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민주주의에선 국민 모두가 영웅 돼야 한다"
[장신기 기자]
18일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김대중의 역사적 연설 최초 공개 시리즈'의 두 번째로 공개한 1985년 1월 19일 미국 LA 귀국환송행사 김대중의 연설 동영상 자료의 의미와 가치를 살펴본다. 민주주의 이론가, 민주화운동 전략가로서의 김대중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 지난 기사 <"다양성 모르는 이들이 정치하면 망한다"고 한 김대중> 에서 이어집니다.
▲ 김종필과의 연대를 말하다... "독재 반성하는 자와는 타협할 수 있다" [1985년 1월 연설 영상]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
김대중은 대타협의 연합정치를 강조했는데 미국 LA 귀국환송행사 연설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연설에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김종필과의 연합이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부분은 의미가 매우 크다.
"김종필씨 하고 손잡아가지고 민주주의를 회복해서 국민을 이 고난으로부터 푼다면, 그다음에 자유 선거에 있을 때 김종필씨 하고 선거를 통해서 대가리 터지게 싸우는 건 별도고, 아, 지금은 민주주의 같이해서 가야 할 때란 말이야.
나는 독재 정치를 미워합니다. 독재 정치하고는 타협하지 않고, 독재하고 있는 사람하고 타협하지 않지만, 독재를 그만두겠다는 사람, 독재하는 것을 반성하는 사람하고는 손잡고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김대중은 민주화투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 사이의 최대연합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화 운동 시기 김대중의 최대연합노선의 대상은 '야당 + 재야사회운동세력'뿐만 아니라 '보수 진영 내 비주류 세력'까지 포함한 것이다.
국민의 참여와 실천 그리고 자주적 민주화
▲ 김대중 "민주주의엔 영웅이 있어선 안 된다" [1985년 1월 연설 영상]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1985년 1월 19일 김대중 대통령의 LA 귀국 환송행사 연설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이 영상엔 김대중 대통령이 꼽은 민주주의 3요소 : 언론 자유 , 선거의 자유, 지방자치에 대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
김대중이 대타협을 통한 연합정치를 강조한 것은 그가 국민민주혁명을 통한 민주화이행을 목표로 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김대중은 민주화는 국민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자주적 민주화론을 강조했다. 김대중은 지도자의 역량, 국제적 관계 등도 중요하지만 민주화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의 참여와 실천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민주주의에는 영웅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이가 또는 고난 받아서 감옥살이를 한 젊은 사람들에 대해서, 민주주의에 대해서 위대한 공헌을 한 사람을 영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는 영웅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는 백성 민자, 임금 주자. 백성이 주인입니다. 백성이 전부 참가해야 해요. 민주주의는 거저 없습니다. 민주주의에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이와 같은 판단 속에서 김대중은 민주화 이행 전략으로서 국민민주혁명을 내세웠다. 국민민주혁명은 최대다수연합, 대타협의 연합정치와 궤를 같이 한다. 김대중은 이 노선이 정치적 세력화와 대중동원 측면에서 유리하고 민주주의 원리의 사회적 확산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김대중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민주주의 승리의 역사였다.
"우리가 가는 길은 고난의 길이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희망의 길이고, 승리의 길이고, 정의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하는 80년대에는 반드시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입니다."
김대중이 정치지도자의 '헌신'을 강조한 이유
▲ 김대중이 힘주어 한 말 "우리가 가는 길은 고난의 길이지만..." [1985년 1월 연설 영상]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제공 |
김대중은 자주적 민주화를 위해서 민주화 운동을 이끄는 정치지도자의 헌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헌신에는 자기 목숨을 내놓는 자기희생적 결단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실제 김대중은 그와 같은 비장한 각오로 민주화투쟁을 이끌었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번의 죽을 고비, 투옥, 연금, 망명, 중상모략, 가족과 측근 인사들을 향한 연좌제적 성격의 피해 등 온갖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김대중은 1차 망명 기간 중인 1973년 각종 회유와 협박을 통해 자진귀국을 종용하는 유신 정권의 요구를 거절하자 납치를 당해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리고 1980년에도 전두환 정권의 회유를 거부하자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1985년 2.12총선을 앞두고 귀국하기로 결정하자 '제2의 아키노'(귀국 도중 암살당한 필리핀 상원의원)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럼에도 김대중이 이와 같은 결단을 한 이유는 국민들이 민주화투쟁에 나서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가서 우리 국민에게 지금 전두환 정권이 옳지 않은 걸 알면서도, 여러 가지 주저해서 일어서지 않는 많은 국민이, 우리가 다 같이 일어나야 한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우리 자식들에게 이렇게 서럽고 한 많은 세상을 다시 안 넘겨주려면, 우리가 일어나서 우리도 남과 같이 자유와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그리해서 민주 회복을 이룩하기 위해서 그러한 거대한 희망을 안고 나는 돌아갑니다.
▲ 1983년 김대중-이희호 부부가 미국 망명 당시 베니그노 아키노-코라손 아키노 부부를 만났을 때의 모습. |
ⓒ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
김대중은 정치지도자의 자기희생적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김대중은 민주화투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지만 지도자의 역량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한국문제의 국제적 성격을 감안해 한국 민주화를 위한 국제연대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모두 결합될 때 한국의 자주적 민주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 전체 영상 자료는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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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 연구자입니다. <김대중과 중국>(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3)의 공저자이며 김대중 재평가를 위한 김대중연구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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