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영웅]②생존자 파악 손놓더니…'죽음'까지 외면
역대 정부, 구출 손 놓더니 생존자도 안 찾아
'알리지 못한 부고' 포로 대부분 어린 병사들
편집자주 -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며 한반도에서 포성이 멈췄다. 그러나 수만 명의 국군포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북한의 탄광으로 내몰렸고, 전장으로 뛰어든 젊은 용사들은 조국의 외면 속 '잊혀진 영웅'이 됐다. 70년이 흘러 북한에 억류된 생존자는 90세를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마지막 기회'로 평가되는 이유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국군포로의 희생을 외면한 제도를 살펴보고, 개선책을 모색한다.
역대 정부는 정전협정 이래 70년 동안 단 1명의 국군포로도 직접 구출하지 않았다. 올해로 16년째 북한에 억류된 생존자를 파악하는 일에서도 손을 놓고 있다. 특히 귀환 국군포로의 부고(訃告)조차 사실상 가로막으면서 정부가 참전용사의 헌신에 대해 마땅한 예우를 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국방부·통일부·외교부 등에 따르면 1953년 휴전회담 당시 유엔군사령부는 국군 실종자를 8만2000여명으로 추산했다. 반면, 공산군 측은 유엔군 포로 4417명(미군 3189명), 국군포로 7142명 등에 대한 명단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당초 포로 수만 명을 잡았다고 선전하던 북측이 전후 복구 등에 노동력을 동원할 목적으로 그 수를 터무니없이 줄인 것이다.
전쟁에서 인도적 대우에 관한 기준을 정립한 제네바 협약은 국군포로에 대한 '지체 없는 석방과 송환'을 명시하고 있다. 남과 북이 1953년 7월 맺은 6·25전쟁 정전협정에도 국군포로·민간인 송환 문제가 분명하게 적시됐다. 군사분계선 이북 민간인에 대한 귀향을 허용하고, 특히 협정 3조는 '60일 이내 포로 송환을 완료한다'고 구체적인 기간까지 정했다.
이에 따라 연합군은 인민군·중공군 포로 가운데 송환 희망자 8만3000여명을 모두 이송했으나, 북측이 최종 인도한 국군포로는 8343명에 그쳤다. 이후로도 최소 5만명이 북한에 억류돼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북한은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다 끝난 이야기'라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억류 중인 포로는 1명도 없다는 입장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포로 없다' 거짓말 드러나도…생존자 포기한 정부
1994년 고(故) 조창호 중위의 귀환을 시작으로, 북한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특히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 당시에는 국군포로 생존자 18명이 남측 가족과 만나기도 했다. 북측의 주장과 달리 생존자가 더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책임을 방기했다. 국군포로의 생존 증거를 확인하고도 단 1명도 구출하지 않았다. 살아 돌아온 80명은 모두 자력 또는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탈북했다. '현역' 신분인 국군포로를 주관하는 국방부는 물론 책임 있게 관여해야 할 통일부와 외교부도 손을 놓은 것은 마찬가지다.
정부는 올해로 16년째 생존자를 찾는 노력마저 멈췄다. 국가정보원이 탈북자 등 진술을 근거로 2007년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기준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는 1770명으로 추산됐다. 생존자 560명에 사망 910명, 행방불명 300명이다. 최소 스무 살 때 붙잡혔다고 가정해도 올해 90세에 이르는 만큼 상당수는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2011년 이후로는 귀환한 국군포로가 없다"며 "이 시점으로부터 정확한 생존자 현황 파악은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이지윤 북한인권시민연합 팀장은 "생존자 파악은 국민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인 동시에 북한의 비인간적 박해를 주시하고 있다는 경고"라며 "조국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송환해오기 위한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부고' 막은 국방부…"희생 기릴 방법 얼마든지 있어"
국방부는 국군포로가 사망한 경우 마땅히 예우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2020년 12월에는 국방부가 부고를 저지하기 위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국군포로의 쓸쓸한 안장식' 제하의 기사가 한 외신에서 보도됐는데, 국방부가 해당 언론이 아닌 사단법인 물망초에 기사 삭제를 요구한 것이다. 국군포로 송환을 지원해온 물망초가 관련 정보를 제공했을 것으로 짐작하고 외압을 행사했다는 것이 단체 측의 주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에 생존해 있는 가족의 신변 안전을 우려해 귀환 국군포로 당사자가 평소 언론보도를 거부한 경우가 있다"며 "또 유족들이 보도를 거부할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부고를 알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귀환 국군포로의 명단은 2007년 통일연구원이 발간한 '북한인권백서', 2008년 북한인권정보센터가 낸 '국군포로 문제의 종합적 이해', 다수의 국정감사 자료집 등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실명 공개된 바 있다.
결국 국방부는 북한에 남은 가족을 명분 삼아 참전용사의 죽음에 대해 예우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은 "이름을 가리더라도 국군포로의 부고를 전하고 희생을 기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며 "이 순간에도 위기에 처한 국군포로를 외면하는 국방부의 태도는 국가로서의 본분을 잊고, 국가이길 포기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아시아경제는 물망초의 협조를 얻어 귀환 국군포로 80명 가운데 조용히 생을 마감한 67명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대부분 10~20대 나이에 참전했으며, 특히 최소 42명은 하사 이하 계급으로 나타났다. 귀환 이후 특진이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국군포로는 간부가 아니라 최전선에 내몰린 어린 병사들에 불과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제한적인 정보지만, 늦게나마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알리는 차원에서 이를 공개하기로 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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