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김치 프리미엄' 악용 13조 국외유출… 檢, 49명 기소
검찰이 '김치 프리미엄' 현상을 악용한 가상자산 투기세력과 결탁해 13조원 상당의 가상자산 매각대금을 허위 무역대금 등으로 속여 해외로 유출한 일당을 적발해 재판에 넘겼다.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란 최근 2년 동안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투자 열풍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국내 시세가 해외 시세보다 현저히 높게 형성되는 현상을 말한다.
25일 대검찰청은 지난해 8월부터 관세청, 금융감독원과 함께 '김치 프리미엄' 현상을 악용한 가상자산 투기세력들에 대한 집중 단속을 실시한 결과 가상자산 투기세력들과 함께 매매차익 취득 목적으로, 해외 가상자산을 국내 페이퍼컴퍼니로 전송해 국내에서 매각한 후, 매각대금 13조원 상당을 허위 무역대금 등으로 가장해 해외로 송금한 불법 외화유출 사범 총 49명을 기소하고, 해외로 도주한 5명을 기소중지(지명수배)했다고 밝혔다. 기소된 49명 중 29명은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다. 이밖에 이들과 결탁해 해외 송금을 도와준 금융회사 관계자 7명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 수사는 서울중앙지검과 대구지검, 인천지검 등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서울중앙지검은 약 4.3조원 상당을 불법 외환유출한 20명을 재판에 넘겼다. 대구지검은 약 8.7조원을 해외로 빼돌린 16명을 기소했다. 인천지검은 약 132억원의 불법 외환유출 사건을 수사해 모두 6명을 재판에 넘겼다. 피고인들에게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업무방해, 특정금융정보법 위반 등 혐의가 적용됐다. 은행 브로커들에게는 특정경제범죄법상 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에 따르면 약 2년 동안 비트코인 기준 '김치 프리미엄'의 평균치는 약 3~5%(최고점 기준 20% 상회) 상당이었던 만큼 이번에 적발된 가상자산 투기세력들은 전체 송금액 13조원 기준으로 최소 3900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취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본건 피고인들은 국내에서 가상자산 매각, 허위 무역대금의 해외송금 등을 담당한 대가로 그중 281억원 상당의 이익을 취득했다"라며 "이와 함께, 불법 외화유출을 방지·감독해야 할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오히려 불법 외화유출 사범들의 범행을 묵인하거나 적극적으로 도와준 대가로 현금, 고가 명품, 골프 접대 등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 금융회사 직원 7명을 기소(2명 구속)했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 금융회사 임직원들은 제출된 증빙자료 등이 허위인 사실을 잘 알면서도 현금 등 대가를 받고, 거액의 불법 외화유출 범행을 지속시킴으로써 이 사건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A 은행 전 지점장 푸모씨(52)는 2022년 5~6월 허위서류를 이용해 163억원 상당의 외화를 송금해 미신고 자본거래를 방조한 혐의(외국환거래법위반방조)와 외화유출사범들과 공모해 2021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허위서류를 이용, 4023억여원 상당의 외화를 송금해 무등록 외국환업무를 함으로써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또 이 같은 외환송금 업무와 관련해 2500만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법상 수재)와 지난해 5월 검찰의 계좌추적 영장이 접수되자 이를 누설한 혐의도 있다. B 증권사 후모 팀장(42)은 2019년 8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허위서류를 이용해 5조7845억원 상당의 외화를 송금하고(업무방해), 이와 관련해 시가 약 3000만원 상당의 명품 시계와 시가 약 13000만원 상당의 명품 가방 등 합계 5800여만원의 이익을 수수한 혐의(특정경제범죄법상 수재)를 받는다.
검찰은 외국환거래 전반의 관리·감독상의 주의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A 시중은행과 B 선물사 등 2개 금융회사 법인에 대해 양벌규정을 적용해 함께 재판에 넘겼다. A 은행 지점장은 4186억원 상당의 외화를 불법 유출했는데, A 은행은 해당 지점의 외환거래 실적이 2021상반기 1177만 달러에서 같은 해 하반기 4억900만 달러로 이례적으로 폭증했음에도 이를 점검하는 등 관리·감독상 주의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B 선물사 직원들은 파생상품 거래과정에서 7조원 상당의 외화를 불법 송금했는데, B 선물사의 관리·감독상 주의의무 해태로 B 선물사 직원들이 외국환거래법 관련 규정을 숙지하지 못해 불법 외화유출 사범들이 파생상품 소요자금인 것처럼 7조원 상당의 가상자산 대금을 외화로 송금받거나 송금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먼저 해외 가상자산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구입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 전송한 뒤 이를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매각했다. 이후 가상자산 매각대금을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송금한 뒤 허위 무역대금 등의 명목으로 해외업체 계좌로 외화 송금해 김치 프리미엄 수익을 공제한 뒤 다시 거둬들인 돈으로 가상자산을 매수하는 수법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김치 프리미엄을 취득했다.
특히 이들은 김치 프리미엄이 높게 발생하는 시점을 골라 이 같은 행위를 반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령 100억원의 자금이 100번 순환하게 되면 해외송금 규모는 1조원이 되는 구조다. 본건 범행으로 국내에 유입된 것은 가상자산인 반면, 외화 13조원이 고스란히 해외로 유출됐고, 유출된 외화는 모두 무역대금 명목으로 가장된 것인바, 국내 실물경제와는 전혀 무관하게 투기세력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피고인들은 국내에서 가상자산 매각, 허위 무역대금의 해외송금 등을 담당한 대가로 그중 281억원 상당의 이익을 취득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검찰이 범죄수익 몰수·추징보전 절차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앞으로 가상자산 투기거래로 인해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고, 선량한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불법 외화유출 범행에 엄정 대응하는 한편, 유관기관과 협의해 금융회사들의 외국환업무 수행 관리·감독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초기부터 금감원, 관세청 등과 자료, 정보를 공유하는 등 합동 수사에 준하는 협업으로 신속하게 사안의 전모를 밝힐 수 있었다"며 "이 사건 수사를 통해 사전송금방식 통관수입대금 지급 관련 외환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점이 드러나 이를 개선하기 위한 행정관서와 외국환은행들의 논의가 시작되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유관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해 외환 등 국가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전문 분야의 구조적 비리에 대해서도 엄단하고, 범죄수익은 끝까지 추적해 박탈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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