의 죽음을 초래한 세일럼의 마녀사냥. 단지 몇 백 년 전 과거의 일일 뿐일까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마녀로 지목받아 수난을 받는 사람들은 없을까요?
▲ 수해 피해를 입은 미호강변 나무 나무마다 쓰레기들이 걸려 있습니다. 강이나 숲은 복구하더라도, 돌아가신 분들은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
ⓒ 조은미 |
저는 당장 근간의 오송 참사에서도 조선일보와 정치권이라는 권력을 가진 세력에 의해 환경단체가 마녀로 지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부에서 더더욱 탄압받고 힘이 없는 환경단체들이 죽음의 배후로 등장하니까요.
밝혀진 오송 참사의 원인은 이렇습니다. 미호강에 다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제방을 44미터가량 절단하고 임시로 대충 막아 놓았다고 합니다. 허술한 임시 제방 위로 물이 넘쳤습니다. 공사 허가나 관리 감독을 철저히 했다면 참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번도 어김없이 천재가 아닌 인재. 뉴스를 들은 사람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러자 조선일보와 정치권은 거짓말로 선동하며 마녀를 만들어 냅니다. 지역의 환경단체들이 하천 준설을 막았기 때문에 참사가 발생했다고,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말이죠.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남은 가족들에게도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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