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ㆍ러시아 대표단 코로나 이후 첫 방북…인적 교류 신호탄 되나

박현주 2023. 7. 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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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전승절'로 부르는 오는 27일 6·25 전쟁 정전협정체결일 70주년을 맞아 중국과 러시아의 대표단이 방북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국경 개방과 인적 교류를 본격적으로 재개할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아직 코로나 19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해서라도 중국, 러시아와 결속을 과시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체결일·27일)를 맞아 성대히 진행될 기념행사를 위해 경축행사 참가자들이 전날인 24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대표단 방북" 대내외 알려


조선중앙통신은 24일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정부 초청으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인 리훙중(李鴻忠)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당 및 정부 대표단이 전승절 70주년 경축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25일엔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도 소식을 알렸다.

같은 날 조선중앙통신은 또 "국방성의 초청에 의해 국방상 세르게이 쇼이구를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 군사 대표단이 조국해방전쟁 승리 70돌에 즈음해 우리 나라를 축하 방문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이어 "러시아 군사 대표단의 방문은 전통적인 조ㆍ러 친선관계를 시대적 요구에 맞게 승화발전시키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대표단과 달리 러시아 대표단의 경우 전승절 경축행사에 참가한다는 언급은 없었다. 다만 북한이 앞서 지난 1월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러시아와 한 참호에 있을 것"이라고 밝힌 뒤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러시아를 공개 지지해온 만큼, 러시아 대표단의 방북 기간에도 양국 결속을 최대한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전승절은 북한이 성대하게 기념하는 정주년(5년,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이라 열병식 등 대규모 경축 행사가 예상된다. 앞서 민간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이 지난 5월부터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하는 동향이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 6월 북한의 열병식 훈련장인 평양 미림비행장에서 차량과 병력이 포착된 모습. 공터에 차량이 빼곡히 들어선 모습(화살표)이 보이는 가운데 병력대열 약 15개가 훈련 중인 장면(사각형)도 확인된다. 플래닛 랩스.


중ㆍ러 대표단의 방북이 예정대로 이뤄지면 2020년 초 북한이 코로나19의 여파로 국경을 봉쇄한 후 외부 인사가 단체로 방북하는 첫 사례가 된다. 북ㆍ중 간에는 지난해부터 화물 열차 운행이 재개됐지만, 인적 교류는 철저히 제한됐다. 지난 3월 말 왕야쥔(王亚军) 주북중국대사가 내정된지 약 2년만에 평양에 부임한 게 유일한 인적 교류 사례다. 북ㆍ러 간에도 앞서 무기 거래 정황이 미국에 의해 포착됐지만 인적 교류는 확인되지 않았다.


우방과 결속 과시 '절박'


실제 북한 내 코로나19 상황은 여전히 종식과는 거리가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코로나19가 80여일만에 종식됐다"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방역이 국가사업의 제1순위"라며 고삐를 죄어 왔다. 지난 1월에는 재확산을 경계해 평양 봉쇄령을 내리기도 했다. 지난 12일 전통적 우방국인 인도네시아에서 열렸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끝내 최선희 외무상을 보내지 못한 것도 북한이 여전히 대외 교류를 경계한다는 방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중ㆍ러 대표단 초청을 공표한 건 그만큼 우방국과 결속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게 절박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의 전략핵잠수함(SSBN)이 한반도에 전개되고 한ㆍ미ㆍ일 협력이 강화하는 상황이 북한에게는 상당한 부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중ㆍ러과 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데 골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고체연료 기반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8형'을 시험발사 현장을 현지지도했다고 13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중국의 북핵 용인 노렸나


이와 함께 북한은 중국 대표단이 참관하는 가운데 대규모 열병식을 열어 중국이 사실상 북한의 핵 개발을 용인한다는 듯 한 이미지를 부각할 전망이다. 또한 북한과 중국이 6·25 전쟁을 각각 조국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이라고 주장하는 만큼 전승절을 계기로 미국에 맞선 양국 간 오랜 '혈맹'을 부각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북한은 그간 공언했던 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했고, 비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발사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그다지 새롭지 않은 상황"이라며 "전승절에 보여줄 업적이 없기 때문에 중국 대표단이라도 열병식 주석단에 서는 그림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리잔수(栗戰書) 당시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과 정권수립 70주년 열병식을 관람하는 모습. 노동신문. 연합뉴스.


북한은 과거 열병식 때도 중국을 비롯한 우방국 대표단을 초청했다. 2018년 정권수립 70주년(9·9절) 열병식 때 리잔수(栗戰書) 당시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이 대표단장으로 참석해 주석단에 자리했다. 이번에는 전인대 부위원장이 단장이라 급은 다소 낮아졌다.


셔틀 답방 오가나


북한이 이번 전승절을 시작으로 오는 9월 9·9절 75주년에도 중국 대표단을 초청하고, 같은 달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선수단 뿐 아니라 대표단까지 파견하며 중국과 국경을 본격 개방하고 인적 교류를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여전히 최대 변수는 코로나19 관련 상황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코로나19 전에는 2018년 9·9절에 중국 당 서열 3위였던 리잔수 위원장이 방북하고 이듬해인 2019년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방북했다는 걸 고려할 때 이번 중국 대표단 방북 이후 단계적으로 교류 인사의 급을 높여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국경 개방은) 어느 정도는 시간 문제인 것 같지만 그 시기를 현 단계에서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이 중ㆍ러 외의 대외 접촉면을 넓혀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엔군 사령부는 24일 최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월북한 주한미군의 신병 문제를 두고 "북한과 대화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또 국무부는 같은 날 "북한이 (유엔사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걸 인정했지만 실질적 응답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미국과 소통 여부를 며칠째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기존과는 달라진 모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이 소통하는 직통 전화기(일명 핑크폰). 유엔사. 연합뉴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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