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밭경작'의 심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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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망명한 김옥균은 일반에게 우선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일본식 이름을 지었다.
후쿠자와 유키치, 도야마 미츠루, 오카모토 류노스케, 이누카이 스요시, 이노우에 가쿠고로우 등 재야 인사들은 김옥균을 환대했지만 일본 정부는 외교적 부담 때문에 그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냉랭하게 대우했다.
김옥균의 이러한 기도를 탐문한 일본 정부는 김옥균 등이 일본에 도착한 약 3개월 후에 일본 관헌들을 직접 동원하여 김옥균의 행동을 감시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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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기자]
▲ 김옥균(1851-1894) |
ⓒ 독립기념관 |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은 일반에게 우선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일본식 이름을 지었다. 이와작(岩田周作)이다. 이를 두고 딱딱한 돌밭을 경작하는 것처럼, 노력은 하지만 공이 없는 즉 노이무공(勞而無功)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따랐다. 박영효는 이마자키(山岐永春), 이규완은 아사다(淺田良), 정난교는 나카하라(中原雄三)으로 개명했다.
김옥균과 몇 사람은 일본에 남기로 하고 서재필과 박영효·서광범은 4개월 후 미국으로 떠났다. (박영효는 얼마 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뒷날 서재필의 글에서 4개월 일본 체류 기간의 곤경을 살피게 된다.
우리가 몇 번 죽을 뻔하고 동경에 도착했을 때, 우리 일행은 돈도 없고 숙소도 없고 친구도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를 천대했고(treated us shabbily) 때로는 실지로 적대감을 가지고 대해 주었다. 나는 몇 달 동안 일본에 있던 기간의 겪은 쓰라린 경험(terrible experience)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때로는 이틀 동안이나 굶고 지내야 했고, 때로는 유숙할 곳이 없기도 했다. 요코하마에 살던 한두 사람의 미국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굶어 죽었거나 얼어 죽었을 것이다. (주석 7)
김옥균과 일행은 인연이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호의로 그의 집과 인근 여관에서 무료한 날을 보내어야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적대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망명객 김옥균은 일본에서도 곤란한 처지였다. 후쿠자와 유키치, 도야마 미츠루, 오카모토 류노스케, 이누카이 스요시, 이노우에 가쿠고로우 등 재야 인사들은 김옥균을 환대했지만 일본 정부는 외교적 부담 때문에 그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냉랭하게 대우했다.
갑신정변 이후 조선 정부는 일본 정부에 망명객의 송환을 기회 있을 때마다 요청하였다. 망명 인사들은 여러 차례 쿠데타를 모의하기도 했고, 이들을 일본 정부가 보호한다는 국제적 여론도 있었기 때문에 일본 측으로서도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이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그러하였다. (주석 8)
김옥균은 남아 있는 동지들과 도쿄와 요코하마를 전전하면서 재기를 위해 길을 찾았다. 이같은 움직임이 일본측 감시원들에게 탐문되고 일본 정부의 박해로 나타났다.
김옥균은 이곳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곧 재기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김옥균의 이러한 기도를 탐문한 일본 정부는 김옥균 등이 일본에 도착한 약 3개월 후에 일본 관헌들을 직접 동원하여 김옥균의 행동을 감시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하여 김옥균 등은 아사쿠사(淺草) 본원사(本願寺)에 피신하여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당시 만청 군벌세력을 등에 업고 정권을 다시 잡은 수구파 반동 정부는 소위 흠차대신(欽差大臣)으로 일본에 파견한 서상우(徐相雨)와 부사 뮐렌도르프 등으로 하여금 김옥균 일행을 조선측에 넘기도록 일본 정부에 교섭하게 하였으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하여 응할 의향을 표시하고 김옥균 일행에 대하여 '보호'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줌으로써 조선 측으로부터 자객을 보내 김옥균 등을 암살하려고 하는 데 동의하였던 것이다.
일본정부의 이와 같은 태도에 추종하여 그 후 후쿠자와도 김옥균에 대하여 점차 표면적인 '동정'마저 저버리고 냉정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주석 9)
주석
7> 이정식, <구한말의 개혁·독립투사 서재필>, 51~52쪽,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8> 조재곤, 앞의 책, 54쪽.
9> 임광철, 앞의 책, 194~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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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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