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美서 사랑받는 韓스타 무용수, 안중근과 돌아왔다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출신…현재 美발레단에서 활동
안중근 의사 구국활동 에너지 넘치는 남성 군무로 표현
안중근 의사는 "대한독립의 함성이 천국까지 들려오면 나는 기꺼이 춤을 추면서 만세를 부를 것이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창작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안중근 의사의 이 유언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의 두 주역 배우 이동훈(37)과 이은원(32)을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연희동의 M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이동훈은 주인공 안중근 역을 맡는다. 그는 "많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남성의 발레"라며 "공연 시간이 70분으로 짧지만 남성 발레의 대표작 ‘스파르타쿠스’처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2시간40분짜리 대작 발레 ‘스파르타쿠스’는 기원전 1세기 로마 제국 노예 반란의 지도자 스파르타쿠스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발레리노들의 역동적인 전투 장면이 유명하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도 안중근 의사의 의병활동, 단지동맹, 하얼빈 의거 등 구국활동을 강렬한 남성 군무로 표현한다.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 역을 맡은 발레리나 이은원은 그 강렬함에 대해 "전쟁 같은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무용창작산실 우수작품 제작지원 선정작으로 광복 70주년이던 2015년 초연했다. 이후 재제작 과정을 거쳐 2021년 예술의전당 창작발레로 , 지난해 제12회 대한민국발레축제 개막작으로 공연했다. 올해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유통협력 지원사업 선정공연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26~27일 충주시문화회관을 시작으로 다음달 4~5일 광명시민회관, 11~12일 마포아트센터, 25~26일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이 이어진다. 이은원은 8월 광명시민회관 공연부터 무대에 오른다. 그가 소속된 미국 워싱턴 발레단은 현재 새 시즌 개막을 앞둔 휴식 기간이다. 이은원은 잠시 짬을 내 고국 무대에 선다.
"미국에 있으니까 점점 한식도 좋아하게 되고 한국 전통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안중근은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인물이고 안무를 만드신 문병남 M발레단 예술감독님과 (이)동훈이 오빠는 국립발레단에서 함께 일했다. 다시 같이 일하면 너무 재미있겠다 싶어 참여하게 됐다." 이동훈은 지난해 출연했고 이번이 두 번째 무대다. 이은원은 이번이 첫 출연인데 2021년 재연 무대를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발레 작품이 중간에 인터미션도 있어서 길다고 느낄 수 있는데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인터미션 없이 1시간10분 동안 빠르게 전개돼 지루할 틈이 없다. 남성 발레여서 에너지도 많이 느낄 수 있고 전쟁처럼 극적인 요소들이 많아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안중근 의사와 달리 부인 김아려 여사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인물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 듯 했다. 이은원은 "김훈 작가의 소설 ‘하얼빈’도 읽으면서 정보를 계속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이동훈도 안중근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처음 안중근 역을 맡았을 때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분이고 혹시라도 누가 되는 표현을 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면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둘 생각이다. "그 업적을 떠나 안중근 의사도 결국 남성이고 인간이다. 안중근 의사가 겪었던 역사적 상황에서 나라면 어떤 감정이었을까에 초점을 맞춰 표현하려 한다. 안중근 의사가 의병 활동을 할 때 열정이나 투지 등을 생각하면 동작에 더 힘이 들어간다. 음악도 큰 도움이 된다. 북소리 등에 따라 절제하면서도 힘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이동훈은 인상적인 장면으로 안중근 의사가 일본군에 패한 뒤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꼽았다. 지난해 해당 장면 공연 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군에 진 것도 분한데 나를 믿고 따라준 사람들이 다 죽었으니 너무 죄스러운 생각이 들어 펑펑 울었던 것 같다. 감정이 주체가 안 됐다."
이은원은 마지막 장면을 꼽았다. 죽음을 앞둔 안중근이 꿈속에서 아내를 만나고,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수의를 입혀주는 장면이다. "아들에 대한 엄마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니 슬펐다."
이동훈과 이은원 모두 국립발레단 수석으로 활약하다 현재 미국 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무용수들이다. 이동훈은 2008년 9월 국립발레단에 특채로 입단한 뒤 3개월 만에 ‘호두까기 인형’ 주역을 맡았고 2011년 수석 무용수로 발탁됐다. 지난해 7월부터 미국 털사 발레단에서 활동 중이다. 이은원은 2010년 7월 국립발레단에 인턴 단원으로 입단했고 그해 12월 호두까기 인형에서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입단 2년 만인 2012년 수석 무용수에 올랐고 2016년 워싱턴 발레단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이동훈은 "국립발레단에서 함께 활동할 때 힘들지만 서로 격려하면서 했던 기억이 크게 남아있다"며 "은원이가 여전히 처음 입단했을 때 20살처럼 보이는데 30대가 됐다는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은원도 성향이 잘 맞아 상대 배역으로 누구보다 이동훈이 "오빠가 두 아이 아빠라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동훈도 2018년 국립발레단을 퇴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미국에서 발레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짬짬이 발레 공연을 하던 중 다시 간절함이 생겨 미국 발레단 문을 두드렸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스무 살 안팎의 어린 친구들과 오디션에서 경쟁했고 지난해 털사 발레단에 입단했다.
국립발레단에서 빠르게 승급하며 닮은꼴 행보를 보인 두 사람은 최근 비슷한 시기에 부상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은원은 지난해 5월 어깨 수술을 했다. "미국에서 공연하던 중 파트너가 (어깨를) 너무 세게 잡아당겨서 탈골됐는데 이후 탈골이 계속됐다. 결국 지난해 4월 지젤 공연을 마치고 시즌이 진행 중인데 한국에 돌아와 수술을 했다." 이은원은 재활을 거쳐 올해 1월 무대에 복귀했다. 그는 시련이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과정이) 순탄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다." 이동훈은 올해 초 무릎 수술을 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털사 발레단에서 여전히 유연하고 점프도 충분하다며 은퇴를 만류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요즘은 40살 넘어도 무용수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억에 남는 무용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을 떠난 지 이제 5년이 됐는데 가끔 내가 너무 빨리 잊혀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 해온 일인데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면 허무할 것 같다. 공연계에서 무용은 아직 비주류라고 생각한다. 무용수들이 정말 많은 노력을 하는데 그 노력을 평가받지 못 하는 것 같다. 발레를 더 많이 알리고 싶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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