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침몰한 교권…교사에겐 방어할 수단이 없었다
서울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제기된 교권 침해 문제는 오래 전부터 비극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때 선호도가 높던 부장·담임 보직이 기피 업무로 여겨지고, 정년이 되기 전 교단을 등지는 명예퇴직은 점차 늘었다. 최상위권 수험생이 진학하던 교대는 점차 합격선과 경쟁률이 낮아졌다.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원인이 중첩된 결과지만, 교육계에서는 공통적인 원인으로 교권 침해를 꼽는다.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스승의 권위가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칼이 있으니 휘둘러야”…입김 세진 학부모
교사들은 2010년대 들어서 교사를 압박하는 수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2010년 9월 체벌 금지를 명문화한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의회를 통과한 게 시작이었다. 다음해 3월엔 도구 등으로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직접 체벌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 제정 이후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로 지정된 게 결정타였다. 교사에게 아동보호 의무가 명시되면서 학부모들이 민원의 근거로 아동학대법을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권본부장은 “교원이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 지정된 2014년 이후 오히려 가해자로 지목되는 현상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교사노조가 지난 3월 정보공개포털을 통해 전국 시도교육청에 요구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고발돼 수사를 받은 사례는 1252건에 달했다.
그 사이 교사를 공격할 방법도 다양화 됐다. 대표적인 게 2010년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교원 평가다. 도입 취지와 달리 학생들은 만족도 조사 주관식 문항에 “몸매가 좋다”, “할매 냄새 난다” 등의 폭언을 남기기도 했다.
스마트폰과 SNS 등 발달로 교사의 개인 정보 공유도 활발해졌다. 2020년 4월 서울교사노조가 공개한 사례에 따르면 ‘맘카페’에서 “새로 학교 옮긴 교사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이유로 교사의 이전 근무 학교 졸업앨범을 사고 팔거나 “사진보다 실물이 낫다” 등의 외모 평가가 이뤄졌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사는 “동료 교사가 SNS에 개인적인 여행 사진을 올렸다가 학부모 건의를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는 함부로 사진도 게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했다는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부모에게 칼이 있는데 휘두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나”고 말했다.
기울어진 운동장…“교사를 방어할 수단이 없다”
반면 교사를 보호할 장치는 전무한 수준이다.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게 대부분 교사들의 반응이다.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에 따라 상해·폭행, 협박, 명예훼손, 성폭력 등으로 교육 활동을 침해당한 교사는 학교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교보위 개최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대구의 한 초등 교사는 “교실에서 흉기를 휘두른 학생 때문에 교보위를 열어달라고 신청했지만 학교에선 만류하더라”며 “그래도 후배 교원 등을 생각해서 끝까지 교보위를 열었더니 ‘사랑으로 감쌌어야 하지 않느냐’ 등의 질책성 추궁만 들었다”고 말했다.
교보위는 교내봉사·사회봉사·특별교육이나 심리치료·출석정지·학급교체·전학·퇴학처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가장 강한 퇴학 처분은 의무교육과정에 있는 학생에게 적용할 수 없다. 2년 전 교실 앞에서 학생을 질책했다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한 경남 한 중학교 교사는 “알고 보니 나를 신고한 학생은 이미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교사를 신고한 적이 있었다”며 “의무교육 대상 학생은 ‘폭탄 돌리기’처럼 이 학교 저 학교를 오가며 비슷한 일을 벌인다”고 말했다.
최근 아동학대 신고가 늘고 있지만, 교사들은 상대 학부모를 무고로 고소하거나 교보위를 개최하는 등의 방어권을 쓰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했다. 경기의 한 초등 교사는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하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돼야 하기 때문에 교사가 병가를 내거나 직위해제 조치를 받아야 하고, 최종 판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며 “무고로 학부모를 고소한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교원에겐 아무런 실효성이 없을 뿐더러, 향후 직장 생활을 고려하면 추가 소송을 진행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교원단체는 ‘생활지도 면책권’을 담은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 학교 사안 전문 변호사는 “교사에게 적용되는 아동학대의 범위를 부모에게 적용하면 대부분이 범법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의 권위 찾아야”…구조적 문제도
근본적으로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이 교사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천의 한 중학교 교사는 “대부분 학생 목표는 대학 입시다. 시험만 잘 보면 목표를 이룰 수 있는데, 교사의 말이 먹히겠는가”라고 말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사교육 시장이 26조원까지 늘어나며 몸집을 키우는 동안 학교는 학습의 기능을 축소하면서 스스로 몸을 낮췄다”며 “교사 뿐 아니라 학교도 권위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권 침해 문제를 국가가 방관했다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교육부는 매년 교육청을 통해 교권 침해 사례를 집계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교원의 피해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조사는 전무하다. 각 교원단체가 매년 스승의날을 맞아 만족도나 교권 침해 사례를 설문조사 하고 있지만 대상이 제한적이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민은 5억, 청년은 15억…둘다 대박나는 재건축 온다 | 중앙일보
- "교권 추락에 한몫" vs "마녀사냥"…오은영 SNS 난리난 이유 | 중앙일보
- 일본 발칵 뒤집은 '머리 없는 시신'…범인 정체가 밝혀졌다 | 중앙일보
- 시속 100㎞로 아우디 박았다, 제네시스 명운 건 ‘쇼킹 광고’ | 중앙일보
- "술값 냈지만 성매매 안했다"…93년생 최연소 도의원 검찰 송치 | 중앙일보
- "자식 봐서 참자" 아니네…이혼 망설인 이유 1위, 남녀 달랐다 | 중앙일보
- "촬영한다며 호텔 성폭행"…성인화보 모델들, 소속사 대표 고소 | 중앙일보
- 이런 멘트 했다면 당신도 진상 부모…진단 체크리스트 나왔다 | 중앙일보
- 혼자 온 9세 돌려보냈더니 신고…동네 유일 소아과 "문 닫겠다" | 중앙일보
- 이병헌, 옥수동 빌딩 240억 매입…월 8500만 원에 통으로 세놨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