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장마에 ‘금값’된 배추, 김치플레이션 빨간불
업계 “비축시기 앞당겨, 문제 없어”
소비자 부담이 가장 큰 문제
역대급 폭우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국내 농산물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특히 배추 가격이 크게 치솟아 지난해 배추 값 폭등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올해는 천일염 가격 마저 치솟아 식품업계서는 핵심 재료 수급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배추와 무 등 김치에 들어가는 주요 채소들의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8000원대에 머무르던 배추(10㎏ 기준)는 한 달 사이 1만원을 돌파했다. 1만5000원대였던 지난해 대비 양호한 수준이지만 짧은 기간 가격 오름 폭이 컸다.
채소 가격이 오른 건 무더위와 장마에 따른 작황 부진 때문이다. 상추의 적정 생육온도는 15~20도지만 기온이 크게 오르면서 생산량이 감소하며 가격이 예년보다 상승했다. 이번 집중호우로 농산품 주요 산지의 피해가 커지며 농산물 가격은 당분간 오름세를 지속 할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물폭탄이 고랭지 배추 산지인 강원 태백의 일부 농가를 휩쓸면서 모종을 다시 심어야 하는 상황이 된 데다, 이마저도 출하 지연으로 가격이 내려갈 것을 우려해 생산을 포기하는 곳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상품 수급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설상가상 최근에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불안감으로 천일염 가격이 상승했다. 천일염 품귀 현상으로 국산 소금·젓갈류 가격 인상이 예상되면서 전반적인 김장 물가와 심리적인 부담 선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배추 가격 강세는 내달 폭염과 9월 태풍 등 물가 상승 요인이 많이 남아있어 수개월간 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에도 8월 폭염과 폭우에 이어 9월 태풍 ‘힌남노’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대부분의 채소 가격이 치솟아 온라인몰에서 배추김치가 품절 되기도 했다.
김치 제조업체들은 김치의 핵심 재료인 배추를 구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공급량이 감소하면서 가격이 급등한 데다, 농작물이 수해까지 입으면서 상품성은 오히려 떨어졌다. 김장할 때 쓰이는 부재료 가격도 대폭 오르면서 일정기간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김치 제조업체들은 김치 가격 인상을 단정 짓기는 이르다고 입을 모은다. 김치 제조 기업은 통상 수개월 치 물량을 미리 비축하기 때문이다.
김치 제조업체 관계자는 “매년 여름철 병충해, 기후 영향으로 배추 수급이 어려웠는데 올해는 이를 대비하기 위해 예년에 비해 비축시기를 앞당기고 비축량도 늘렸다”며 “천일염의 경우 정부에서도 안정화시키겠다고 얘기한 바 있어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가격 인상은 어느 하나의 이슈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해당 이슈가 가격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다른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배추김치를 제공하는 구내식당도 올해는 생각보다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있다. 통상 식자재업계는 폭우 등으로 배추 수급에 따른 문제가 생기면, 구내식당에 제공해 오던 배추김치를 국내산 열무김치, 깍두기 등으로 대체해 왔으나 아직까지는 수급에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식자재 업계 관계자는 “현재 배추 가격은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지만, 1~2주 후 40% 수준 인상이 예상된다”며 “8-9월은 자체 비축을 통해 올 봄 비축해 둔 배추로 활용할 예정이고, 추가 물량 필요 시, 산지 계약 농가 통해서 수급 확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다만 매년 김장을 하는 소비자들은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배추가격을 포함한 부재료 가격이 지속해서 오르면서 올해는 김장을 포기하는 이른바 ‘김포족’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나라 식사에서 빠질 수 없는 메뉴인 김치의 몸값이 높아지면서 밥상 앞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직장인 A씨(30대)는 “매년 늦가을 친정에 모여 김장을 해왔는데, 올해는 예산을 종잡을 수 없어 김장을 하지 말고 각자 해결하자는 통보를 받았다”며 “배추 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면 얼갈이배추로 겉절이를 만들어 먹어 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서둘러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20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의 고랭지 배추밭을 방문해 여름배추와 무 생산 현황을 점검했다. 이어 고랭지 배추와 무의 경우 수급 불안 시 정부 비축 물량(배추 1만톤, 무 6000톤)을 적기에 방출하겠다고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한동안 장마가 지속되는 만큼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농어촌공사, 농진청, 농협 등 관계기관과 함께 노력할 것”이라며 “수급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며 수급 불안 발생시 신속히 대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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