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나면 신규서비스 등장"…속도전 치닫는 AI 패권 大戰
‘챗GPT’가 촉발한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로 부상하면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11월30일 오픈AI의 챗GPT가 첫선을 보인 이후 8개월 만에 글로벌 빅테크 6개사는 생성형 AI 서비스를 쏟아냈다. 경쟁의 포문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투자한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열었고 구글·메타에 이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xAI’·등이 합류했다. 이어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까지 각자 챗GPT 대항마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나섰다. 첨예한 AI 패권 경쟁 속에 각국 정부의 고민은 깊어졌다. 미·중 등 지정학적 갈등이 커진 상황에서 AI 패권을 잡기 위해 자국 기업의 기술 개발을 독려해야 하는 동시에 가짜뉴스 생성 등 다양한 부작용도 규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빅테크들 달아오르는 AI 패권 大戰
올 초만 해도 애플은 생성형 AI 시장을 메타버스(확장 가상 세계)나 블록체인처럼 ‘곧 터질’ 거품으로 봤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올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이 기술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불과 2개월 사이 분위기는 달라졌다. 애플은 자체 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내부 체계를 구축했다. ‘에이젝스(ajax)’라는 이름의 개발팀을 꾸리고 ‘애플GPT’라는 챗GPT에 대항할 서비스도 만들었다. 애플은 내년 초 정식 발표를 목표로, 전문가 영입 등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구글도 AI 경쟁에 있어서는 추격자 신세가 됐다. 구글은 검색 독점 시대가 끝날 수 있다고 보고 ‘코드 레드(긴급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지난 2월 뒤늦게 ‘바드’라는 AI 기술을 선보였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최근 구글은 은퇴한 두 명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까지 연일 본사로 출근하며 ‘제미니’라는 이름의 새로운 AI 프로젝트를 가동한 상황이다. 올해 안에 20개 이상의 AI 제품을 공개한다는 목표다. AI로 거의 모든 제품을 바꾸겠다는 각오다.
'AI 기업 프리미엄 잡기' 속도전 양상… 기술개발에 총력
AI 패권 경쟁은 속도전 양상으로 펼쳐졌다. 뉴욕타임스(NYT)는 기업들이 ‘최초’의 AI기업이라는 프리미엄을 선점하기 위해 기술의 완성도보다 속도전에 몰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신기술 공개에 보수적이던 거대 기술 기업들이 시장 선점에 최우선 순위를 두며 공격적으로 사업전략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MS의 기술 임원 샘 쉴레이스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시장에 첫선을 보인 기업이 장기적으로 승기를 잡아 왔다"며 "나중에 수정될 수 있는 기술을 앞서서 걱정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피하라"고 주문했다. 기술의 완전성보다 속도전을 주력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오픈AI가 GPT-4를 선보이기 한 달 전 프로토타입의 GPT-3.5가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에 의한 결정으로 보인다.
AI 규제도 경쟁… "진화하는 기술 규제는 시기상조" 목소리도
AI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규제에 대한 움직임도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의회와 행정부 차원에서 법제화 작업이 한창이다. 백악관은 AI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정책 개발 회의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미 상원은 ‘국방수권법(NDAA)’ 수정안에 AI 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방 예산과 정책 안에 AI 규제안을 포함해 규제 법률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취지다.
미국의 AI 규제는 국가 안보 등 ‘(미국의) AI 주권’에 치중돼 있다. 앞서 미 상무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등 우려 국가로의 수출을 위한 라이선스 발급을 의무화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GPT를 가동하는 데 사용되는 수천 개의 특수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장비의 수출을 막아 AI 패권 경쟁 우위에 서겠다는 것이다. 과거 핵 개발 초창기 핵 개발 물질에 대한 수출입을 막았던 것과 유사한 규제 방식이다. 포린폴리시는 "미국은 ‘반도체의 안보 무기화’ 일환으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며 "과거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핵 제조에 사용되는 물질을 통제했듯, GPT 구동에 필요한 반도체 기술을 통제하는 규제 도입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내년 미 대선을 앞두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짜 콘텐츠를 막기 위한 규제안도 추진 중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22일 백악관에서 오픈AI, 알파벳, 메타, MS 등 7개 주요 AI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AI의 가능성을 구현하고 이를 막는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법규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AI 기업들은 AI발 가짜 뉴스를 막기 위해 AI로 생성된 음성·이미지 콘텐츠를 사용자가 구별하도록 ‘디지털 워터마크’를 넣는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AI를 이용해 만들어진 콘텐츠에 ‘AI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를 삽입하겠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세계 최초로 AI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최근 EU는 본격적인 AI 규제 도입을 앞두고 최근 한국을 포함한 인도, 일본,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시아 10여개국에 당국자를 파견하고 EU의 규제안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AI에 대한 규제가 미국 주도로 움직이지 않도록 견제에 나선 것이다. 앞서 EU는 2018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수준의 개인정보 보호법인 일반정보보호법(GDPR)을 발효, 국제사회에서 관련 논의를 주도했던 경험이 있다.
이 밖에 AI를 감독하는 기관의 창설, 저작권 침해, 기술 독점, AI를 활용한 안면 인식 등에 대한 국제 규범 마련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AI 기술이 아직 진화 중인 만큼 규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NYT는 "아직 초기 단계의 진화 중인 기술에 대한 정책적 규제는 큰 의미가 없다"며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들의 규제 움직임은 길고 어려운 길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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