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킥 실점 전까진 韓 흐름…포기만 않으면 16강 간다" [이민아 女월드컵 관전평]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의 스타 미드필더 이민아(32·인천 현대제철) 해설위원이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기간 중앙일보에 관전평을 게재한다. 2012년 대표팀에 뽑힌 이후 2019년 프랑스 여자 월드컵에 출전하는 등 꾸준히 여자 대표팀의 간판 선수로 활약해왔다. 국가대항전(A매치) 76경기 17골을 기록 중이다. 이민아가 소셜미디어(SNS)에 사진을 올리면 수 만 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린다. 그는 이번 월드컵에는 무릎 부상 여파로 참가하지 못했다. 이 위원이 조별리그 H조 첫 경기 한국-콜롬비아전 주요 인물과 경기를 분석했다.
첫 경기(콜롬비아전 0-2패)를 졌을 뿐인데, 벌써 월드컵 16강 적신호 얘기가 나온다. 끝난 게 아니다, 아직 두 경기 남았다. 끝까지 투혼을 발휘한 우리 선수들 고개를 들었으면 좋겠다. 괜히 기대감을 갖거나 희망 고문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은 경기 초반 콜롬비아를 압도했다. 상대 진영에서 패스를 주고 받으며 공격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조소현, 최유리, 지소연 등의 날카로운 슈팅이 연달아 나오면서 경기 주도권을 쥐었다. 우리 선수들 눈과 몸짓에서도 하고자 하는 의욕이 드러났다. 콜롬비아 선수들이 당황해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더라. 이때까진 한국이 경기를 무척 잘 풀어갔다고 볼 수 있다. 골이 터지는 것도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
운이 나빴다. 전반 중반 핸드볼 파울로 콜롬비아에 페널티킥 골을 내주면서 상승세가 한 풀 꺾였다. 전반 막판엔 콜롬비아의 슈팅이 윤영글 골키퍼의 손을 스쳐 골문에 빨려 들어갔다. 짧은 시간 안에 아쉬운 실점을 두 차례 허용하면서 경기 흐름은 콜롬비아 쪽으로 넘어갔다.
월드컵처럼 큰 무대에서 0-1과 0-2는 다르다. 두 골 차가 주는 압박감은 크다.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점수 차라는 뜻이다. 부담에 짓눌려 추격 의지가 꺾이는 팀도 종종 있다. 그런데 한국은 달랐다. 월드컵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주축이기 때문이다. 지고 있거나 관중이 많은 경기라고 해서 흔들리거나 주눅 든 선수는 없었다. 일부에서 "얼었다, 긴장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수년 간 대표팀에서 함께 뛴 내 눈엔 자신감 있게 플레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금민이 전반 추가 시간 날카로운 헤딩이 추격을 불씨를 살렸다. 만약 전반에 한 골을 만회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다.
한국은 막판까지 특유의 '고강도' 플레이를 이어간 점도 높게 평가할 만한 하다. 볼을 뺏겼을 때 즉각 수비에 가담했다. 볼을 되찾은 장면도 있었다. 콜롬비아 장신 공격수 마이라 라미레스(1m78㎝)를 막기 위해 한국 수비수들이 악착 같은 협력 수비를 펼쳤다. 손화연과 최유리는 전방에서 많이 뛰고 싸워줬다. 미드필더들은 중원에서 쉬지 않고 좌우 양쪽 풀백과 연계하는 모습 콜린 벨 감독님이 강조하는 '고강도' 움직임이었다.
한국 선수들 플레이에는 '고강도 정신'이 충분히 드러났다.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사력을 다해 뛰는 선수들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아마 내가 선수들과 경기를 뛰었다면 "흔들리지 말고 우리 플레이를 하자, 포기하지 말자"고 했을텐데, 마치 내 얘기를 들은 것처럼 최선을 다 해줘서 대견했다.
한국 여자 축구의 미래인 2007년생 막내 케이시 유진 페어의 월드컵 데뷔는 기뻐할 만한 일이다. 16세 26일로 이번 대회에 출전한 32개국 선수를 통틀어 가장 어린 페어는 여자 월드컵 사상 최연소 출전 기록과 한국 선수 월드컵 최연소 출전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어린 나이에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저돌적인 플레이를 하는 모습이 든든했다.
한국 축구는 어려운 상황에서 더 힘을 냈다. 콜롬비아전 패배는 속상하지만, 모로코와 독일전을 잘 헤쳐갈 수 있다고 믿는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16강 갈 수 있다. 축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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