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정밀취재 | 분열의 과거 뒤로하고 환골탈태 나선 광복회
[정밀취재] 분열의 과거 뒤로하고 환골탈태 나선 광복회
“적폐청산하고 제2 창립할 적기… ‘존경받는 원로단체’ 향한 여정 시작됐다”
이종찬호 정상화 작업 분주, 회원 자긍심 고취하고 복지 강화 추진
“보훈급여금 증손까지 지급, 지부장·지회장 직선제 도입” 여론 많아
바람 잘 날 없던 광복회가 오는 8월 15일 광복 78주년을 맞아 옛 명예를 되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독립유공자 및 그 유족·후손들이 결성한 광복회는 국내 대표적 보훈단체이지만 최근 몇 년간 불미스러운 일로 여론의 지탄을 받아왔다. 지난해 봇물 터지듯 터진 김원웅 전 회장의 정치 편향, 공금 횡령, 비자금 조성 의혹에 광복회 내부는 김 전 회장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소송전을 벌였다. 김 전 회장이 물러난 후에도 1년 동안 광복회장이 직무대행까지 포함해 네 번(김원웅→허현→장호권→김진→최광휴) 바뀔 정도로 사분오열됐다. 일각에서 광복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종찬 광복회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독립운동가였던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 회장은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에서만 내리 4선(11~14대 국회의원)에 성공했으며, 노태우 정부 정무 제1장관, 김대중(DJ) 정부 국정원장 등을 거쳤다. 당시 진보 진영에서도 이 회장의 대화와 타협 능력을 높게 평가했을 정도로 갈등 수습에 일가견이 있다. 이 때문에 회원들은 오랜 정치 경험으로 쌓은 경륜과 탄탄한 인맥을 지닌 이 회장을 광복회 정상화의 적임자로 판단했다. 이 회장 역시 월간중앙 7월호 인터뷰에서 “‘남산골 샌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은 안 쬔다’는 옛말과 같은 각오로 문제 해결에 임하고 있다”며 개혁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회원 반목 가져온 수익사업 근절에 지지 여론
“존경하는 이종찬 선생님께. 저는 광복회원으로서 처절하게 추락한 광복회를 보며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것이 부끄러워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돼 버렸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서도 ‘광복회는 국고를 축내는 집단’이라며 모욕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중략) 대통령 등 누구와도 만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종찬 선생님이 광복회 문제를 방관하신다면 이것은 광복회 최고 원로로서 죄를 짓는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편지를 본 이 회장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광복회는 침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이 회장은 본격적인 선거전에 뛰어들었고, 6월 22일 제23대 광복회장에 취임했다.
이 회장은 ‘광복회 정체성’, ‘국민의 신뢰’ 회복을 우선 과제로 제시하며, 수익사업에 일절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전임 회장 시절부터 무리한 수익사업으로 광복회 부채가 급증하고 회원들 사이에 반목이 커졌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광복회는 현재 누적 부채만 20여 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부채를 탕감할 때까지 자신을 포함한 광복회 실·국장 모두 무보수 명예직으로 근무하겠다는 선언도 했다. 이외에도 이 회장은 당선 전후로 회원들에게 ▷실추된 위상 회복 ▷복지 향상 ▷지회장·대의원 활동비 현실화 ▷독립정신과 애국심 함양을 약속했다.
월간중앙이 복수의 광복회원을 취재한 결과, ‘복지 향상’을 바라는 목소리가 특히 높았다. 앞서 이 회장은 복지 향상 방안 중 하나로 ‘보훈급여금’을 최초 수권자로부터 3대(증손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회원들이 염원한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광복회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3대 수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부장 출신의 광복회원 A씨는 “독립유공자 보훈대상자 전체를 ‘10’이라고 하면, 그중 극소수인 ‘1’만이 2대(손자) 보상을 받았으며, 나머지 ‘9’는 뒤 늦은 서훈으로 1대 보상으로 종결된다”며 “이를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목소리가 오랜 기간 광복 사회에 있었다”고 했다. 3대 수권이 쉬운 일은 아니다. 현행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 개정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회장 선거가 있을 때마다 후보들은 앞 다퉈 개정을 최우선 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국회는 ‘타 국가유공자와의 형평성’을 제기하며 발의에 난색을 보였고, 개정안이 발의돼도 계류하다 폐기되기를 반복했다. 이 때문에 회원들은 이종찬 회장이 임기 내에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지 관심이 높다. A씨는 “정치·행정 두루 폭넓은 경험을 가진 이 회장께서 숙원사업을 성사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회원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며 “이 회장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할 생각이 있는지, 혹시 다른 전략이 있는지 등이 궁금하다”고 했다.
“잡음 많은 지부장 인선도 직선제로” 주장
수도권에 사는 광복회원 B씨는 “지부장 중 일부는 90대 이상인 분도 계시다”며 “우리를 위해 고령임에도 나서주시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지역 선양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보다 열심히 지역을 누빌 수 있는 젊은 지부장이 필요하다. 직선제로 바꿔 지역이 원하는 일꾼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회원은 재향군인회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기수 문화로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성향이 강한 재향군인회는 그간 예비역 장성들이 회장직을 독차지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비(非) 장성 예비역 대위이자 기업인 출신이 회장에 선출된 것이다. A씨는 “유족들의 모임이 된 작금의 광복회 상황에서 받들어 모셔야 하는 임원·지부장이 아닌 회원처럼 행동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분들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지부장 직선제와 관련해 “정관을 바꿔야 하므로 다각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종찬호(號)는 회원의 자긍심을 높이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대한민국 원년으로 하는 디지털 계기판을 설치한다. 이 회장은 6월 26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백범 김구선생 제74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대한민국의 원년은 1919년”이라며 “임시정부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려는 세력은 친북 혹은 극우 집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짜뉴스 퇴치에도 힘쓴다. 광복회 주도로 역사 왜곡 대책팀을 구성해 역사바로잡기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혹여나 광복회에 위해(危害)나 재산상의 손해를 입히는 사람에게는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일치된 마음’이 정상화 전제 조건
하지만 최근 광복회 안팎에서 때아닌 ‘친일반민족행위자’ 문제가 불거져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앞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 말이 도화선이 됐다. 당시 박 장관은 “(한국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 등을 승리로 이끈) 고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것에 직을 걸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이에 광복회원 일부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형진 ㈔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장은 7월 11일 보훈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3·1운동의 정신과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발언”이라며 “독립지사들을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는 일제의 시각과 다를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복회원 다수가 활동하는 단체 메신저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며 내부에서 확전되는 분위기다. 광복회 대의원 출신 C씨는 “친일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자가 (광복회) 지부장으로 임명되고, 극소수가 이에 동조해 우리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해당 지부장의 파면을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 광복회 내부에서는 ‘신종 밀정’을 색출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연 광복회가 일련의 내홍을 딛고 존경받는 원로집단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서로 간에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내부 분란이 다시금 광복회를 덮칠 수 있다. 이 회장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치된 마음’을 광복회 정상화의 전제 조건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과연 이종찬호가 잠재된 불안 요소를 해소하고 광복회 정상화를 완성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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