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사랑한 셀틱, 한국인 '삼총사'의 새로운 도전
[이준목 기자]
스코틀랜드 명문 프로축구단 셀틱FC가 세 명의 한국인 유망주를 동시에 보유하게 됐다. 셀틱은 7월 24일 한국 프로축구 K리그에서 활약하던 공격수 양현준-미드필더 권혁규의 영입을 발표했다.
두 선수 모두 계약 기간은 5년이며, 이적료는 구단에서 공개하진 않았으나 언론은 양현준이 250만 유로(약 35억 4천만 원), 권혁규는 100만 유로(약 14억 2천만 원)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셀틱에는 이미 올해 1월 먼저 입단한 공격수 오현규가 활약하고 있다. 오현규는 겨울 이적시장을 통하여 시즌 중반에 합류했음에도 짧은 기간에 소속팀에 적응하며 21경기 7골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첫 시즌부터 세 개 대회 우승으로 도메스틱 트레블(리그, 리그컵, FA컵)을 경험했다.
강원FC 소속 당시 양현준은 지난 시즌 K리그1에서 8골 4도움을 올리며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으며 올시즌 21경기에 나서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권혁규는 연령대별 대표팀을 두루 거친 미드필더로 K리그2 부산 아이파크에서 19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김천 상무에서 군복무도 이미 마쳤고 K리그 통산 기록은 76경기 3골 2도움이다. 셀틱은 이미 오래전부터 두 선수에게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 선수는 입단이 확정된 이후 공식 홈페이지에 셀틱 유니폼을 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입단 소감을 밝혔다. 양현준은 "셀틱으로 오게 돼 매우 기쁘다. 셀틱 선수로 이 자리에 있을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밝혔다. 권혁규 역시 "셀틱에서 좋은 감독, 선수들과 함께하길 기대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과 함께 경기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로써 다음 시즌 셀틱에서는 무려 세 명의 한국인 선수가 동시에 유럽 무대를 누비는 진풍경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포지션상 오현규는 공격수, 양현준은 측면 윙어, 권혁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각기 포지션과 플레이스타일이 다른 만큼 충분히 공존이 가능하다. 또한 세 선수 모두 2000년대 이후 출생으로 비슷한 나이에 K리그 출신이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낯선 유럽 무대에 적응할 수 있다.
셀틱은 스코틀랜드에서 2022-2023시즌 자국리그 트레블을 포함하여 통산 53회 정상에 올라 라이벌 레인저스(55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우승을 이룬 명문구단이다. 올시즌을 앞두고 2016∼2019년에도 셀틱을 이끌었던 브렌던 로저스 감독이 다시 복귀하여 지휘봉을 잡았다. 2023-24시즌에는 '꿈의 무대'로 불리우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다.
셀틱의 현 스쿼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유럽 명문구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아시아 선수들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인 선수 3명에, 일본인 선수는 5명에 이른다. 그만큼 한일 선수들간의 주전 경쟁이 치열해질수 있다.
셀틱은 역사적으로도 아시아 선수들에게 개방적이었다. 유럽 클럽에서 활약한 첫 아시아 선수가 1936년 인도 출신(당시는 영국 식민지)으로 셀틱에 입단했던 모하메드 압둘 살림이라는 인물이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셀틱이 아시아 선수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였다. 일본 국가대표 출신인 '프리킥 마스터' 나카무라 슌스케는 2005년 셀틱에 입단해 4시즌 동안 142경기에 출전해 28골 36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특히 최전성기였던 2006-07시즌에는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스코틀랜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지난 2022-23시즌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후루하시 쿄고는 나카무라 이후 16년 만에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두 번째 일본인 선수가 됐다. 현재까지 아시아 선수가 스코틀랜드 MVP를 차지한 것은 나카무라와 후루하시, 단 두 명뿐이다.
일본축구를 통하여 아시아 선수들의 잠재력을 확인한 셀틱은, 한국과 중국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국인 선수로는 2009년에 기성용, 2010년에는 차두리가 잇달아 영입되며 셀틱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두 선수는 셀틱에서 리그 우승을 합작하며 PSV 아인트호벤의 박지성-이영표, 제니트의 김동진-이호 이후 세 번째로 한국인 선수가 함께 같은 유럽 팀에서 우승한 성공사례가 됐다.
기성용과 차두리에게도 셀틱행은 커리어의 전환점이 됐다. 기성용은 이전까지 볼을 예쁘게 차지만 수비력과 활동량이 떨어지는 반쪽짜리 선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면, 셀틱에서 치열한 주전경쟁을 거치며 파이팅넘치는 플레이메이커형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신의 플레이스타일을 정착시켰다. 또한 셀틱에서의 스텝업을 통하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스완지시티)로 진출하여 빅리거의 반열에 올랐다.
차두리는 셀틱 입단전까지만 해도 독일에서 '강등 청부사'라는 오명으로 불릴만큼 클럽 커리어가 불운한 편이었다. 하지만 풀백으로 포지션 전환 이후 셀틱에서 프로 데뷔 첫 우승까지 차지하며 뒤늦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기성용-차두리가 셀틱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는 일본의 미즈노 코키, 중국의 정쯔도 소속되어 있었다. 유럽의 한 클럽에서 동아시아 한중〮일 삼국 선수가 같이 공존한 것은 최초의 사례였다.
다만 한국과 일본에 비하여 중국 선수들의 활약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05년 셀틱에 입단한 수비수 두웨이는 당시 유럽에서 활약하던 박지성-이영표를 평가절하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셀틱 데뷔전이었던 3부리그팀과의 FA 경기에서 출전 45분만에 온갖 본헤드 플레이를 남발한 끝에 교체당하는 '전설의 경기'를 남기고 팀은 패배했다. 이후 두웨이는 셀틱 유니폼을 입고 더 이상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고작 1경기 출전 –15일만의 계약 해지라는 희대의 진기록을 남긴 채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정쯔는 프리미어리그 찰튼 애슬레틱 FC를 거쳐 2009년 셀틱으로 이적하여 1년간 그럭저럭 활약했지만 시즌 후 미즈노와 함께 방출명단에 올라 중국으로 돌아갔다. 정쯔 이후로 셀틱은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 선수 영입에 더 집중하게 된다.
현재까지 셀틱을 거쳐간 아시아 선수만 총 14명에 이르며 이는 유럽 클럽중 최다 기록이다. 나카무라-기성용-후루하시 등의 성공사례로 인하여 아시아 축구가 더 이상 마케팅의 대상이 아닌 실력으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셀틱은 빅리그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셀틱이 속한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의 유럽 클럽랭킹은 9위로 빅5(잉글랜드,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와 네덜란드, 포르투갈, 벨기에의 뒤를 잇는 중위권 리그로 평가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셀틱과 레인저스는 꾸준히 유럽클럽대항전에 나서고 있는 구단들이기도 하다.
실제로 셀틱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 5대 빅리그까지 진출한 버질 판 다이크(리버풀), 키어런 티어니(아스날) 같은 사례들이 많으며, 아시아 선수로만 국한해도 기성용, 나카무라 슌스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오현규-권혁규-양현중으로 이어지는 신 한국인 3총사는 모두 20대 초반으로 아직 한창 더 발전할 수 있는 유망주들이다. 셀틱이 한국축구의 영건들에게 더 큰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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