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읽다]코로나 팬데믹, 어린이들 췌장도 망가뜨렸다
"아직 정확한 원인도 몰라"
학습-사회화 지장 코로나 세대 '비상'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많은 악영향을 끼쳤다. 장기간 학교 폐쇄로 학습 효율이 떨어져 교육에 비상이 걸렸다. '집콕' 탓에 체중 등 건강 관리, 대인관계ㆍ사회화에도 지장을 받았다. '코로나 세대'라는 호칭이 생길 정도다. 그런데 코로나19 기간 동안 어린이ㆍ청소년들의 당뇨병이 급증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증가율이 무려 10배가량 높아졌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원인도 파악하지 못해 추후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캐나다 토론토 소재 아픈어린이연구소(SickKids Research Institute) 연구팀은 지난달 30일 이같은 내용의 연구 논문을 미국의학회(JAMA)가 운영하는 논문 사이트 '네트워크 오픈'에 게재했다. 연구팀은 기존의 17개 관련 논문에 실린 약 3만8000여명의 어린이 및 19세 이하 청소년 당뇨병 발생 현황을 분석했다.
1형 당뇨는 유전적ㆍ환경적 요인으로 자가 면역 체계가 췌장 내 세포를 공격해 혈당 조절을 담당하는 호르몬 인슐린을 생산하지 못하는 질병이다. 주로 소아ㆍ청소년들이 많이 앓는다. 혈당 수치가 상승해 장기적으로는 혈관에 손상을 입는다. 실명ㆍ신부전ㆍ심장마비, 신경 손상으로 자칫 사지 절단을 해야 할 수도 있다. 2형 당뇨는 주로 40세 이상의 성인에게서 발생한다. 몸의 인슐린 저항성이 커지면서 작용이 원활하지 않아 고혈당ㆍ상대적 인슐린 분비 장애가 생긴다.
연구팀은 분석 결과 팬데믹 첫해인 2020년 1형 당뇨 환자 수가 전년 대비 14%나 증가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 번째 해였던 2021년에는 더 빨리 늘어나 2019년 대비 27%나 급증했다. 연구팀의 레이젤 슐만 아픈어린이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21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발생률이 높았다"고 놀라워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클레멘스 캄라스 독일 유스투스 리비히대 교수도 "코로나19 이전까지 어린이들의 1형 당뇨 증가율은 매년 2~4%씩 꾸준히 증가해온 것을 감안하면 증가세가 열배 이상 뛰었다"면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속도나 범위를 뛰어넘는다"고 말했다.
앞서 일부 연구 결과에서도 다수의 국가에서 팬데믹 초기 1형 당뇨가 증가한 사례가 보고된 것을 두고 코로나19가 이를 촉발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다른 연구에선 코로나19가 최고조에 달한 수개월 후에 당뇨병 신규 환자 수가 급증했다는 보고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췌장 세포를 공격해서 직접 당뇨를 유발했는지, 간접 원인인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구팀은 기존의 연구 결과 중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중간까지 최소 12개월간 진행된 것들만 분석했다. 또 단순히 발생 환자 수만 계산한 것이 아니라 인구 규모까지 감안해 통계를 냈다. 이를 통해 팬데믹 초기 2년간 어린이 1형 당뇨 환자 수가 실제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계절적 유행 패턴이 사라졌다는 것도 발견했다. 1형 당뇨는 기존에 여름철보다 겨울철에 더 많이 발생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엔 이같은 계절성이 사라졌다.
팬데믹 기간 동안 1형 당뇨가 이전보다 더 심각한 증세를 보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자칫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1형 당뇨의 합병증인 '당뇨성 케톤산증(diabetic ketoacidosis)의 발생률이 2019년에서 2020년 새 26%가량 급증한 것이다. 슐만 연구원은 "아마도 환자들이 초기 증상이 나타났을 때 응급 치료를 주저하거나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당뇨성 케톤산증은 조기에 예방할 수 있지만 일단 발명하면 증세가 지속된다. 이번 연구 결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아직까지 이같은 현상의 원인은 물론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모르는 상태다. 다만 연구팀은 코로나19 원인균이 췌장 세포를 직접 공격한 것 같지는 않다고 보고 있다. 핀란드, 스코틀랜드, 덴마크 등에서 나온 연구 결과를 보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추세와 1형 당뇨병 환자 발생 추세가 직접적인 연관 관계에 있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엔테로바이러스나 헤파티티스B 바이러스처럼 자가 면역 체계에 이상을 일으켜 췌장 세포를 공격하도록 했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면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라스 스테네 노르웨이 공중보건연구소 연구원은 네이처에 "한 해 동안 14% 증가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결과"라며 "발병률은 해마다 많이 변동하며 개별 국가 사이에 발생 건수가 10배가량 차이가 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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