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끝내 '사법 무력화' 강행…이스라엘 격랑 속으로

김상도 2023. 7. 25. 16: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찰, 도로점거 시위대 물대포·기마대 동원 진압…34명 체포
올메르트 前총리 "이스라엘, 내전으로 들어가고 있다" 경고
“의회 민주주의 훼손”…美 등 국제사회 우려 목소리 커질듯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경찰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체계 개편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 AP/뉴시스

극우 성향의 베냐민 네타나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부가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는 이른바 '사법 정비' 법안을 끝내 강행한데 대해 항의 시위가 잇따르는 등 이스라엘의 정국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특히 네타냐후 정권은 사법체계 개편을 위한 추가 입법까지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스라엘의 정치적·사회적 갈등과 혼란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AP통신과 이스라엘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가 24일(현지시간) 집권 연정이 발의한 사법부 권한 축소 법안 처리를 강행한 뒤 수만 명의 시위대는 의회와 대법원, 수도 텔아비브를 지나는 아얄론 고속도로에서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거리의 벽과 울타리에는 "우리는 독재자를 섬기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아니면 반란이다", "네타냐후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어지럽게 나붙었다.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이스라엘 경찰은 고속도로를 점거한 시위대에 물대포를 쏴 강제해산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기마대까지 동원했다. 경찰의 진압에 해산된 아얄론 고속도로 위 시위대는 이후에도 하샬롬 다리, 카플란 거리 등 텔아비브 곳곳에서 "부끄럽다"는 구호를 외치고 부부젤라와 사이렌 등을 울리며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자 대니 키멀(55)은 "이것은 독재로 가는 길"이라며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이러면 안 된다. 이것은 그들(시위대)의 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스라엘 경찰은 시위대를 6시간 만에 해산시켰으며, 경찰을 공격하거나 공공질서를 어지럽힌 혐의로 텔아비브에서 18명 등 모두 34명을 체포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중부에서 시위대를 향해 차량을 돌진해 3명을 다치게 한 운전자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또 경찰관 10명이 충돌 과정에서 다쳤다고 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크세네트는 앞서 집권 연정이 발의한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2~3차 심의를 거쳐 표결 끝에 법안을 가결 처리했다. 여당이 만장일치 찬성한 가운데 야권이 표결에 보이콧을 선언하며 찬성 64표에 반대 0표로 가결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4일(현지시간) 사법부 무력화 법안 표결을 위해 예루살렘 크네세트(의회)에 도착해 한 의원과 악수를 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이 사법부 권한 축소 법안에는 총리의 장관 임명 등 행정부 결정을 사법부의 판단으로 뒤집을 수 있는 견제장치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헌법재판소 기능을 담당하면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번 개정으로 이 역할이 사실상 무력화된 것이다.

더욱이 집권 연정이 추진하는 사법제도 개편안에는 두 가지 중요한 사안이 더 있다. 하나는 의회에 대법원의 결정을 무효화할 권한을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또는 의회)가 법관 임명의 최종 승인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집권 연정은 애초 법안을 한꺼번에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사법 개편안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커지자, 네타냐후 총리는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지만 야당과의 협상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이번에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을 먼저 강행 처리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집권 연정은 올가을 남은 두가지 사법개편안도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법개편 법안의 설계자로 꼽히는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은 이번 개편안 통과 뒤 “사법제도를 개편하기 위한 역사적 첫 조처를 했다”며 곧 추가적인 입법을 추진할 것임을 예고했다.

이에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는 영국 채널4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민주주의의 뿌리를 위협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우리가 받아들이거나 용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이스라엘은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부가 (국민) 다수에 의해 불법으로 인식된다는 측면에서 시민 불복종, 즉 내전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6년 3월 이스라엘을 방문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왼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 EPA/연합뉴스

네타냐후 총리는 1996년 처음 집권에 성공한 뒤 27년간 이스라엘 정계에서 중심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엔 민족주의 극우 세력과 손잡고 세 번째 집권에 성공하는 등 지금까지 16년간 총리로 재임했다. 하지만 재임기간 부정청탁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2019년 뇌물과 사기,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재판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번 법 개정에 대해 ‘방탄 입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국제사회에서도 이스라엘의 민주주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재집권 이후 7개월 만에 성사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네타냐후 총리 초청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스라엘의 최우방국인 미국 백악관은 법안이 통과된 이후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은 그간 민주주의에서 주요한 변화가 계속되려면 가능한 광범위한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며 “오늘 (의회) 표결이 가능한 가장 적은 수의 찬성으로 진행된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은 정치적 대화를 통해 더 넓은 합의를 도출하려는 이츠하크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과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의 노력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보낸 성명에서 “현재의 사법개편이 더 분열되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직면한 다양한 위협과 도전을 고려할 때 이 사안을 서둘러 처리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