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커버스토리 | 경기교육이 보여주는 공교육의 미래

2023. 7. 2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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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분필 없앤 교실, ‘조는 아이’ 사라졌다

■ 디지털 기기 활용한 개인 맞춤형 시범교육, 경기도 전역으로 확대

■ 주입식 교육에서 인성·창의력 갖춘 인재 키우는 교실 전환에 속도

7월 12일 경기도교육청 디지털선도학교인 김포 솔터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태블릿PC를 이용해 영어수업을 하고 있다. / 사진:유길용

장면 하나. 경기도 김포시 솔터초등학교 6학년 4반 영어수업 현장. 네 명씩 마주 보고 앉아 있던 학생들이 손에 든 태블릿PC 화면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휘젓는다. 학생들은 디지털 교과서와 부교재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각자 영어 공부에 열중하는 중이다. 태블릿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따라 말하자 원어민의 억양과 학생의 억양을 파형곡선으로 비교해 보여준다. 아이들은 스스로 원어민 발음의 파형과 가까워지도록 여러 번 듣고 말하기를 되풀이한다. 선생님은 학생들 사이를 오가며 기기 조작에 서툰 아이를 도울 뿐이다. 학습 진도가 조금 늦더라도 재촉하지 않는다. ‘스스로 말하기’ 과제를 주고 정해진 5분의 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모든 아이들이 자기 학습을 끝냈다. 칠판 옆 모니터에는 아직도 1분이나 남아 있었다.

디지털 AI(인공지능) 교육이 진행된 교실에는 눈에 띄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 우선 학생들의 책상에 교과서와 필기도구가 없다. 선생님의 교탁에는 분필이 없다. 그리고 으레 있기 마련인 한눈파는 아이가 없었다. 수업에 참여했던 한 남학생은 “예전엔 선생님 말씀을 노트에 받아 적느라 시간이 부족했는데 이젠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수업 준비물은 태블릿 PC 하나로 단출하다. 솔터초등학교가 디지털 교육 선도학교로 지정되면서 4, 6학년 전원에게 태블릿PC를 한 대씩 지급했다. 5학년은 두 명당 한 대씩이다. 학생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수업이 끝나면 교실 한쪽에 있는 소형 냉장고 크기 태블릿 PC 보관함에 PC를 넣고 다음 수업을 위해 충전한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문장으로 만화까지 뚝딱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지난해 5월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교육정책에 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 교육감은 디지털교육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 학교에선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다양한 과목에서 태블릿 PC를 이용해 수업을 진행한다. 태블릿PC를 이용한 디지털 수업에선 아이들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프로그램도 있다. 가령 교사가 ‘감기’란 주제로 짧은 영어 대화를 만들도록 하자 아이들은 자신과 엄마, 또는 친구나 의사와의 짧은 영어 대화를 완성한다. 이렇게 만든 대화를 만화(카툰)로도 만든다. 학생이 자기 얼굴을 촬영하면 만화 캐릭터가 생성되는데, 여기에 ‘감기에 걸렸어요’라는 문장을 입력하면 AI가 문장을 인식해 얼굴을 찡그린 캐릭터로 자동 변환한다. 학생들은 만화를 만드는 도구 앱에서 자기만의 단편 카툰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이 모든 과정이 불과 한 시간 수업 중에 진행된다.

솔터초등학교가 이런 디지털교육을 시작한 건 올해 봄부터다. 불과 석 달밖에 안 됐지만,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한다. 이 학교의 디지털교육을 전담하는 이서영 교사의 말이다.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영어수업 시간만 되면 양호실에 가거나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수업을 빠지던 아이가 있었어요. 그런데 디지털 교육을 시작한 뒤부터 수업을 빠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교사가 주도하는 기존의 수업 방식으로는 학생들 학업 수준을 일일이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는 낙오되거나 학습 부진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초등학교 때 이런 경험이 굳어지면 상급학교에 진학해도 차이를 좁히기 어렵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보편성 교육’의 맹점이다. 평균적 수준을 벗어나는 아이들은 각자의 수준에 맞춰 학원과 과외 등 사교육의 문을 두드린다.

디지털 교육은 이런 맹점을 극복했다. 우선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아이들의 수업 참여도가 높아졌다. 솔터초등학교에서 활용하는 디지털 교재는 마치 게임처럼 일정한 학습 목표를 달성했을 때 캐릭터를 키워나가는 형식이어서 재미와 동기를 부여한다. 수업이 끝날 때쯤 이서영 교사는 수업에 열심히 참여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아이들에게 ‘참치캔 3000개’를 쐈다. 아이들의 태블릿 속 캐릭터를 더 키우고 꾸미는 데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학생들은 마치 진짜 간식이라도 받은 것처럼 환호성을 내며 좋아했다. 한 여학생은 “집에서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만지면 부모님이 싫어하시는데 학교에선 태블릿으로 공부할 수 있어서 즐겁다”고 말했다.

에듀테크를 활용한 디지털 교육은 임태희 교육감이 취임한 뒤 경기도 전역으로 확산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수업이 중단됐을 때에도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수업이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맞는 교수 방법이 부족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올해 1학기부터 디지털 창의역량교육 실천학교 229곳을 지정해 교과와 연계한 AI 융합교육, 디지털 활용 수업을 해오고 있다. 정보·과학·수학·인문·사회·예술·체육 등 다양한 교과에서 활용한다. 62개 학교는 디지털 선도학교로 지정했다. 솔터초등학교도 그중 하나다. 선도학교는 AI 기반 학생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진행한다. 학생 개인에게 디지털 기기를 지급해 학습을 돕고, 교사는 AI 빅데이터를 이용해 학생들의 개별 학습 상황을 분석하고 각자에게 맞는 처방을 내린다.


에듀테크 활용해 학생 개인별 맞춤 교육


각 학교와 지역마다 디지털 교육에 열정을 가진 교사들이 스스로 연구모임을 만들어 새로운 교수·학습 방법을 개발하고 공유한다. 교육청에서도 현장 교사들에게 자율권을 주고 이를 뒷받침한다. 조상국 솔터초등학교 교장은 “교육청이 보낸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담당 교사들의 뜻에 거의 전적으로 맡긴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이 준비하는 디지털 교육 연수에 참여를 희망하는 교사가 1만2000명이 넘을 정도로 관심이 많다.

경기도의 디지털 교육 현장의 모습은 임 교육감이 경기교육 목표로 삼은 ‘자율’과 맥락이 닿는다. 임 교육감은 “통제하고 강요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기게 돼 있다”며 “교육청은 군림하고 통제하는 기관이 아니라 현장의 어려운 점을 해결해주고 돕는 ‘서비스’에 충실하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임 교육감은 이재정 전 교육감이 모든 학교에 일률적으로 강제했던 ‘9시 등교제’를 전격 폐지했다. 각 학교와 지역 사정에 맞게 학교장 재량에 맡기기로 했다. 그 결과 절반 가까운 학교가 일찍 등교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위한 각종 체육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9시 등교제를 폐지하면 ‘0교시’가 부활할 거라던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취임 1년을 맞아 임 교육감이 내놓은 ‘설계도’에서 디지털 교육과 함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새로운 형태의 교육 플랫폼인 ‘공유학교’, 즉 지역교육협력 플랫폼 사업이다. 임 교육감은 취임 이후 학생의 기본 인성교육을 강조해왔다. 학교 교육과정에선 인성교육과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공유학교는 교육과정을 지원하는 보조엔진 역할을 한다.

공유학교는 지역사회와 협력해 학생 개인의 특성에 맞는 맞춤교육과 여러 학습 기회를 보장하는 학교 밖 교육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예체능을 비롯한 다방면에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가진 시민들이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이다.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휴먼북 라이브러리’를 통해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펼치는 사업과 비슷한데, 이를 학생을 대상으로 공교육의 보완재로 활용한다는 게 다르다.


시민 교사 역량 모은 ‘공유학교’로 공교육 보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6월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해 경기도교육감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의 정책 설계에 참여했다.
공유학교는 에듀테크를 활용한 디지털 교육과도 연결된다. 오는 9월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하는 AI 기반 교수·학습 플랫폼을 이용해 교사는 학생의 학습 수준을 진단해 학생에게 필요한 공유학교 프로그램을 연계해 준다. 현재 경인여대 학생들이 학생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고, 휴먼북 라이브러리를 운영하는 남양주시도 경기교육청과 협력해 공유학교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기존에 시행했던 ‘꿈의학교’, ‘꿈의대학’은 지역교육협력 플랫폼 안으로 품었다. 전임 교육감의 정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없애고 뒤집는 게 아니라 장점은 강화하고 단점은 보완하는 식으로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코로나19 충격을 벗어나고 있는 학교 현장에서 ‘인성교육’을 강화하도록 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기초학력 부진과 체력 저하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학교에 가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져 대인관계에 서툰 학생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인성교육을 중요한 교육 과제로 내세운 건 학교 교육이 지식 주입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성장기 유·소년 인성 함양을 등한시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더는 인성교육을 가정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임 교육감은 “그동안 학생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기초 역량과 기본 인성을 키우는 걸 경기교육의 책무로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부모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늘렸다. 7월부터 학부모 대상 교육 특강 시리즈인 ‘학부모, 온 마음으로 교육을 품다’(온품 특강)를 시작했다. 7월에 열리는 세 차례 특강에는 조선미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동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이 참여해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는 법을 들려준다. 온품 특강은 다양한 주제로 지속할 예정이다. 이 밖에 각 지역에서 ‘가족 심리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아빠와 함께하는 체육활동 등 가족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늘려가고 있다.

앞서 설명한 디지털교육이나 공유학교, 인성교육에 비해 교육의 틀을 바꾸는 좀 더 과감한 개혁적 시도도 있다. ‘IB(국제바칼로레아) 교육’이 대표적이다. 경기도는 IB 교육에서 대구(2019년)와 제주(2020년)에 비해 후발주자다. 하지만 임 교육감이 이를 핵심 공약으로 채택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교육계의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IB 교육 확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탄력이 붙었다. 이 장관은 지난해 교육감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임 교육감의 정책 설계를 이끌었다. 두 사람은 이명박 정부에서 각각 대통령실장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 호흡을 맞췄다.


창의력 중심 IB 교육으로 교육체제 변화 시도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3월 21일 광명시 광덕초등학교의 늘봄학교에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경기도교육청
IB 교육은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 교육재단인 국제바칼로레아기구(IBO)가 1968년에 개발한 교육 과정이다. 지난해까지 세계 159개국에서 5725개 학교가 이 과정을 도입했다. 국내에선 1980년 서울외국인학교를 시작으로 총 32개 학교(외국인·국제학교 12곳 포함)가 IB 학교 인증을 받았다. 경기도에선 2010년 경기외국어고가 IB를 도입했고, 2021년 대구(14개교)와 제주(4개교)로 인증 학교가 확산됐다.

최근 벌어진 킬러 문항 논란과 공교육 회복 이슈는 IB 교육 확산에 긍정적 토대를 마련했다. 단편적 지식 암기와 정답 찾기 일색이었던 대학 입시 중심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IB 교육은 그 대안으로 떠오르는 교육 모델 중 하나다. IB 교육은 지식, 과제 논문, 창의·활동·봉사의 3가지 필수 과제를 준다. 논문을 쓰고 인터뷰 형태의 구술 평가도 받는다. 예술, 스포츠, 봉사 활동도 2년간 최소 150시간 이상 이수해야 한다. 임 교육감은 이를 학생의 창의적·비판적 사고력과 자기주도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모델로 보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2월 경기형 IB 교육의 초석이 될 관심학교 25곳을 선정했다. 이들 학교는 IB 철학과 교육목표를 공유하고 교수·학습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관심학교-후보학교-인증학교로 단계별로 확대해 프로그램 기반을 마련해 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만 IB 교육의 효과에 대해선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2021년 IB 인증을 받은 국내 고교 재학생들이 현재 고교 3학년이어서 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내년에나 가시적인 효과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IB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 사이에 발생할 교육 불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또 학교마다 연간 1000만원의 연회비를 IBO에 내야 하는 것도 상당한 부담 요인이다. 임 교육감은 “경기도 전체 초·중·고교를 모두 IB 교육으로 바꾼다는 게 아니다. 그동안 지켜왔던 교육의 철학과 방향은 유지하되, 소홀했던 부분을 채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대학 입시제도와 충돌하는 지점도 해소해야 할 문제다. 에세이와 구술 중심인 IB 평가는 매년 11월에 3주간 치러진다. 수능 준비를 따로 하지 않는 IB 과정 이수 학생들이 현행 제도에서 대학에 갈 방법은 수시 학생부종합전형뿐이다. 경기도교육청은 5월 미래교육 IB 디플로마 프로그램 포럼을 진행한 데 이어 대학입학사정관 대상 정책 설명회, 홍보 세미나 등 IB 교육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교육부 등 여러 기관과 교류하며 대입 전형 확대를 꾀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중등 교사는 “임 교육감과 교육부장관은 교육관이나 철학에서 겹치거나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 IB 교육의 정책적 확산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치 경륜으로 난관 부딪힌 현안 해결사 역할


임 교육감 취임 후 1년을 돌아보면 단숨에 이목을 끌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감 선거 당시 ‘전교조 아웃’을 내세워 전국 보수 성향 후보들과 의기투합했다. 그래서 임 교육감 당선 후 기존 정책을 갈아엎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질 거란 예상이 많았다. 진보 성향 교육 단체와의 갈등이 깊어질 거란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취임 후 임 교육감의 행보는 예상과 달랐다. 이는 임 교육감 스스로 추구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취임하면서 “임태희란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앞선 교육감들이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 상징적인 정책을 내놓고 전국적 이슈화했던 것과 분명 다른 모습이다. 임 교육감은 “임태희의 색깔을 위해 교육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건 내 철학”이라고 했다. 교육감의 브랜드보다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이런 철학은 임 교육감이 걸어온 정치 경력에서도 엿보인다. 그는 3선 국회의원, 노동부장관, 대통령비서실장 등 실세 정치인의 길을 걸어오면서 스스로 상징적 인물이 되기보다 정책을 조율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가 내세운 경기교육 운영의 세 가지 원칙 중 하나인 ‘균형’은 그의 이런 철학이 반영돼 있다.

다만 한쪽으로 치우친 이념 편향적 교육에 대해선 단호하다. 지난해 경기도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가 수업 중 이승만 전 대통령을 ‘생양아치’라고 표현해 논란이 됐다. 임 교육감은 취임 후 해당 문제를 정식으로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임 교육감은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학생들이 토론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지만, 일방적인 주장이나 견해를 편향적으로 주입하는 교육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자기 브랜드가 없어도 임 교육감은 자신의 정치적 경륜을 경기교육 변화의 원동력으로 십분 활용하고 있다. 경기도 각지에서 벌어지는 택지개발로 ‘콩나물시루 교실’은 오랜 골칫거리였다. 임 교육감은 과대학교·과밀학급 문제 해소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세 차례 요구 끝에 교육부를 설득해 32개 학교 신설 안을 관철했다. 통합교육지원청 분리·신설의 법적 근거인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이 수년째 국회 상임위에서 머물자 임 교육감은 교육부를 통해 시행령을 개정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임태희의 밑그림은 다채로운 색깔이 덧입혀지고 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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