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엔 그물처럼 광망 설치, 충격 가하면 상황실에 자동 경보 [정전 70년 한미동맹 70년]

이철재 2023. 7.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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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강원도 철원의 제3보병사단(백골부대) 전방 관측소(OP)에서 바라본 휴전선 일대는 적막했다. 새소리만 들릴 정도였다. 대북 확성기로 내보내는 심리전 방송이 2018년 4월 23일 중단된 뒤 특히 더 그렇다고 현지 군 관계자는 설명했다. 대북 확성기도 그해 5월 1일 전면 철수했다. 강원도 고성의 DMZ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서만 대북 확성기를 볼 수 있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 철책선엔 감지기로 이뤄진 광망(光網)이 그물처럼 덮였다. 박영준 작가


경기 연천 철책서에서 경계병이 과학화 경계 시스템의 감시기가 촘촘하게 달린 광망을 점검하고 있다. 육군


휴전선엔 인적이 드물다. 빈 초소도 많이 보였다. 초소에서 만난 초병도 경계총 자세로 소총을 든 채 부릅 뜬 눈으로 북쪽을 바라보진 않고 있었다. 즉각 사격할 수 있도록 소총을 곁에 놓고 쉼 없이 관측 장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간혹 포성과 총성이 휴전선의 적막을 깼다. 철책선과 멀지 않은 곳에서 군사훈련이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휴전선의 적막감은 표면일 뿐이다. 그 안에선 경계작전이 24시간 쉼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철책선을 따라 촘촘하게 깔린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철책선과 비무장지대(DMZ), 북한 지역을 감시하고 있다. 2011~2019년 도입한 과학화 경계 시스템은 감지 시스템과 감시 카메라 등 첨단 장비로 이뤄졌다. 그리스 신화에서 100개의 눈으로 언제나 깨어있다는 거인 ‘아르고스’를 떠오르게 한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은 이런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철책선엔 감지기로 이뤄진 광망(光網)이 그물처럼 덮였다. 광망은 누군가 철조망을 일정 시간 잡거나 이를 자르면 이를 감지해 상황실에 이벤트(상황) 경보를 울린다. 즉각 가장 가까운 곳에 달아 둔 근거리 감시 카메라가 자동으로 경보 지역을 비춘다.

철책선 상단은 Y자 모양으로 갈라지는 데 여기도 광망이 설치됐다. 철책선을 타고 넘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강원 고성의 DMZ박물관 야외에 전시 중인 대북 심리전 방송용 전광판과 스피커. 박영준 작가


지난 2월 화천의 제7보병사단(칠성부대) 관측소(OP) 지휘통제실은 전면이 스크린으로 가득했다. 각각의 스크린은 카메라가 보내준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 통해 상황병들이 철책선과 DMZ 주변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전에 보고되지 않은 인원이나 차량 이동을 발견하거나 이상 징후가 보이면 화면을 확대할 수 있다. 수시로 통신으로 상황을 점검했다.

지상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지상레이더, 밤에도 먼 곳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열상감시장비(TOD)가 과학화 경계 시스템의 사각을 메워준다. TOD는 북한 초소에서 하급자를 구타하는 장면까지 파악할 정도로 해상도가 높다. 박세영 중령은 “물 샐 틈 없는 경계 작전을 위해 밤낮 없이 장병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 덕분에 휴전선 경계 작전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엔 장비 대신 사람이 지켰다. 경계 초소에 2인 1조를 투입한 뒤 이들이 일정 시간마다 초소를 옮겨 다니는 방식이었다. 이를 ‘밀어내기’라고 했다.

밤에도 수시로 철조망 옆 도로를 걸어 다니면서 손으로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대부분의 철책선이 산악과 능선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천 계단을 오르내리기 일쑤였다.

경기도 파주 철책선 경계초소에서 북한을 감시 중인 초병. 박영준 작가


강원도 화천 철책선 경계초소에서 경계병이 망원경으로 북쪽을 감시하고 있다. 육군


20대 초반의 병사들이라도 제대할 때 쯤이면 무릎 연골이 성할 수가 없었다. 2007~8년 제12보병사단(을지부대) 전방 대대장을 지낸 박언수 육군교육사령부 부이사관은 “매일 철책선 계단을 따라 순찰을 돌다 보니 허리 협착증과 무릎 연골 연화증에 걸렸다. 아직도 비가 오면 욱신거린다”면서도 “자랑스런 훈장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과학화 경계 시스템 덕분에 모든 초소를 다 채울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철책 순찰 활동은 유지하고 있다.

상황이 발생하면 대기 병력이 출동한다. 전술도로가 닦인 곳이라면 4바퀴의 산악용 오토바이크(2인용)를 타고 다닌다. 오토바이크는 평지에선 최고 속도가 시속 80㎞가 넘고 야지에선 시속 20㎞ 정도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도 맹점이 있다. 광망의 민감도를 높이면 바람이 조금 심하게 불거나 산짐승이 건드려 오경보가 울릴 수 있다. 그렇다고 낮추면 적을 놓칠 수 있다. 그래서 군 당국은 날씨에 따라 광망의 민감도를 조정한다. 앞으론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오탐률을 줄일 계획이다.

최전방에서 상황이 일어나면 경계병이 타고 출동하는 4륜 오토바이크. 평지에선 최고 속도가 시속 80㎞가 넘고 야지에선 시속 20㎞ 정도다. 박영준 작가

국방부는 AI 기반의 유·무인 복합체계로 경계 작전을 펼치는 방안을 국방혁신 4.0 기본계획에 담았다. 출생률이 떨어져 인구가 급감하는 바람에 입대 가능한 성인 남성이 대폭 주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당장 내년에 시범 사업에 들어간다.

근본적으로 경계작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방종관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전력개발센터장은 “경계작전은 첨단장비 위주로 소수 정예 전담부대가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최전방의 주력 보병사단이 경계작전 부담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된 교육훈련과 전투력 발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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