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성장시키는 힘, 신뢰와 지지
[김선영 기자]
어느덧 사십 대 중반의 중년 교사가 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보낸 이십 년의 시간을 헤아려보니 그 '어느 사이' 동안 정말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었고, 성장과 퇴보를 반복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최대치의 목표를 잡아 최선을 다했던 열정적 시기도 있었고, 지나친 열정이 조급함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한 뒤에는 기다림의 교육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다. 내 아이를 낳아 키우며 끊임없는 좌절을 겪은 뒤에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 했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하여,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한다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교사의 자리에서 이십 년 가까이 겪어온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교육공동체 구성원인 학생과 학부모, 동료 교사나 관리자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교사다우며, 나다운 방법을 찾는 길은 끝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앞에 1학년 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학교 측의 요청을 받아 추모객들의 교내 입장을 가로막고 있다. |
ⓒ 유성호 |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알 수는 없었어도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그녀가 어떤 심신 상태를 겪었을지는 분명하게 알 것 같았다. 극도의 불안과 무력감에 짓눌려 자신의 얘기를 꺼내지도 못한 채 외롭게 보냈을 시간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릿했다.
반년 전 학부모의 뜻과 다른 제안을 했다가 '선생님이 부모보다 우리 애를 더 잘 아느냐? 두 번 말하고 싶지 않으니 그런 줄 알고 내 말대로 하라!' 했던 학부모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무례함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 진심이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무력감에 한동안 시달리면서 마음을 다잡기까지 꽤 시간이 필요했다.
요즘 시대에 그 정도면 점잖은 거 아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고작 그 정도의 반응에도 나는 심경의 변화를 대단히 겪어야 했다. 진심이 통하지 않고,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 학부모에게는 어떠한 제안이나 당부도 삼가고, 최소한의 교육 활동으로 아무런 빌미 제공도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어기제는 이렇게 작동하는 거구나, 신뢰와 지지를 느끼지 못했을 때에는 교사의 태도가 이렇게 달라지는 거구나, 요즘 시대의 교사는 이런 방식으로 적응하게 되는 거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나는 예전 학교 학부모님께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급작스럽게 뇌전증이 생겨 지적장애인이 된 아이의 엄마였는데, 학교를 옮기고 2년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선생님이 떠나시고 죄송한 마음, 감사한 마음이 뒤늦게 밀려와 꼭 한번은 연락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 땐 제게 닥친 상황이 감당이 안 돼서 우리 아이 생각밖에는 못 했던 것 같아요"라며 눈물 어린 목소리로 마음을 전하셨다. 떨리는 음성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나오려는 눈물을 꾹 눌러 참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 어머니의 말과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삭히고 삭혔던 시간들이 스쳐갔다. '그때 이해하고 참아내길 잘했어. 역시 진심은 통하는 거야'하는 확신이 밀려와 바닥난 자긍심이 충분히 채워지는 것 같았다.
두 사건은 학부모의 태도가 교사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깨닫게 한 경험이었다. 자신을 신뢰하고 지지하는 마음이 느껴질 때, 교사는 아이들에게 정성과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학교는 누구도 아이들에게 정성과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지 못한다. '더도 덜도 하지 말고 학부모의 민원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다'라고 누구나 조언한다. 관리자뿐만 아니라 선배 교사조차도 그런 조언을 건네며, 법률 전문가들은 연수를 통해 학생들의 방해 행동이나 도전 행동에 직면했을 때는 사건 일지 작성이 최우선이라고 누누이 말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한 마디로 '민원에 대비하는 교육'이다. S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은 서로를 경계하고 민원 대비에 총력을 기울여야하는 지금의 공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교사의 열정과 자긍심을 끊임없이 고갈시키는 학교 현장에서 진정한 관심과 사랑, 삶을 바꾸는 교육은 기대할 수 없다.
지난 토요일(22일) 보신각에 모여 죽음을 선택한 S 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하고 교권 향상을 요구하는 교사들의 얘기를 들었다. 학부모의 비상식적인 요구와 불만, 무례함을 넘어선 폭력적 언행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얘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본질은 몰상식한 학부모를 향한 성토가 아닌, 교사의 교권 보장을 통해 교육 현장을 되살리고자 하는 간절함이다. 제발 교사를 믿고 지지해달라는 호소를 들으며, 학부모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했던 지난 시간이 떠올라 더욱 안타까웠다.
교사의 가르칠 권리와 학생들의 배울 권리가 오롯이 보장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정비되고 사회 인식이 정립되어야 한다. 학생 인권과 아동 권리에 대한 선언은 교권과 대치되는 것이 아니다. 교권이 상실된 교실은 질서가 무너지기 마련이므로 교권 보장이 곧 진정한 학습권 보장의 전제임은 당연하다. 학부모의 신뢰와 지지 속에서 교사는 자기 합리화를 거두고 진정한 반성과 성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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